▲ 윤기봉 중앙대학교 교수
[투데이에너지] 안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이 점차 행동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사회 활동 중에 이를 직접 확인하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대기업과의 프로젝트 진행 회의를 하면 항시 회의 시작 전에 담당자의 선창으로 모든 참석자가 “안전이 기업 경영의 최우선이다”를 외친다.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이고 다짐하는 듯 보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구호를 직접 외치다 보면 정말 조직의 주요 의사결정시 안전이 최우선인 결정을 할 것 같다. 조금 전에 그리 본인들이 목청 높여 외쳤는데 펜으로는 다른 결정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 부처의 안전관련 회의에서 ‘예고하지 않은 불시 비상대피 훈련’을 당국자가 강조하고 독려한다. 참석한 기업에서도 불시 훈련을 수행해 발견한 근본적 문제점을 가감 없이 얘기했다.

양측 모두 솔직해진 것이며 사고 시 효율적인 대피로 사고의 피해를 줄여 보자는 실질적인 시도다. 각본에 잘 짜여진 공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훈련만을 생각하던 우리에게는 신선한 분위기임에 틀림없다.

교육 현장에서도 변화는 느껴진다. 대학에 안전관련 전공으로 진학에 대한 문의가 증가했으며 안전공학 및 안전경영 관련학과의 신설을 추진하는 대학들도 나타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행동은 안전경영이 핵심인 아래 기업군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유 및 석유화학 플랜트와 같이 작은 누출 사고가 화재 및 폭발 등의 대형 사고로 발전할 수 있는 공정산업, 고온에서 노화가 발생해 사용수명이 한정돼 있고 사고 시 고압의 증기 때문에 설비가 파열되는 발전플랜트, 웨이퍼의 식각(蝕刻)을 위해 강한 케미컬과 독성가스를 사용하는 반도체 산업 등에서 적극적인 안전우선 경영을 시도한다.

기업은 생산이 최우선이므로 안전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경영상의 의사 결정을 생산 담당에게 위임 처리하는 방식을 활용해 생산 효율을 높이는 경영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정산업 관련 주요기업에서도 안전환경 조직을 신설해 각 사에서 발생한 안전이슈를 재검토하거나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회사도 상위 그룹 차원에서 전사의 안전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이 독립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안전의 제3자 거버넌스 원칙이 차츰 정착되고 있다.

 불시 비상대피 훈련의 효과는 미국 911테러시에 무역센터 22층에 입주해있던 모건스텐리의 사례에서 입증됐다. 당시 센터의 가장 큰 입주사인 이 회사에는 약 3,000명이 근무했는데 안전 책임자는 경영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사용한 불시 대피훈련을 수시로 실시했다.

모든 직원이 대피 통로를 숙지하게 하고 마지막 직원까지 대피하는 시간을 측정해 이를 단축시키는 훈련을 반복한 것이다. 심지어 투자를 위해 방문한 고객들도 대피하도록 했다.

9월11일 첫번째 비행기가 타워1에 충돌했을 때 타워2의 다른 회사 직원들은 공황에 빠졌다.

하지만 이미 훈련으로 대피로에 익숙한 회사 직원들은 행동에 옮기고 있었다. 곧 타워2에 두번째 비행기가 충돌하고 건물이 붕괴됐지만 모건스탠리의 2,687명의 직원과 250명의 방문자는 이미 탈출에 성공했다. 13명만 나오지 못했는데 이 중에는 마지막에 대피하도록 돼있던 안전책임자와 각 층별 안전담당 5명이 포함돼 있었다.

결국 탈출 못한 직원은 8명뿐이라는 경이로운 결과를 냈고 안전책임자는 사망했지만 생존자와 미국의 영웅이 됐다.

 우리는 최빈국에서 15위권 경제대국으로의 도약을 실현한 유일한 국가이다. 이제 안전분야도 정부의 정책 주도와 각 분야의 적극적 행동을 기반으로 하면 안전선진국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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