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호철 신용에너지(주) 전무이사
공룡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약 2억3000만년 전)에 나타나 쥐라기와 백악기에 크게 번성하다가 백악기 말(약 6500만년 전)에 멸종된 개체종(種)이다. 이 시기 한반도 땅 역시 공룡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억만년 전 이 땅에서 군림하다 사라졌던 공룡들이 21세기 다시금 활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억만년 전의 공룡은 자연발생적 으로 생겨난 생물학적 種인 반면에 작금의 공룡은 자본주의 부산물로 우리 인간들이 부활시킨 은유적인 존재다.

거대 공룡의 출현을 시작으로 문명 시대의 도롱뇽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적자생존, 빈익빈부익부(適者生存, 貧益貧富益富)’의 논리를 쫓아가고 있는 것이다. 공룡들은 큰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도롱뇽들을 잡아먹고, 몸집을 더 부풀리기 위해서 도롱뇽의 먹이마 저 빼앗아 가며 점점 비대해져 가고 있다.

따라서 소규모의 도롱뇽들의 터전들은 차츰 없어져 가고 있다.

저마다 생존과 팽창을 위해서 도롱뇽들끼리 짝짓기 합병을 하며, 심지어 공룡들끼리도 생존하기 위해 또 더 비대해지기 위해서 잡식으로 짝짓기를 한다. 이것이 현 자본주의 경제의 현실인 것 같다.

하지만 거대 공룡이 도래했다고 반드시 부작용만 수반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거대 공룡의 등장으로 영세 규모 수준에서 조직력을 강화시키고 보다 나은 경쟁력을 갖추게 되고 나아가 국제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안팎으로 거대 공룡과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수많은 도롱뇽들이 생겨나므로 도롱뇽들의 소멸이라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도롱뇽들의 부활을 예견할 수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 외국의 거대 공룡기업과 대적할 수 있는 내국의 공룡 조직이 있으므로 국제적인 경쟁력과 지배력을 획득할 수 있고 국제 시장에서 우위권을 확보할 수 있다.

각 업계마다 거대 공룡들의 등장으로 기존의 중·소 도롱뇽들의 생존이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에서 국내 LPG 기화기 제조업계(이하 기화기업계)에는 아직 이렇다 할 공룡이 나타나지 않았다. 주지하다시피 작년 하반기 그나마 국내 기화기업계를 주도했던 도아기계의 부도로 인해 기화기업계의 혼란을 야기했다. 기존 메이커들의 약진 및 퇴보와 더불어 도아기계 사면(社滅)으로 인해 파생된 3개 제조사의 등장으로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필자의 미비한 조사에 의하면 전세계 기화기 제조업체는 대략 30개 안팎의 회사가 있는데 그 가운데 국내에 8개의 회사가 존재한다. 제조업체 수치로만 계산하면 국내에서 제조되어 판매되는 기화기가 전세계의 30% 정도를 차지해야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국내 8개 제조사들이 모두 도롱뇽 수준의 소기업들이다. 소기업인 만큼 국제적으로 경쟁력도 미미할 뿐 아니라 많아야 3,000대 수준인 내수 시장에서 서로 보이지 않는 치열한 판매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가스기계 제조사들끼리 인수와 합병으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국내 기업들에 비해 과중한 덩치의 기업들이 합병하며 자신들의 제품을 하나로 통일하여 마케팅 및 판매에 힘을 기울이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일례로 미국 샘딕사(Samdick IND.)와 알가스(Algas)가 합병하며 기화기 모델을 “POWER XP” 로해 전세계를 상대로 공동 마케팅·판매를 하고 있다.

국내 업계는 어떠한가. 연간 50억원 미만의 국내시장을 두고 8개 제조사들이 헌혈하듯 가격경쟁을 하고 겁 없이 타사 거래처의 문을 두드리고있다. 아무튼 수백억원에 이르는 드넓은 국제시장을 두고 좁은 내수시장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업체들이 국제시장을 진출을 두려워하거나 몰라서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다. 또 국내 기화기 제품이 해외 유명 기화기에 비해 품질이 떨어져서 그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외국의 바이어로부터 외국 제품보다 품질에 대한 호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종합적인 생각으로는 국내 업체들이 소규모이기 때문이라 판단한다.

이제는 국내 기화기업계에도 조그마한 도롱뇽들을 정리하고 이 업계를 리드할 만한 거대 공룡이 하나쯤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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