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장성혁 기자] 연료전지업계가 시끄럽다. ‘누가 기술개발에 투자하겠나’라는 말도 들린다. ‘취약한 부분은 수입해 보급하고 미래기술은 정부 지원받아 자체개발하는 이러한 이중적 태도가 어디 있느냐’고 분개하는 목소리도 높다.

경동나비엔이 일본 도시바 연료전지시스템을 들여와 국내 보급시장에 뛰어들면서 관련업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경동나비엔은 일본 도시바의 가정용연료전지시스템 ‘발전부’를 분리해 들여와 국내에서 시스템 조립 후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에너지공단 인증신청 후 5월 성능검사를 거쳐 7월 최종 인증을 발급받았다.
 
현재까지 14대가 판매돼 설치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설치가 완료되면 정부로부터 보조금 약 3억원을 수령하게 된다. 현재 공단은 주택용연료전지 보조금으로 2,842만원/kW을 지급한다. 경동나비엔이 판매에 나선 제품은 750W급으로 1kW의 75%인 대당 2,132만원의 보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일본에서 수년간 제품 공급을 통해 검증받은 제품의 일부(발전부)를 수입한다. 발전부는 국내에서 다시 연료전지시스템의 구성품인 물통부(축열탱크)와 연결해 완성시스템으로 조립한다. 그리고 보조금시장에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된 사안만 놓고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기술이 부족한 부품을 들여와 타 구성품을 연결해 제조, 판매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그러나 문제는 보조금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특히 연료전지는 정부가 신재생에너지원 가운데 비율도, 지원금도 가장 높게 책정한 에너지원으로 각각 80%, 2,842만원을 지원하는 분야다.
 
▲국민세금인 보조금, 지원이유는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육성책으로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한다. 보조금 수령을 위해서는 먼저 제조공장과 제품성능에 대한 심사가 필요하다. 현재 에너지공단이 이러한 심사과정을 거쳐 최종 신재생에너지설비 인증을 발급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는 KS인증제도로 모두 통합된 바 있다.
 
정부는 KS인증을 받은 신재생에너지설비에 대해 각종 혜택을 부여한다. 신재생에너지설치 의무화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국가기관이나 지자체 등 공공기관의 물품구매와 용역조달에 우선구매 혜택이 주어진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원별 보급시장에 참여해 정부의 보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에너지원별 제품가격의 70~80%에 육박하는 보조금, 즉 국민세금을 쏟아 부으면서까지 지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기술자립을 통한 시장창출’이 목적이다.
 
이러한 보조금시장은 기술개발과 실증, 보급단계 등 전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기술을 만들어내는 R&D에 성공하면 실증을 통해 제품의 성능개선을 유도한다. 이후 보급을 통해 단가인하 등의 제품 경쟁력을 제고하게 된다.
 
보조금은 이때 필요하다. 시장출시가 이뤄졌어도 용도별 기존 설비와의 가격차이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만큼 보조금을 투입해 최종 소비자 구매 시 가격 차이를 줄여 제품 공급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걸음마 떼고 걸으려 하는데 선수 불러들인 꼴
연료전지기술 가운데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KS인증 기술은 현재 고분자전해질연료전지(PEMFC) 타입뿐이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된 분야고 그만큼 오랜기간 기술개발과 실증 등을 차례로 거쳤다.
 
구체적으로 지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정부예산 205억원, 민간 215억원 등 총 420억원을 투입해 ‘가정용 연료전지 모니터링 사업’을 전개했다. 이러한 결과로 1kW급 210대가 주택용으로 설치된 바 있으며 2010년부터 ‘그린홈 100만호 보급사업’에 연료전지가 포함되면서 시장보급이 이뤄졌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 설비와의 가격차로 보급은 더디다. 보조금을 수령해도 최종 소비자의 자기부담분이 높아 구매를 망설이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보급된 주택용연료전지는 1,500대를 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PEM타입 기술개발에 나서 10여년 이상 기술개발과 실증을 벌인 국내기업은 지난해 두산과 합병한 퓨얼셀파워와 에스퓨얼셀, 효성, 현대제철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주택용보급시장에 나선 기업은 두산과 에스퓨얼셀이다.
 
▲ 주택용연료전지 보급시장에 참여한 연료전지시스템. 좌부터 두산(1kW), 에스퓨얼셀(1kW), 경동나비엔(750W)_사진제공=한국에너지공단
 
경동나비엔은 바로 이 시장에 일본제품을 들여와 뛰어들었다. 정부와 국내 기업이 오랜기간 기술개발과 실증을 거쳤지만 여전히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보급시장에 무임승차했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2005년부터 약 4년간 3,307대의 연료전지시스템을 실제 가정에 설치해 상용화를 위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시스템을 개선해왔다. 초기보급은 정부지원금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초기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판매금액의 약 50%를 보조금으로 지원했다.
 
2009년 보급 초기 기기당 가격은 약 300만엔으로 보조금 140만엔을 지급했다. 이후 기술개발과 판매대수 증가로 시스템가격은 낮아져 최근 100~150만엔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조금 역시 큰 폭으로 줄어 정부의 재정부담을 낮췄다. 일본은 내년부터 보급시장을 탈피해 자유시장(경쟁)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 그만큼 제조사의 품질과 가격경쟁력이 확보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이미 10만대 판매를 기록한 국가가 일본이다.
 
경동나비엔은 바로 이 과정을 거친 백전노장(?)의 제품을 국내에 들여와 시장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경동나비엔은 제품 가운데 발전부만 일본에서 들여온다고 항변한다. 회사의 관계자는 “제품의 발전부만 수입하고 나머지 부품은 국내에서 직접 제조하고 있다”라며 “인버터 구조 등이 원 제품과는 차이가 있고 스마트운전기능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해 일본제품이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내 업체의 의견은 다르다. 경동나비엔이 말하는 발전부는 곧 연료전지의 핵심인 스택(stack)으로 기술이 압축된 곳이다. 업계의 관계자는 “지금까지 연구개발하고 실증한 대상이 바로 스택”이라며 “스택은 기능, 가격, 성능을 좌우하는 연료전지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동나비엔이 들여온 제품과 국내제품의 성능은 큰 차이가 없다. 운전효율 등은 동등한 수준이다. 그러나 수요자의 구매판단을 좌우할 가격경쟁력과 내구성은 일본제품이 월등히 앞서있다.
 
업계에 따르면 경동나비엔이 출시한 제품의 가격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일본 판매가격과 국내에서 추가 부착되는 제조비용을 더하더라도 정부의 보조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수준이라면 국내업체와의 ‘경쟁’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을 정도다. 국내에서는 현재 1kW급 시스템만이 보급되고 있다. 현재 시스템 가격이 3,000~3,300만원/kW 수준인 국내 제품가격은 정부 보조금 2,842만원/kW을 고려하면 수요자가 부담해야 할 자기부담금이 150만원 안팎(부가세 제외)으로 계산된다.
 
다시말해 경동나비엔은 정부 보조금 2,132만원 내에서 이미 수익이 보장된다. 타기업은 2,842만원의 보조금을 수령해도 소비자에게 150만원 가량을 부담시켜야 한다.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선택할 지는 자명하다.
 
국내 기업이 걸음마를 막 뗀 시점에 경동나비엔은 달리기 선수를 데리고 와서는 공정경쟁을 벌이자는 식이다.
 
▲더 큰 문제는 이중적 태도…이해 못해
관련업계에서는 이같은 경동나비엔의 행태에 분노하고 있다. 더디지만 미래시장을 보고 원천기술 확보 노력을 통해 이제 막 상용화에 나서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도의적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관계자는 “해당기관에서 KS인증을 받고 보급시장에 참여했기에 법적 문제는 없다”라며 “그러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상용화에 막 들어선 기존 국내 기업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가 아니겠는가”라고 성토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급시장이 아닌 자율시장에서야 판매확대를 위해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아도, 업체간 공동마케팅을 벌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며 “보급시장은 국내 자립기술을 유도해 상업화를 촉진하고 나아가 해외수출까지 확대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결국 국내기업으로서 도의적 책임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또 있다. 경동나비엔은 보급시장이 열린 PEM기술은 일본 제품을 들여와 시장판매에 나서면서도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FC)기술은 정부 지원을 통해 기술을 확보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SOFC는 연료전지기술 가운데 기술개발 정도가 열세인 분야다. 그러나 연료사용에 제한받지 않고 효율도 가장 높아 기대되는 기술 중 하나다. 현재 국내에서는 주택용뿐만 아니라 건물용, 발전용 등 모든 용도에서 SOFC기술은 상용화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 가능성으로 인해 가장 폭넓게 연구되고 있는 기술이다.
 
경동나비엔은 지난 2011년 국책과제인 ‘건물용 SOFC시스템 개발 및 실증연구과제’ 총괄 주관기관으로 참여해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상당부분 기술 축적이 이뤄졌다는 업계 전언인만큼 이 회사가 SOFC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이중적 행태에 업계는 분노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시장은 있지만 (경동나비엔에) 기술이 없는 PEM분야는 일본제품으로 장악하고 향후 SOFC시장은 정부의 지원을 통해 기술개발된 제품으로 나서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라며 “이런 식으로 업계의 공분을 사면 경동나비엔의 목적도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연구개발 총괄기관인 에기평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에기평의 관계자 역시 “국가에서 연구개발부터 보급까지 지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자립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연료전지기술 가운데 유일하게 보급시장이 형성된 PEM분야는 이같은 단계를 거쳐 막 열매가 맺은 분야”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경동나비엔이 SOFC관련 국책과제에 참여하고 있어 기술개발 흐름과 과정을 충분히 알고 있을텐데 왜 이같은 일을 벌이는 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아쉬워했다.
 
언급했듯 현재로서는 경동나비엔의 보급시장 참여를 막을 법적인 수단은 없다. 그러나 업계 공분을 사면서까지 수입을 계속할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업계의 관계자는 “이제 공은 경동나비엔의 몫”이라며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연료전지가 가져올 미래시장까지 염두해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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