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하 국민대 공과대학장 대한설비공학회 회장
[투데이에너지] 2015년 12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신기후체제인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이 채택됐다. 선진국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주어졌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모든 당사국에 적용되는 협약이다. 개도국을 포함한 196개 당사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등이 담긴 각국의 기여 방안(INDC)을 5년 단위로 유엔에 제출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자체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대비 37%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제출했다. 이중 약 11%는 국제 탄소시장을 활용한 해외 감축분이다. 그러나 여전히 26%는 국내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활용해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정부는 각 분야별·업종별 세부 감축방안을 만들고 이를 시행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전체 에너지 소비량(약 215조원) 중 약 20%의 에너지는 건축물에서 소비된다. 건축물 전체 에너지 소비량 중 약 71%(연간 약 30조원)는 기계설비를 통해 소비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기계설비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기계설비산업은 환기, 냉/난방, 급수/급탕, 위생, 가스, 플랜트 및 자동제어시스템 등의 설비를 통해 건물 및 플랜트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시켜주는 산업분야이다. 인체에 비유하면 심장, 호흡기, 순환기, 혈관 등에 해당된다. 최근 건물의 대형화, 첨단화되고 지하공간의 활용성 증가로 인해 기계설비의 요구수준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기계설비산업은 지열/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와의 연계해 에너지절감과 온실가스의 감축에 실질적인 해법을 제공한다. 따라서 기계설비는 일반건축물 공사비의 15~20%, 병원·연구소의 경우 20~30%, LCD·반도체·클린룸 등 플랜트공사의 경우 50% 이상 공사비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건축물의 생애주기비용(Life Cycle Cost)은 기획설계비, 건설비, 운용관리비, 폐기비용을 모두 포함한 건축물의 생애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의미한다. 건축물 및 시설구조물의 건설비는 생애에 소요되는 총 비용의 일부에 불과하다. 건축물에서 구조재와 마감재의 향상으로 인해 건축구조물의 수명은 50년 이상으로 장기화된 반면 기계설비의 수명은 20~25년 정도이다. 따라서 건축구조물 전체의 수명을 고려하면 건축물의 수명 중 1회 이상은 반드시 기계설비가 교체돼야 한다. 건축물 수명 전기간 동안에 사용되는 운용관리비는 기계설비 장비의 고효율과 제대로된 시공기술에 좌우된다. 건축물의 건설비와 운용관리비는 서로 상반관계를 가진다. 효율 좋은 기계설비를 제대로 시공하면 건설비는 증가하나 이로 인한 에너지절감으로 운용관리비는 절감되는 것이다. 건축물의 생애주기비용 중 기계설비가 전체 비용의 80% 이상 차지한다. 효율 좋은 기계설비는 운전비뿐 아니라 온실가스도 절감시킨다.

기계설비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비용(연간 약 30조원)을 절약하고 건축물의 생애주기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는 고품질의 기계설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계설비의 설계부터 시공, 감리 그리고 준공 후 유지관리까지 체계적인 관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기계설비분야에서 에너지절감과 관련된 설계, 시공, 유지관리 및 기술자 관리와 육성에 대한 법령이 전무한 실정이다. 법적 지원을 받는 전기설비와 달리 기계설비는 하도급 구조로 인해 고품질의 기계설비를 완성하기가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다. 토목·건축은 건설산업기본법, 전기설비는 전기공사업법에 의해 독립된 건설업종으로 인정받아 원도급으로 대접받고 있다. 기계설비만 하나의 전문건설업종으로 분류돼 만년 하도급으로 공사를 수행한다. 녹색건축물의 기계설비 품질확보와 에너지절감을 위해 에너지 절약계획서 제출 대상 건축물을 발주하는 경우에 기계설비공사는 반드시 원도급을 하도록 녹색건축물조성지원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기계설비가 만년 하도급을 탈피해 토목, 건축, 전기설비와 동등한 업종으로 원도급을 받으면서 발전할 수 있도록 기계설비관련법 제정이 절실히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정부에서 2030년까지 목표로 하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절감이라는 두 가지 큰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기계설비산업의 선진화를 통해 가능하다. 기계설비산업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산업계, 학계 그리고 정부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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