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S칼텍스 여수공장 전경.
[투데이에너지] 국내 정유사들이 미국 트럼프 신정부와 OPEC의 감산 결정 등 대외 환경 변화가 업계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가 방향성(변동성)이 정유사의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대외 환경 변화에 따른 유가 추이가 어떻게 될지가 정유사의 큰 관심사다. 

2014년 중반부터 시작된 저유가가 올해 들어 완만한 상승세로 전환하면서 정제마진 개선 등으로 정유사들의 올해 영업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단 정유사들은 단기적으로 내년 유가가 급격한 상승 없이 40~60달러 선에 완만한 등락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며 내년 실적도 괜찮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불투명한 요인으로 인해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기존에 추진해온 경쟁력 강화방안들을 차질 없이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국제유가 전망
지난 2014년 중반까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을 보인 국제유가(두바이)는 OPEC 국가들이 공급과잉 상황에서도 미국 셰일가스를 견제하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증산을 하면서 공급과잉이 더욱 확대돼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다가 올해 1월21일 최저점(배럴당 22.83달러)을 찍은 후 상승세로 전환했다. 올해 1~11월 국제유가는 평균 40.48달러를 기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유가변동 배경에 대해 먼저 OPEC의 증산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 비OPEC 생산이 본격 감소하고 저유가로 인해 석유수요가 꾸준히 증가, 공급과잉이 축소됐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2009년부터 급속히 증가한 미국의 원유생산은 저유가와 투자 감소로 지난해 5월부터 감소세로 전환했다.

이밖에 △미국 및 OECD의 석유재고의 사상 최고 유지 △미 달러화 강세로 인한 원유의 가치 상승 및 석유시장의 투기성 자금 유출 △이란 제재 해제로 인한 이란의 원유 생산 및 수출 증가 △중국 성장률 둔화 우려 등을 배경으로 제시했다.

에경연은 내년 국제유가 전망에 대해서는 미 금리 인상, 브렉시트 악영향, 중국 경제의 경착륙 등의 불안 요인이 상존하지만 2017년 세계 경제성장률 상승이 예상돼 석유수요가 예년 수준을 유지하고 △OPEC의 원유 감산으로 인한 수요와 공급의 균형 회복 △카자흐스탄 등의 신규 유전 가동으로 인한 비OPEC 공급의 소폭 증가 △중동과 북아프리카 정세 불안 △달러화 강세 지속 △중국과 인도의 전략비축유 확보 △미국 트럼프의 석유개발 규제완화 및 증산 등의 요인으로 2017년 두바이유 평균 가격은 올해보다 30% 상승한 배럴당 52~55달러로 전망했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석유수급의 균형 회복으로 유가가 상승세를 보이겠지만 사상 최고 수준의 재고와 달러화 강세로 상승 폭은 제한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 연방준비제도가 최근 기준금리를 0.25% 인상한 데 이어 내년에도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 두바이유 가격 전망($/b), 출처: 에너지경제연구원(이달석 선임연구위원, 2016년 12월8일).

원유 감산과 트럼프가 미칠 영향은 
특히 OPEC의 감산 합의(2017년 1~6월, 일일 120만 배럴 감산)와 미국 트럼프 신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11개 비OPEC 산유국도 감산에 동참키로 했다.

한국석유공사는 감산 기간 동안 유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겠지만 OPEC의 감산 이행률이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유가 상승폭과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OPEC의 감산 이행률을 60%로 예상하고 있다. 로이터는 최근 설문조사 결과 OPEC의 감산 이행률이 50%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1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자는 일관되게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입장으로 자국 내 석유·가스 개발과 생산, 수출을 확대함으로써 국내 고용을 창출하고 중동 원유 의존에서 벗어나는 에너지독립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연방 공유지 수압파쇄법 정보공개 강화 등 오바마 행정부가 도입했거나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각종 규제들의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또 유전 및 가스전 개발 등 상류부문 인허가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파이프라인, 수출터미널 등 인프라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PPP(민관협력사업) 및 민간주도 인프라 투자를 촉진할 수 있도록 조세혜택을 지원하는 내용의 입법도 추진할 계획이다.  

유학식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원유와 셰일가스 증산은 국제 석유시장에서 저유가 기조를 좀 더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저유가 기조 하에서 미국산 원유수입 여건에 맞게 탄력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서는 미국산 원유가 중동 원유와 비교 시 도입 경제성은 낮다”라며 “당장은 원유수입 가능성이 낮더라도 도입여건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전략적으로 유가상승 시 원유와 셰일가스 생산 및 수출을 확대해 이익을 누리면서 유가 하락으로 이어지게 하는 한편 감산을 통해 OPEC의 감산을 유도함으로써 유가상승으로 이어지게 하는 등의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이 국제 석유시장의 조절자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정유사, 완만한 유가상승 ‘호재’
정유사 입장에서 유가상승은 호재이다. 재고평가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고평가이익은 미리 사놓은 원유 가격이 구매 당시보다 오르면서 재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재고평가이익은 회계장부상 가치이지만 단기간에 유가가 급락하는 경우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난해까지 유가하락 시 정유사들은 재고평가이익에서 큰 손실을 봤지만 올해 들어 재고평가이익을 보고 있다.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팀장은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 대금 지급부터 제품 판매까지 15~30일 정도 소요되는 데다 유가가 올해 1월 최저인 배럴당 22.9달러에서 6월 말 46.5달러까지 상승하면서 재고평가 이익을 크게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저유가 기조에서의 유가상승은 정제마진이 개선돼 정유사에 유리하다. 정제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와 유통가격 등을 뺀 이익으로 정유사의 실적에 직접 반영되는 주요 수익 지표다.     

박 팀장은 “유가의 완만한 상승은 도입가격과 현물가격의 차이를 확대시켜 정유사의 이익 개선에 기여한다”라며 “한 달 전 낮은 유가로 구매한 원유로 석유제품을 생산해 유가가 상승한 구간에서 판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당월 기준 두바이 현물유가와 도입유가의 갭은 정유사 실적을 결정하는 요소로 완만한 유가상승과 원/달러 약세가 정유사 실적에 가장 유리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 정유사의 관계자도 “정유사 입장에서는 저유가 상황에서 정제마진이 개선되는 것이 좋다”라며 “저유가로 인한 석유제품 수요가 증가하고 정제마진도 개선돼 유가하락으로 인한 재고평가이익 손실을 어느 정도 커버함으로써 올해 실적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정유사들은 아직 4/4분기 실적이 나오지 않았지만 올해 영업이익이 역대 최대실적을 보인 2011년 6조8,135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경우 셰일오일 생산이 늘어 유가가 하락하는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하면 정제마진이 줄어들 수 있다. 유가 변동(등락)이 크지 않은 유가안정이 정유사에 있어 최대 보약인 셈이다.

정유사의 관계자는 “과거에 유가가 120달러까지 오른 것처럼 앞으로 급격하게 유가가 상승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라며 “오른다고 해도 셰일오일로 인해 6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우리 회사는 내년 유가를 40~50달러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정유사의 관계자는 “미국 트럼프 신정부가 중동 원유 수입을 줄이고 미국 내 원유 생산과 수출을 확대하면 공급과잉으로 유가상승을 억제하고 OPEC의 감산도 6개월간의 한시적인 조치여서 내년 유가를 40~60달러로 전망하고 있다”라며 “내년 상반기까지도 실적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는 경기 활성화에 따른 수요증가가 유가변동의 주 요인이었다”라며 “지금은 산유국의 감산으로 인한 공급 축소가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유가상승이 선순환 구조로 가기 위해선 경기회복으로 인한 수요증가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GS칼텍스 제4중질유분해시설 전경.

수입선 다변화 등 경쟁력 강화 
정유 4사는 최근의 대외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에 해왔던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지속적으로 유가 추이 등을 지켜보며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우선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통해 특정 지역에 대한 원유 의존도를 낮춰 유가 변동성에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올해 11~12월 2차에 걸쳐 미국의 원유 금수조치 해제 이후 국내 정유사 최초로 미국 본토(이글포드)에서 생산된 원유(저유황 경질원유) 200만 배럴을 국내에 들여오는 한편 북해산 포티스, 카자흐스탄 원유 등을 구입하며 도입선을 다변화 하고 있다. 또 2014년부터 미국산 콘덴세이트를 꾸준히 국내로 들여오고 있다.

GS칼텍스의 관계자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 약세, 글로벌 원유 수송운임 하락, 멕시코산 원유와 함께 운송함에 따른 부대비용 절감 등으로 경제성이 확보돼 미국산 원유를 도입하게 됐다”라며 “향후에도 경제성 있는 신규 다변화 원유 발굴 및 도입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SK에너지도 GS칼텍스와 함께 200만배럴의 카자흐스탄 원유 구매에 나섰다.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팀장은 “SK이노베이션은 원유 도입선 다변화로 저가 원유 투입이 가능하고 나프타분해설비(NCC) 보유 등 비즈니스 다각화를 통해 수익 변동성을 방어함으로써 안정적인 이익 창출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인 납사(나프타)를 만들기 위한 콘덴세이트(초경질원유) 2,213만톤을 수입했는데 이 중 51%가 카타르산이었다. 올해 1~4월 누적 수입량 가운데 카타르산 비중은 37.9%로 낮아진 반면 이란산 비중이 2015년 동기 4.1%에서 23.1%로 급증했다. 이란산 콘덴세이트 수입 단가가 카타르산보다 23% 정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일반 원유도 이란산이 다소 저렴하다.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가 이란산 원유와 콘덴세이트 수입 비중을 확대하고 있으며 SK이노베이션의 이란산 콘덴세이트 수입 비중이 93.0%로 압도적으로 많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12일 석유업계 CEO와의 간담회에서 원유 도입선 확대, 수출선 다변화를 통한 수출 확대, 미국의 에너지인프라 투자 진출 등 석유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특히 GS칼텍스는 미국산 원유 도입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허진수 GS칼텍스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GS에너지, GS글로벌 등이 함께 미국의 셰일오일 광구에 투자했고 최근 국내기업 최초로 미국산 셰일오일 200만배럴을 도입하는 등 미국과의 협력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라며 “향후 정부에서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아시아로의 수송 여건을 개선해 줄 경우 미국과의 협력확대를 관심 있게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허 회장은 또 “원유 도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현재 추진 중인 한-멕시코 FTA 등을 조속히 체결해 줄 것”을 건의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함께 정유사 중 가장 높은 비율(39%)을 자랑하는 고도화설비를 통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BTX(벤젠, 톨루엔, 자일렌) 사업 확대 △유류저장사업(울산오일터미널) △윤활유 사업 △혼합자일렌(MX) 공장을 통한 MX와 경질납사 국내 생산 등 포트폴리오를 다양화 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오일뱅크의 관계자는 “정유사업은 장치산업이다 보니 대외 환경변화에 단기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업종으로 기존 경쟁력 강화 대책을 잘 진행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전략”이라며 “트럼프 신정부의 원유 생산 및 수출 확대 정책이 당장의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고 회사의 원유공장 여건에 맞는 유종을 최적의 가격으로 도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S-OIL은 잔사유고도화 설비(RUC) 투자를 여전히 진행 중이며 원유 도입선 다변화보다는 중동산 원유 투입에 집중하고 있다.

S-OIL의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스팟으로 미국산 원유를 저렴하게 들여올 수도 있겠지만 미국산 원유가격이 아직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라며 “미국산 원유의 경우 저유황 경질유가 많고 또 다양한 원유가 들어오면 국내 수입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중동산 고유황 중질유로 최적화 돼 있는 정제설비에 트러블이 많이 발생할 수 있어 수입처 다변화 효과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2015년 국내 나프타 생산량은 2010년 대비 37.7% 증가했다. 세계 최대 나프타 수입국인 한국의 나프타 자급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화 설비가 완비되고 콘덴세이트 수입이 급증하면서 나프타 수율이 상승해 나프타 수입이 감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나프타 수입 감소세는 한화토탈, 롯데케미칼, LG화학이 있는 대산에서 두드러진다. 2014년 하반기 한화토탈의 연간 15만배럴 규모의 콘덴세이트 스플리터 완공 이후 나프타 순수입량이 3분의 1로 감소했다.   

지난 2014년 설립된 현대케미칼(현대오일뱅크-롯데케미칼 합작법인)은 이달부터 하루 13만 배럴의 콘덴세이트 스플리터(MX공장: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부지 내) 가동을 개시해 MX, 경질납사 등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의 관계자는 “MX와 경질납사의 국내 생산을 통해 연간 1조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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