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춘 한국에너지공단 실장
[투데이에너지] 한국에너지공단에 입사한지도 어언 26년이 흘렀다. 3년 전 글로벌전략실이란 낯선 부서로 전출 와서 한국과는 환경이 매우 다른 여러 나라와의 협력에 애를 먹기도 했다. 그래서 Before & After Meeting이란 것을 만들어 매달 출장자와 출장 예정자들이 모여 출장국에 얽힌 각종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결과는 대 성공이다. 어느 나라는 카드를 쓸 수 없으니 달러를 많이 준비해야 하고 달러도 통용이 되지 않는 나라, 현금 결재를 할 경우 호텔비가 10% 정도 저렴한 국가, 어느 호텔이 좋으며 공항에서 시내로 접근하는 방법은 이런 것이 좋다 등등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정보들이 공유된 것이다.

해외출장을 다녀오는 경우 보고서로 결과를 남기게 되나 소소한 에피소드나 그 나라에 대해 느낀 점은 담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는 있으나 대부분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 나라에 대한 비즈니스 환경 등에 대해 느낀 점을 접할 수 없어 많이 아쉬웠다. 예전에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해 경험을 소중히 여겼으나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소홀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 경험들이 모이면 엄청난 자산이 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동안 느낀 소소한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나의 경험을 작게나마 공유하고자 몇몇 나라에서의 경험담을 담아 본다.

▲ 우간다 캄팔라 전경
아프리카에 가다 

에너지공단은 UNIDO와 함께 동아프리카 연합(EAC :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르완다, 브룬디의 5개 회원국으로 구성)에 에너지효율향상 전담기구를 설립하기 위한 협력사업을 했으며 이 기구 설립을 위한 회의에 참석차 20149월 우간다에 들른 적이 있다.

공항에서 수도인 캄팔라로 가는 차 안에서 바라본 경치는 우리가 TV에서 보던 척박한 모습의 아프리카가 아니라 마치 오래전 한국의 시골과 유사하다는 생각과 함께 붉은 흙이 눈에 들어왔다. 황토다. 이런 흙이면 농사가 잘 될 것 같아 동행한 직원에게 물어보니 역시 농작물이 이 나라의 최대 생산품이라고 했다.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감을 완전히 깨는 순간이었다. 길가에 줄줄이 늘어선 엉성한 집들이 참 허술하다는 생각과 함께 예전에 우리가 담을 쌓으면서 많이 사용한 시멘트 벽돌인 일명 브로크를 찍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집들을 이 시멘트 벽돌로 지어졌고 지붕은 양철로 덮었다. ‘저렇게 집을 지으면 단열이 되지 않아 집이 많이 더울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이것도 직업병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 우간다 황토
캄팔라 시내로 들어서자 차들이 엄청 많고 교통체증이 대단했다. ‘차가 엄청 많은데 두바이하고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네라는 직원의 말을 듣고는 차를 보니 전부 낡은 차들이었다. 아마도 중고차를 수입해서 운행하는 것 같았다. 직항이 없는 관계로 두바이를 경유하면서 거리에서 본 고급차들과 비교가 되는 모양이다. 그 순간 아마도 자동차 수리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 많았다.

ODA사업으로 지원한 태양광발전시설이 고장이 나도 제때 수리가 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고충을 전해 들었던 나는 이 정도의 자동차 AS 규모와 인력이라면 조금의 교육으로도 태양광발전소 배터리 교체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며 태양광발전시설 설치 및 관리라는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 중 이들이 요청한 것도 교육이었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학이 있음에도, 고물 자동차를 달리게 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음에도 시스템 부족으로 다른 나라에 의탁하는 모습에 많은 아쉬움을 남긴 대목이다.

동아프리카 연합은 에너지공단과 UNIDO의 지원으로 20166월 에너지효율과 신재생에너지정책을 개발하는 기관인 EACREEE(East Africa Center for Renewable Energy & Energy Efficiency)를 우간다 마케레레대학 내에 설립했다. 향후 이 기관이 중심이 돼 동아프리카 5개국의 공동 에너지정책이 수립될 것이며 에너지효율 향상과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 브라질 태양광발전소 설치 현장
브라질은 신재생에너지 가동 중 

지난 11월에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한-브라질 신재생에너지 현황 소개와 비즈니스를 위한 세미나가 개최됐다. 세미나 다음날 수력, 화력, 풍력 등 브라질 전력의 13%를 공급하는 CPFL사가 운영 중인 태양광발전소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삼성전자 브라질 공장 근처인데 넓은 목장 한가운데 들어서 있었다. 이 발전시설은 1.1MW 규모로 현재 브라질에서 운영되는 가장 큰 태양광발전소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이 넓은 나라에서 아직 큰 프로젝트가 실행되지 않음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다결정, 단결정, 아몰퍼스 등 5가지 모듈과 트래커 방식, 고정식을 한 장소에서 비교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들의 접근 방식에 소름이 돋는 듯 했다. 더 큰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테스트 사이트로 운영 중이며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시판되는 모든 형태의 태양광발전시설을 한 곳에 설치하고 운전현황을 실시간으로 국민에게 공개하는 ‘milestone 태양광발전소건설을 주창하고 있는 나로서는 깜짝 놀란 순간이었다. 브라질에서 유사한 형태의 발전시설을 보게 된 것이다.

오후에는 모듈 제조사인 GLOBO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봤다. 대만 등에서 셀을 수입해 모듈을 제작하는 곳으로 비교적 깔끔한 시설을 가진 신규공장이었다. 브라질에는 모듈공장이 3개가 있으나 2곳은 가동을 하지 않고 자기네들 공장만 가동 중이라고 했다. 지금은 수요가 없어 공장을 가동하지 않고 있으나 향후 브라질에 대형 태양광발전소 건설 프로젝트가 많이 발생할 것이며 이에 대비해 모듈공장을 설립했다는 것이다.

▲ 브라질 태양광발전소 설치 현장
브라질은 땅이 매우 넓고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아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세미나 도중 본인의 농장에 태양광을 설치할 예정인데 한국에서 공사를 할 경우 좋은 점을 묻는 질문을 들으며 그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농장 규모가 커서 자신의 땅에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하고자 검토 중인 농장주들이 많다는 귀띔을 전해 듣기도 했다. 또한 국가에서도 신재생에너지를 장려하고 있어 향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대형 프로젝트가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나 우리 기업이 진출하기 위해서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언어문제 해결과 함께 50%를 브라질 현지생산품으로 사용해야 하는 규정이 있으므로 현지기업과의 협력 등 여러 가지 주의가 필요하겠다.

▲ 캄보디아 가전매장 전경
블루오션 캄보디아 

쌈십일달러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을 내리면서 들은 최초의 말이다. 냉장고 효율기준에 관한 회의를 하고자 들른 공항 입국장에서 비자를 발급받으려고 여권을 내미는 나에게 공항 관계자가 한 말이다. 비자 수수료는 30달러인데 한국말로 31달러를 내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1달러가 급행료인 듯 하다. 후진국은 국가 시스템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씁쓸한 기분으로 공항을 빠져 나왔다.

에너지공단은 2009년부터 아세안 10개국의 에너지효율향상을 위해 아세안에너지센터(ACE, ASEAN Center for Energy)와 다양한 협력을 하고 있다. 2016년에는 에너지효율등급 제도가 없는 캄보디아에 라벨링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공동 노력을 했다. ACE와 캄보디아 정부는 냉장고는 한국, 에어컨은 일본의 도움을 받아 관련 규정을 만들었다. 캄보디아 냉장고 시장규모는 500만달러 정도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매년 시장이 20% 이상 성장하고 있어 우리기업에게는 작지만 미래 알찬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캄보디아는 대부분의 가전기기를 수입하고 있으며 냉장고의 경우 삼성전자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고 베트남 공장에서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제품이 대부분으로 181~250리터의 소형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시장 조사차 들른 가전매장은 마치 라벨의 전시장 같았다. 약 절반 정도의 가전제품에 라벨이 부착되어 있는데 유럽, 태국, 베트남, 일본 등 각 나라별 다양한 라벨을 볼 수 있었다.

특이할 만한 것은 대부분의 일본제품은 일본 또는 태국의 라벨을 부착해 소비효율이 높음을 홍보하고 있으나 한국제품은 라벨을 부착하지 않은채 판매되고 있었다. 캄보디아 광물에너지부 담당자에게 소비자들이 라벨을 읽을 수 있나 물으니 다른 나라 글자이어서 읽을 수 없다고 했다. 매장 매니저는 소비자들은 라벨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라벨을 부착해 고효율을 내세우는 일본의 상술이 놀라웠다.

캄보디아는 2017년 초 주요 가전기기에 대해 에너지효율등급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며 냉장고에 대해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활용하면 효율이 높은 국내 가전사의 시장 경쟁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에너지공단은 2008년부터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 인프라를 구축하고 사업화 기반을 마련하는 등의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개도국 우호기반을 확보하고 온실가스 감축사업 발굴과 우리기업의 해외진출을 도모하고자 기후변화대응 한-개도국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상국가가 개도국으로 환경이 열악하고 국가 정책시스템이 정착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전세계를 누비고 있으며 새해부터는 이를 더욱 강화해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인 에너지신산업 해외진출을 위한 지원센터도 개설한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국내의 많은 중소기업들이 의욕의 하나로 세계시장을 공략하려는 모습을 자주 접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룬 성과를 가지고 다른 나라에 접목하려고 시도하는 경우로 대부분 실패를 겪고 있다. 해외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선진국은 잘 사는 이유가, 개도국은 못사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시스템에 맞춰야 해외 비즈니스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며 상대국의 룰과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비록 그것이 소소한 것이라도 가벼이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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