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장성혁 기자]

#2014년, 포스코그룹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권오준 회장이 낙점됐다. 권 회장은 취임 후 4대 혁신 어젠다를 발표하며 그룹의 체질개선에 방점을 찍었다. 미래성장을 위한 동력도 찾았다. 원천소재와 청정에너지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연료전지는 청정석탄화학과 함께 청정에너지의분야의 2대 신사업이자 메가성장엔진 후보로서 향후 포스코의 메가성장을 이끌 새로운 엔진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전력이 LG CNS, 대성에너지 등과 60MW급 대규모 연료전지발전사업을 추진한다. 지난 1월 정부의 발전사업 허가 이후 SPC ‘대구청정에너지’를 설립하는 등 빠른 사업추진을 기대했지만 정작 연료전지시스템이 발목을 잡고 있다. 포스코에너지가 연료전지시스템 공급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속을 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금융조달 등의 후속업무 진행도 막혀 버렸다. 연료전지시스템 공급시기, 가격 등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전사업 경제성평가를 통한 자금조달은 기대 난망이다.
 
포스코에너지 연료전지사업이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 수는 있는 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다.
 
3년 전만해도 연료전지는 그룹 내 가장 촉망받는 사업으로 상한가를 쳤다. 2014년 3월 포스코그룹 8대 회장으로 취임한 권오준 회장은 향후 그룹의 미래성장을 이끌 메가성장엔진 후보로 연료전지를 선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연료전지사업이 주춤하더니 최근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룹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포스코의 애매모호한 태도로 관련산업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예비 발전사업자는 넘쳐나는데 정작 시스템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시장은 혼돈 그 자체다.
 
어디 그 뿐인가. 이 상태를 지속하다간 포스코에너지가 어렵게 확보한 연료전지시스템 판권까지 넘겨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수주 재개 이후 정작 신규계약은 단 한건도 없어
포스코에너지가 연료전지 수주활동을 멈춘 것은 2014년 하반기부터다. 전기를 생산하는 핵심부품인 스택(Stack) 수명이 문제가 됐다. 보증기한 5년을 채우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제품교환을 해 줄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한 추가비용이 늘어나는만큼 사업경쟁력은 떨어져만 갔다.
 
이때부터 수주활동을 멈춰 세웠다. 문제를 알면서도 계속할 수 없었다. 스택 내구성을 늘리기 위한 연구개발에 나서는 한편 인적 구조조정까지 단행했다.
 
이후 포스코에너지가 다시 수주에 나선 것은 지난해 8월이다. 남동발전이 발주한 ‘분당 5단계 연료전지발전사업’에 모습을 나타냈다. 시장은 안도했다. 포스코에너지가 연료전지사업을 재가동한 것으로 믿었다. 2015년 한 해만 허가된 연료전지발전용량이 473MW로 연료전지시스템 공급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는 얼마가지 않았다. 포스코에너지가 시스템공급에 난색을 표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다. 포스코에너지는 갈지자 행보를 이어갔다. 스택 내구성 문제는 해결됐다면서도 정작 시스템 공급계약을 체결하라는 시장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 수주활동을 멈춘 2014년 하반기 이후 최근까지 신규로 연료전지시스템을 설치한 사업은 노을그린연료전지가 유일하다. 이 외 설치된 연료전지는 기존 발전소와의 LTSA에 따른 교체물량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경영진…“배임 행위”
어찌된 일일까. 신규 연료전지사업을 추진하는 예비 발전사업자는 차고 넘친다. 연료전지시스템 공급을 원하는 이들은 숱하게 본사를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약속할 수 없다’라는 대답만 들었다고 한다.
 
대전시 인근에 연료전지발전사업을 추진하는 한 회사의 관계자는 “처음에는 매각이든 분할이든 연료전지사업부문의 처리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신규계약을 하지 않는가라고도 생각했지만 그 이유만이 아니였다”라며 “포스코에너지와 그룹 경영진이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다”고 분개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전했다. 그는 “사업추진을 위해 만나는 포스코에너지 실무진의 얘기로는 이미 1년 전부터 시스템을 팔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들었다”라며 “최근에는 연료전지사업을 바라보는 경영진과 실무진의 시각차가 커지면서 내부 불만도 쌓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취재 중에 만난 포스코에너지 직원의 얘기는 더 충격적이다. 그는 “최근 경영진이 보이는 태도는 업무상 배임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일침했다. 이익이 안나면 사업을 멈출 수도, 접을 수도 있지만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회사뿐 아니라 자칫 시장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금 시장을 둘러보면 예비발전사업자 대부분이 전기와 스팀 생산을 계획하고 포스코에너지의 MCFC시스템을 원하고 있는데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결국 이들까지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라면서 “내부경영의 문제라면 투자유치나 사업분할에 나서고 이도 저도 안된다면 매각이라도 선언해 사업방향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경영진의 모호한 태도는 신규사업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존 발전사업자에게도 혼란을 주고 있다. 군산에서 연료전지발전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버추얼텍은 지난달 포스코에너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청구금액은 26억원 가량이다.
 
이 회사가 밝힌 소송제기 의견은 이렇다. 포스코에너지가 발전설비 장기유지보수계약 갱신 대신 발전설비 재구매 의사를 밝혀 제안을 수락했는데 재구매 협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기존 계약금액 보다 3배 가량 높은 장기유지보수 안을 제시했다는 것. 이러는 사이 부품 교체와 수리가 되지 않아 연료전지발전 가동이 멈췄고 이 기간 중 발생한 손해를 포스코에너지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독점판권 빼앗길수도
포스코에너지가 보유한 연료전지기술은 독자기술이 아니다. 포스코에너지는 용융탄산염연료전지(MCFC) 원천기술을 확보한 미국의 퓨얼셀에너지(FCE)에 지분투자하고 기술이전을 해 왔다. 세차례 총 8,400만달러를 투자해 BOP, 스택, 셀 제조기술을 차례로 이전받아 포항에 생산시설까지 마련했다.
 
기술이전만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 독점판매권도 부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단 판매에 따른 로얄티를 지급하는 구조다.
 
이 지점에서 발목이 잡힐 수 있다. 포스코에너지가 수주활동을 사실상 접으면서 제품판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만큼 FCE의 강한 항의를 받을 수 있다. 로얄티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항의는 요구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즉 제품판매를 하지 않는다면 부여된 판매권을 내 놓으라는 요구다. 최근 포스코에너지와 포스코의 경영진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라면 개연성은 충분하다. 오히려 반길 수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발전용연료전지시장은 포스코에너지가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은 신재생에너지의무화제도(RPS)의 정부 지원을 이끈 것도 사실상 포스코에너지의 공로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결과는 공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책임도 따른다. 혹여 포스코에너지가 연료전지사업을 접을 경우 시장은 물론 정부의 항의를 피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이 같은 정황과 최근 포스코 경영진이 보여준 태도를 대입하면 연료전지사업은 포스코의 ‘계륵’과 같은 신세다. 이런 상황에서 FCE가 다시 한국 내 영업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포스코에서는 사업포기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제품공급은 FCE가 맡아 연료전지발전시장을 유지하고 포스코는 유지보수에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렵게 조성한 시장을 고스란히 FCE에 헌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국내 발전용연료전지시장은 전 세계 최대시장이다.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성장해 왔다. 설치용량이 늘면서 제품의 기술고도화는 물론이고 EPC, 운전능력, 유지보수 등 연료전지발전을 둘러싼 전방위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확보했다는 것이 업계 측 주장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내시장의 트랙레코드가 쌓이면서 최근 외국의 문의가 빠르게 늘고 있어 향후 2~3년 내 수출활성화가 기대되는 유망품목으로까지 언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포스코에너지의 연료전지사업 향방은 이제 포스코 경영진의 몫으로 남게 됐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3년 전 취임 이후 선언을 기억해야 한다. ‘미래성장의 메가성장엔진으로 연료전지사업을 키우겠다’고 한 약속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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