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소장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투데이에너지]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때늦은 일이지만 환영할 일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탈원전 이슈는 원자력 산업계와 환경단체간의 공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에너지 정책 전환을 국민적 관심사로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새정부는 이미 한국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논쟁을 통해 재인식되고 있듯이 에너지, 그 중 전력은 국민 생활과 경제, 환경과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필수적인 서비스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그 동안 국민과 언론의 관심은 매우 피상적이었다. 정부가 알아서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전력서비스를 제공해오던 시스템에 다들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약간의 요금만 지불하면 그 어떤 서비스보다 효용이 큰 전력을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발전과 송배전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없던 다수의 소비자에게 전력은 스위치만 올리면, 플러그만 꽂으면 무한정 공급되는 에너지였다.

이제 전문가들 간에 오가던 에너지기술과 비용에 관한 얘기들이 안방과 식탁 위로 올라와서 오가고 있다. 2~3주만 뉴스를 건너뛰면 지식과 정보의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소위 전문가들이, 또는 공익을 대변한다는 언론이 바람직한 에너지선택에 대해서 정보와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조용히 지내던(?) 전문가들이 맹활약을 하고 있는데 알만한 사람은 다 알 듯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전문성을 내세우지만 대개는 ‘우리 업계’의 이익 옹호에서 자유롭지 않다. 에너지이슈를 방기했던 언론사와 기자들의 열성도 광고 수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논의의 물꼬는 터졌고 앞으로 광범위하고 열정적인 사회적 에너지를 집약해 건전하고 생산적인 결실을 맺는 것이 한국 사회의 과제다.

그러자면 먼저 논쟁의 과정에서 주어진 정답이 있다는 시각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정답만 고집하면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식의 이분법과 적대적 태도에 사로잡힐 것이고 이런 태도는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 도출을 어렵게 한다. 쏟아지는 기사를 자세히 보면 나라마다 전력믹스가 다르고 에너지 정책의 세부 내용도 차이를 보인다. 각 나라의 정치 경제적 여건과 국민들의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시대적 대의에 공감하면서도 각론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같은 언론사의 다른 기사들 간에도 모순을 보이는 경우도 흔하다. 어떤 각도에서 접근하느냐, 어떤 가치를 우선하느냐에 따라서 기술과 정책의 장단점이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공론화를 거쳐서 2017년 한국 사회가 내린 결론이 지금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이라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론화위는 그 첫 단추를 끼우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역사적 책무가 막중하다.

무엇보다도 최종적인 선택의 주인공은 국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문가가 아니라 왜 시민배심원단이 중차대한 신고리 5·6호기 중단 여부를 결정하느냐는 주장은 국민이 왜 대통령을 뽑는가라는 문제제기처럼 한심한 소리에 불과하다. 왜 우리가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에 돌입하게 됐는지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뿐만 아니라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다른 당의 대선 후보들도 한결같이 신규 원전 건설 중단, 석탄 화력 억제, 재생에너지 확대 같은 에너지전환 공약을 내세웠다. 대선 레이스에 참여하지 못했던 예비주자들도 대부분 탈원전, 탈석탄을 주장했다. 정치인들이 무식하거나 독선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바로 국민들이 원했기 때문이다. 경주지진을 거치면서 원자력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미세먼지에 시달리면서 싼 에너지가 아니라 깨끗하고 좋은 에너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이 서로 다른 에너지믹스, 전력믹스를 가진 것도 국민들의 가치 선호와 선택이 달랐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값싼 에너지가 아니라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선호한다면 당연히 비용은 올라간다. 고급 승용차나 유기농 제품이 비싼 이유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희소식이라면 깨끗하고 안전한 전력믹스로 전환한다고 해도 국민들의 부담은 별로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은 아니고 한참이 지난 후에 매달 커피 한 두잔 값 정도만 아끼면 원자력의 공포로부터 미세먼지의 습격으로부터 아이들과 미래를 지키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취한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손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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