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국제냉동기구 한국위원회 회장.

[투데이에너지] 운전하는 사람이 없어도 거리에 자동차가 돌아다니고 하늘에는 드론이 날아다니며 물건을 배달하고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우리를 도와주고 정보를 제공하는 세상이 곧 열릴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세상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새로운 개념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정보통신에 기반을 둔 사회였다면 이에 지능이 추가되는 사회가 오는 것이 틀림없다.

미래의 과학기술에 대한 개념들은 1920년대의 만화에서부터 등장한 사례가 많이 있다.

개인용 비행체를 타고 물건을 배달한다든지(현재 드론과 유사한 개념), 이발소에서 로봇을 이용한 면도를 한다든지(공장 자동화와 유사한 개념), 집안 청소를 도와주는 로봇(서비스 로봇과 유사한 개념)이 당시의 만화에 등장하고 있다. 어찌 보면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대단하다.

우리나라의 화백 한 분도 지난 1965년에 ‘서기 2000년대의 생활의 이모저모’라는 만화를 그린 바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것이 태양열을 이용한 집, 전자신문, 전기자동차, 움직이는 도로, 컴퓨터, 청소로봇, 소형 TV 전화기와 같은 장치뿐만 아니라 집에서 치료를 받고(원격진료), 공부도 할 수 있는(인터넷 강의) 서비스 등을 소개한 바 있다. 1965년의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약 100달러였던 점을 생각하면 약 50년 전에 요즘의 세상을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한 것이 매우 놀랍다.

이러한 변화는 제조업분야에 접목돼 앞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은 인력, 자본이 많이 필요하고 이에 더해 설비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승객과 차량을 이어주는 우버와 같은 서비스도 대표적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조업 없이 서비스산업이 발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등장함으로써 제조업부문 이외에도 자동차의 판매, 보험, 대여, 관광 등의 서비스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지만 보험이라는 서비스 산업이 발달한다고 해서 자동차 제조업이 더 활성화 되지는 않는다. 제조업과 서비스산업 사이의 연계를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제조업분야에서 대표적인 4차 산업혁명의 예로 언급되는 것이 스마트 팩토리다. 스마트 팩토리의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을 꼽는다. 이 공장은 제품을 시장에 적기 출시하도록 하는 타임투마켓(time to market), 생산설비의 유연성, 효율적 생산 등 세 가지 키워드를 이뤄낸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제품 생산에서 변경할 사항이 있을 때 수동이 아닌 자동으로 작업이 변경된다. 부품마다 고장이 발생하면 실시간으로 이를 확인해 보수할 수 있으며 실시간으로 에너지효율 또한 확인한다. 이를 통해 이 공장은 동일한 면적에서 동일한 종업원 수를 유지하며 생산량을 6~7배까지 증가시켰다고 한다.

왜 사람들은 새로운 패러다임과 기술의 등장에 대해 관심을 가질까? 아마도 기존의 생각과 관행으로는 더 이상 성장의 동력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이 낳은 다층적 불균형,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 고실업률은 노동 생산성 저하, 세계 GDP 성장률 저하라는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노믹스(Trumpnomics)로 불리는 경제 정책과 함께 안정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국채발행 증가, 재정지출 확대, 대폭적인 감세와 미국우선주의에 의한 보호무역으로 지속적 성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만의 이야기인 듯하다. 유럽 경제는 예전부터 있었던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재정위기에 이어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로 인해 많은 불안요소를 안고 있다.

일본은 양적 완화, 재정지출 확대,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3요소로 하는 아베노믹스(Abenomics) 경제 정책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 했지만 막대한 부채, 고령화, 낮은 임금상승률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 또한 생산설비 과잉, 부동산 투자 감소 및 부채 증가로 비관적이었던 경제 전망을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소비수요, 임금 상승, 가격통제 완화, 위안화 가치절하 등의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7년 기준 명목GDP 세계 11위, 무역 규모 1조달러로 수출 7위, 수입 9위로 단기간 내에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것은 틀림없고 대단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는 잠재적인 성장률 하락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으며 가계 부채는 꾸준히 증가해 여전히 국가 경제에 리스크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러한 문제들과 더불어 양극화 심화 현상 및 저성장 장기화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노동 시장 경직성도 계속 이야기되고 있으며 북핵 리스크로 인한 외국인의 투자 심리 악화, 미국의 보호무역으로 인한 한미 FTA 재협상 등의 문제들이 더해지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것은 여전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흔히들 기존 시장에서의 신기술 도입과 새로운 시장에서의 기존 기술(또는 향상된 기술)의 접목을 염두에 둬야 한다. 신기술로 신시장을 여는 것이 멋지게 보이지만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를 쫓아오는 나라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시장에서는 과감하게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일반 시장에서의 경쟁이 심화된다면 고급 시장을 겨냥해야 하고 확보된 기술이 있다면 다른 시장을 물색해야 한다. 이 세상에 없는 물건으로서(또는 서비스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올 듯도 하다.

현재 불편하게 생각되는 것은 없는가? 휴대전화기를 예로 들면 매일 충전하는 것도 조금 불편하고 항상 들고 다녀야 하는 것도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자판을 이용하면서 오류가 나는 것도 불편하고 무언가 하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도 개선되면 좋겠다.

기계설비산업으로 눈을 돌려 보자. 기계설비산업은 인간 생활과 제품 생산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 보관이나 유통 중인 물품의 가치를 보존하는 산업으로서 냉방, 난방, 공기 조화, 냉동, 냉장, 제빙, 환기, 항온, 항습, 저온창고, 공기 정화, 건조, 급배기, 배연, 수증기 발생, 가습, 제습, 열교환, 에너지 저장 등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이는 생활의 안전, 보건, 쾌적성뿐만 아니라 산업의 품질 및 생산성 향상에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계설비산업의 규모는 약 30조원 정도이며 전세계적으로 소득이 증대하고 생활에서의 쾌적성이 더욱 강조될 것이기 때문에 기계설비 관련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우는 세상의 움직임 속에서 과연 우리의 기계설비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가정을 예로 들면 집안의 온습도 조절 및 운영 상태, 보안 상태 등에 대한 정보가 스마트폰과 연계돼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제어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가전 기기들이 인터넷과 연결돼 정보가 교환되며 첫 단계로는 제어, 그 다음 단계로는 최적 운전이 이뤄질 것이다.

또한 운전과 제어에 대한 데이터가 많이 모이면 거주자의 생활 패턴에 맞는 운전 상태를 파악해 최적의 에너지소비로 맞춰주는 인공지능 기술도 실현 가능할 것이다. 어떤 기기가 이상 징후를 보이면 고장으로 못 쓰게 되기 전에 원인을 진단하고 소비자가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미리 수리를 하는 서비스도 보급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앞으로의 지능정보사회에서 나타날 현상들이다.

우리나라의 기계설비산업에서도 신제품에 대한 개념 설계, 새로운 시도를 통한 경험의 축적 그리고 장기적인 고급 인력 투자가 필요하다.

새로운 개념으로 제품을 생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을 찾는 것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기초 및 응용 기술이 대학, 연구소 등에서 많이 연구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발굴해 미래의 먹거리로 상용화할 수 있도록 스케일업(연구실에서 개발된 기술을 실제 제품 생산에 적용할 수 있도록 규모를 키우는 것)해야  한다.

소비자의 다양성 및 개성을 존중해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의 확대 또한 필요하다. 하절기에 냉방으로 사용되는 에어컨에 공기청정기능, 동절기 난방기능, 미세먼지 제거 기능 등을 복합해 기기 이용도를 높이는 것도 좋은 사례이다.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매우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정보화, 지능화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더욱 왕성하게 실현될 것이며 더욱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업에서도, 특히 기계설비산업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잘 이해하고 보다 스마트한 기기의 개발 및 운영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것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투데이에너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