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우리는 지금 기후변화를 넘어 바야흐로 ‘기후 위기’의 시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2015년 12월 UN 기후변화협약 제21차 당사국총회(COP)에서 채택된 ‘파리협정 (Paris Agreement)’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포함 하는 모든 당사국의 온실가스 감축기여를 강조 하였고, 2021년 현재 이러한 내용을 반영한 신 기후체제가 이미 출범해 진행 중에 있다.

■탄소누출(Carbon leakage) 문제의 제기 

제21차 당사국총회에서는 200여개에 달하는 국가가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과 비교해 2℃이하로 유지하고 기온 상승폭 을 1.5℃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한바 있다. 

현재 세계 각 국은 탄소세 부과,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ETS) 시행 등의 정책수단 을 동원하여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탄소세 부과, 배출권거래제 시행 등을 자국 기업들에 한정해 적용할 경우 해당 기업들이 탄소배출 규제가 없는 국가로 해당 산업을 이전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탄소배출감축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는 국가에서의 탄소배출은 감소하겠지만 지구 전체에서의 탄소배출감축은 미미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을 탄소누출이 라고 하는데 실제로 유럽연합의 경우 탄소집약 적 산업인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화학 분야 등 이 탄소배출에 대한 정책적 제약이 없는 국가로 상당부분 이전한 바 있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해 유럽연합은 회원국 내 탄소배출량을 감소시켰지만 유럽연합 수입품에 포함된 탄소배출량이 지속적으로 증가 하면서 국제적 탄소발자국(GHG Footprint)을 줄이려는 유럽연합의 노력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하며 탄소누출의 잠재적 위험을 해결하기 위한 탄소국경조정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EU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의 시행 예고 

유럽연합의 집행위원회는 2021년 7월14일 유 럽연합이 1990년대비 2030년까지 탄소 순배출 량의 55%를 감축하도록 하기 위한 정책패키지 를 제안하면서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에 대한 규정(Regulation)을 함께 제출했다. 

논의과정을 거쳐 최종 확정되기까지 수정의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기반으로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이 시행되리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 될 것이다. 

탄소누출의 문제 및 그에 따른 탄소국경조정(Carbon Border Adjustment, CBA)의 필요성은 이미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 문제는 유럽연합 내부만의 주장이 아 닌 기후정책을 논하는 수많은 연구자들의 다양 한 목소리가 결집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성공적으로 시행되지는 못했지만 미국 오바 마행정부에서도 탄소국경조정(CBA)을 위한 탄소관세 부과방안이 논의된 바 있고 현 바이 든 행정부 역시 탄소국경조정(CBA)에 대한 긍 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유럽연합이 2021년 7월14일에 공개한 EU 탄 소국경조정메커니즘(EU CBAM)은 오랜 기간 국제사회에서 논의돼 온 탄소국경조정(CBA)을 실현하는 유럽연합만의 방식을 공개한 것이기도 하다. 

유럽연합이 공개한 EU CBAM은 EU ETS를 중심으로 해 역내에 수입되는 상품에 내재된 탄소배출량 만큼 의 CBAM 인증서를 구입하는 방식이다. 

탄소국경조정 (Carbon Border Adjustment, CBA)의 한 방식으로서 EU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을 국제사회가 어 느 정도로 수용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좀 더 시 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U에 대한 수출의존도 가 높은 우리나라 역시 EU CBAM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크다.  

■우리는 언제까지 개발도상국으로 남을 것인가? 

기후정책이 어려운 이유는 특정 지역 또는 특정 국 가의 노력만으로 해결이 쉽지 않고 전세계적인 협력 과 공동의 노력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문제는 강력하게 탄소배출 감축정책을 주장하는 선진 국이 사실상 지금까지의 탄소배출량 축적에 상당 부 분 기여를 해왔고탄소배출로 인한 환경변화에 가장 적게 기여한 소위 후진국 또는 미개발국이 기후변화 의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되리라는 데 있다. 

또한 개발도상국들은 여전히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 생활을 개선해야 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며 탄소 배출에 대한 책임을 선진국보다 가볍게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누군가가 ‘탄소배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할 권리’를 버리지 않는 이상 우리가 ‘기후위기’라 부르는 이 현상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단기적으로는 탄소감축을 위한 강력한 규제들이 국제사회에서의 무역경쟁력에 타격을 줄 것이고 국제사 회가 요구하는 규제수준을 유지하는 국가들의 국내 산업은 경쟁력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탄소감축을 위한 기후정책이 전세계적으로 동일한 수준에서 이뤄지는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한 다면 그때에는 탄소감축목적의 규제들은 더이상 국 제무역에서의 경쟁력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이상적인 상황은 쉽게 조성되지 않을 것 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규제의 불균형 해소를 위한 탄소국경조정(CBA) 논의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특정 국가가 ‘탄소배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할 것인지, ‘탄소감축을 통해 경제성장’을 할 것인지의 선택에 따라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이 될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가 결정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또한 논란 많은 EU CBAM이 시행된다면 아마도 국제 무역의 패턴은 상대적으로 탄소 효율적인 국가 들에게 유리해질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에 따른 선진국의 비대칭적 의무를 주장하며 ‘탄소배출을 통한 경제성장’의 권리(?)를 획득 하고 개발도상국으로 남을 것인지, 적극적으로 ‘탄소감축을 통한 경제성장’의 방법을 찾고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인지. 

■EU CBAM에 대한 우리의 대응

기후변화를 완화하고 파리협정에서 언급한 기후행동을 강화하기 위한 EU CBAM의 대의에 반기를 들기에 현재의 상황은 너무 위태롭다. 그렇지만 이러한 대 의에도 불구하고 EU CBAM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대의 뒤에 숨겨진, ‘역내 산업 보호’라는 ‘유럽연합의 흑심’ 역시 숨겨지지 않기 때문 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무역에서의 불공정성을 주장하며 WTO 규정 합치성 여부로 맞대응할 수 없다 는 것 역시 전세계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단기적으로는 EU CBAM이 유럽연합 역내산업보호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 되지 않도록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현재 시점에서 탄소 국경조정(Carbon Border Adjustment) 자체를 반대할 명분은 적다. 그러나 현재 공개한 EU CBAM이 탄소국 경조정(Carbon Border Adjustment)의 적절한 실현방 법인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같은 이유로 탄소국경조정(Carbon Border Adjustment)에 대해 찬 성의 입장을 보이면서 동시에  EU CBAM을 반대하는 것을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로서는 우리가 시행하는 기후정책들이 EU CBAM과의 관계에서 저평가되지 않고 실제 무역과정에서 협상카드로 활용되도록 분석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EU CBAM 대응이 아니라 ‘탄소 감축을 통한 경제성장’의 선도국으로 가기 위한 대응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구축해야 할 것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다. ‘탄소감축을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서는 저탄소 산업구조로의 투자와 기술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이 뒷받 침되려면 앞으로의 정부 정책이 변함없이 ‘탄소감축’ 및 ‘탄소집약 산업에 대한 퇴출 및 전환’을 지지할 것 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한 때만 참고 기다리면 정부가 결국 탄소집약 산업에 대한 지원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는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개발 및 투자의욕을 꺽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

EU CBAM에 대한 대응 역시 우리는 약자이고 개발 도상국이니 봐 달라고 매달리는 식의 대응이 아니라 우리가 선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이를 공고히 하고 이를 통해 반대급부를 받아내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평상시라면 상상하지 못했을 해결책을 찾으면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변 하기도 한다. EU CBAM이 우리 산업에 위기라고 느껴 진다면 지금이 진정한 기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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