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운명의 덫

처음에조필호가 그랬듯이 길가의 가로수 뒤에 몸을 감추고 이경아의 레코드 가게 안을 들여다보던 박철승은 그녀의 미모에 반해 입을 벌린 채 군침을 흘렸다. 바람난 남편을 미행하면서 현장을 덮치는 일은 지겹도록 해봤지만, 이번처럼 바람난 남자의 정부를 위해 일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또한 이경아처럼 아름다운 여자는 보지 못했었다.

박철승의 머릿속에 비디오 테이프를 집어넣은 것처럼 벌거벗은 오승구가 벌거벗은 이경아를 껴안고 침대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뒹구는 장면이 담긴 필름이 돌아가고 있었다. 복도 많은 사람이지…, 하면서 그는 자신도 그녀 같은 미녀와 한 번이라도 자 볼 수 있다면 원도 없겠다는 질투를 해본다.

한동안 그렇게 서 있던 박철승은 정신을 가다듬고 의심가는 사람이 있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눈에 확 띠는 사람은 없었다. 운이 좋다면 오늘 안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일테고, 그는 이번 일이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루종일 밖에 서서 이경아를 지켜본다는 건 무리일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짓이었다. 박철승은 레코드 가게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장소를 찾기 위해 도로 건너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안성맞춤으로 맞은 편 건물 이층에 커피숍이 하나 있었다. 그는 두말없이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바로 그 커피숍에서 조필호가 창가에 앉아 박철승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그는 유난히 눈에 띠는 행동을 하면서 레코드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 박철승이 왜 레코드 가게 앞에서 서성거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를 잡기 위해 오승구가 흥신소 직원을 고용했다는 것을.

조필호는 섬뜩한 느낌에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그건 잘못하다가는 자기가 오승구를 죽이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죽을 것 같은 예감이었다. 오승구를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이제 자신을 먼저 보호해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조필호는 아무래도 일진이 좋지 않아 오늘은 일찍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카운터에서 커피값을 지불하고 나서 문을 밀치려던 조필호는 깜짝 놀라며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문을 밀치려는 순간 먼저 문이 저절로 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더욱 놀란 것은 앞에 정면으로 마주친 남자의 얼굴을 보고서였다.

레코드 가게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남자가 틀림없었다. 처음에 당황해 머뭇거리던 조필호는 얼른 표정을 감추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혹시나 자신을 남자가 눈치채지 않았나 하는 의심스러운 마음에 뒤를 돌아봤지만 남자는 커피숍 안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급하게 건물을 빠져나와 마음의 여유를 찾은 조필호는 그 남자 역시 레코드 가게앞에 서성거릴줄 모르는 자기를 잡기 위해 커피숍 창가에 앉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에, 신이 도와주는 것 같은 즐거운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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