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투데이에너지] 서양의학의 시작과 발전 과정에 해부학은 매우 큰 기여를 했다. 지금도 해부학 실습은 의학도에게 가장 중요하다.

국내 의과대학교에서는 종종 의학발전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어주신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시신기증자 추모제를 열기도 한다.

최근에도 부여에서 70대 노부부가 함께 시신을 기증해 화제가 됐다. 지난해 연말에는 암투병 끝에 숨진 한 약사가 모교 의대생들의 연구 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시신을 중앙대학교에 기증했다. 암 연구를 위한 고인의 높은 뜻이 담겨있다.

한국남동발전의 200MW급 여수화력 1호기가 1975년 화입 이후 37년간 사용수명을 다하고 24일 폐기식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이제 여수화력 1호기 설비의 해부학적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수화력은 발전설비의 일반적 설계수명인 20~30년을 훨씬 지나 사용됐으므로 설비의 주요 부위에 설계 시 예측했던 손상이 발생했는지 추가적으로 어떤 손상이 발생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샘플이다.

발전소 운전 중에는 검사하거나 볼 수 없었던 부위의 손상이 어떠한 지 확인함으로써 향후 노후 발전소를 신뢰성 있고 안정적으로 운영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신규 발전소 설계에도 반영할 수 있다.

보일러의 2차 과열기 헤더 내부 스터브 튜브 사이의 균열발생, 주증기관 및 재열증기관의 Y-부, T-부의 용접부 손상 상태, 곡관부의 내부 침부식 상태 및 인성의 저하 상태 등은 평소에는 확인이 거의 불가능한 정보이다.

터빈에서도 로터의 인성 열화도, 주증기가 닿는 내부케이싱의 열피로 손상상태, 루프 파이프의 손상 등 발전소 수명 연장 및 신뢰성 확보의 핵심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화력발전설비와 같이 고온에서 사용되는 설비는 사용시간에 따라 노화가 진행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이는 상온 설비에는 나타나지 않는 현상임) 설계 수명이 정해져 있고 발전소의 주기기 정비 시 그동안 소비된 수명을 측정해 잔여수명 기간을 평가하게 된다.

따라서 표면복제법, 경도측정법, 조직대비법 등 여러 가지 잔여수명평가 기술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미국, 유럽 등의 전문가 모임에서도 기존의 잔여수명평가 기법들의 적용 한계나 평가의 정확성을 객관적으로 확인해 보기 위한 방안을 찾아보자는 의견이 많다.

폐기되는 여수화력 1호기의 보일러 및 주증기관을 해부학적으로 평가하면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기존의 설비 잔여수명평가 기술을 한 단계 높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첨두부하를 담당하면서 많은 주말기동정지(WSS)와 일일기동정지(DSS)를 수행한 설비는 수명 소비율이 높아서 이런 설비를 대상으로 평가를 시도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경우이다.

따라서 폐기되는 여수화력 1호기는 고철이 아니다. 세계에서 독보적인 경제개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나 확보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닌 연구 대상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와 같은 가치를 지닌 영월화력, 부산화력 등을 고철로 폐기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시신기부와 해부학이 서양의학을 발전시켰듯이 이번에는 여수화력 1호기의 시신기부가 화력발전설비의 수명연장 및 설비 운전신뢰성 확보 기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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