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기봉 중앙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투데이에너지] 정부는 국민의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고 사고를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규제를 둔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을 위해 제정한 규제들이 국민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유로운 생활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해 규제 완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어떻게 합의해야 하는 것인가? 

국가의 위험도 규제방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공개적인 방식’과 ‘폐쇄적인 방식’이다. 전자는 이해 당사자 그룹이 협의해 규제 사항을 결정한다. 각자 사고 위험도에 대한 과학적 근거논리를 제시하면서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하거나 사회적 또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공개적으로 각 그룹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되도록 경쟁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의사 결정 방식이 이렇다.

이때 정부 정책 당국자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규제의 필요성을 관련된 사업자나 NGO 등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국민에게는 사고 위험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고 정부에게는 규제에 의해 영향을 받는 국민들의 불편함에 대한 의사 전달이 돼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고 난 후에 규제가 제도화되게 된다.

후자의 폐쇄적인 방식에서는 국가 정책 결정에 영향력 있는 소수의 전문 관료 및 과학적, 기술적 전문가 들이 위원회 등에서 내부적으로 심층 검토하고 협의해 미리 정책 방향을 결정해 공개하는 방식이다. 정책이 공개된 이후에야 주변 관련 당사자 그룹들이 이 결정사항을 보완하는 정책 논리를 제시하고 개선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방식에 가깝다.

즉 공개적 논쟁 보다는 사전 정책 결정의 막후 실력자와의 개별 접촉을 통해 본인의 정책안을 설득해야 하는 방식이다. 규제 사안별로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우리나라도 후자에 가까운 방식이라 생각된다.

공개적 방식의 장점은 공개적 토론 과정에서 어떤 에너지 사고의 ‘실제 위험도’가 높은 지 낮은 지에 대한 검증과 동의가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인식 위험도(risk perception)’는 실제위험도와 다른 착각에 의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사고를 주변에서 직접 경험하고 나면 갑자기 비슷한 사고의 위험도를 높게 인식하게 된다.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나면 상당기간 동안은 운전하는 것을 더욱 위험하게 느껴 인식위험도가 높아지지만 사실 실제 위험도는 동일하다.

최근 정부에서는 에너지안전의 확보를 위해 국내 주요 에너지시설의 위험도를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관련된 에너지안전 제도와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 총 82명의 민간 전문가를 위원으로 하는 ‘에너지시설 안전점검 민관합동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4월부터 분야별로 가스, 전력, 석유, 광산 등 107곳의 현장을 점검했다.

또한 전체적으로 안전문화, 공기업 경영평가제도, 국가 안전관리 거버넌스 등 에너지 설비 운영에 있어서 실제위험도에 큰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들에 대해 전문가적 시각으로 시급한 사안과 중장기적 사안을 분류해 제도개선안을 도출하고 있다.

이번 민관합동위원회의 활동은 우리나라도 이제 에너지사고 위험도를 저감시키기 위한 규제 결정 방식을 ‘폐쇄적인 방식’에서 ‘공개적인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에너지시설의 중대 사고위험도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국민의 인식이 달라서 발생하는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힘겨루기가 없어지기를 기대한다.

또한 과학적, 공학적 근거에 의해 확인된 실제위험도에 대한 이해가 정책 입안자나 일반 국민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란다. 실제 위험도가 높으면 정부 규제 수준이 높아져야 하고 인식위험도만 높으면 소통과 홍보에 의해 정부 규제가 없어도 안전함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사고를 방지하면서도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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