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기봉 중앙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투데이에너지] 올해 초 중국 북경에서 리스크 거버넌스(Risk Governance, 위험 통제)에 대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IRGC(국제 리스크거버넌스 평의회)에 중국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기념으로 열린 회의였다. 북경에 IRGC 중국 협력센터도 설립됐다.

회의 참석 중에 중국이 앞으로 우리나라보다 사고 예방 및 통제를 더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국은 개방 이후 에너지소비율이 약 5.7배 증가했고 도시인구도 19%에서 48%로 증가하면서 여러가지 사고 및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 인식하고 근본적인 대처 방법을 국제적 전문가와 교류하며 찾고 있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200여명의 참석자 중에 한국은 학계 2명뿐이었고 중국에서는 교수 외에도 정부 관료, 기업, 국가 연구소 등 다양한 기관의 참석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우리나라는 IRGC 활동에 아직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고 방지 대책들이 글로벌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되돌아 봐야할 필요가 있다.

사고 방지, 안전 확보의 가장 기본은 ‘제3자’가 안전을 챙긴다는 것이다. 에너지설비 관련자 즉 에너지 생산자·공급자와 에너지 사용자 외에 안전을 책임지는 다른 조직이나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기건 가스건 생산자는 안전보다는 저렴한 생산과 판매수익 향상이 목적이며 사용자도 안전보다는 값싸게 사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추가 비용이 들거나 안전한 사용을 위한 번거로움은 싫어한다. 사고는 운이 없어서 당한다는 개념이 퍼져있다.

그래서 국가나 도시나 기업이나 CRO(C hief Risk Officer)가 있어야 한다. CRO는 운동 경기의 룰과 같이 사고를 막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룰을 지키도록 하는 심판의 역할을 한다.

경제적 재원 또는 인력 자원이 한정돼 있으므로 한 가지의 리스크와 관련돼 서로 경쟁하는 부처에 어떻게 이를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CRO(Country Risk Officer)가 국가에 필요하다. 이를 행정안전부나 소방방재청이 할 수는 없다. 선수가 심판을 동시에 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심판은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 힘이 실린 CRO가 국가에 필요하다.

지난해 지식경제부의 에너지시설안전점검의 대책 중 하나로 국내 발전회사에 모두 CRO 조직을 두고 안전관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권고했다. 바람직한 정책이다. 하지만 CRO가 선임돼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역시 거버넌스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 CRO 조직이 ‘제3자’입장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안전관리위원회의 심의 또는 의결도 독립적으로 이뤄지도록 위원이 구성돼 있어야 한다. 안전관리한다는 무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작동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고가 나면 관련 부처가 담당이 아니라고 피하고자 하면서 사고 이후 조직이나 예산이 확보될 때에는 서로 담당 부처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상위기관 개념의 ‘제3자’, 권한 있는 심판을 정하는 정부 거버넌스를 짜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런 제3자를 두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차선책으로 부처간 공동책임 또는 일정 비율로 부처간 공동 실적으로 간주하는 방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에서도 불산이 일부 함유된 폐수 펌프 교체 시에 사고가 발생했다. 다시 동일한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번사고의 귀책사유나 누굴 처벌하느냐만 따지고 있는 것보다는 사고위험을 사전 또는 사후에 관리할 ‘리스크 거버넌스’가 잘 작동되도록 시스템이 구성돼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사한 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리스크 거버넌스의 부적절함을 수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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