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박동위 기자] 정부가 기름값 안정화를 위해 야심차게 도입한 알뜰주유소를 놓고 여전히 말들이 많다.

지난 2011년 12월 경기도 용인에서 처음 문을 연 알뜰주유소 1호점(경동알뜰주유소)은 주변보다 리터당 최대 100원 저렴하게 기름을 판매해 화제가 됐다. 개점 첫 날 경동알뜰주유소는 휘발유는 리터당 101원, 경유는 99원이 용인 소재 일반 주유소들보다 저렴했다.

알뜰주유소가 문을 연지 1년4개월여가 지난 현재는 어떨까?

5일 기준 경동알뜰주유소는 용인 소재 일반 주유소들보다 휘발유는 리터당 60원, 경유는 87원 낮았다. 가격 격차가 대폭 줄어든 셈이다.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오피넷을 보면 경동알뜰주유소보다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주유소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알뜰주유소가 이름만 알뜰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알뜰주유소는 기존의 석유유통시장에서 가격을 최대한 절감해 저렴한 기름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도록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터당 100원이 저렴한지의 논쟁에만 휘말리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알뜰주유소는 과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

본지는 한국자영주유소연합회(회장 정원철)의 협조로 지방에 있는 알뜰주유소를 직접 찾아 그 실상을 알아봤다.

▲ 통영 통제영주유소 전경.


경남 통영에서 통제영주유소를 운영하는 양성영 사장에게 지난 4년은 악몽 같았다. 어려움의 시작은 인근에 이마트주유소(SK폴)가 들어서면서 부터다.

이마트주유소는 리터당 100∼150원 싼 가격을 내걸었는데 파워는 대단했다. 통영지역 석유제품 구매력의 60%를 끌어갔다. 사실상 독점이 된 것이다.

양 사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평소 한달에 1,200드럼 이상을 팔던 것이 600드럼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매출이 절반으로 줄면서 지갑이 얇아졌고 개인사까지 겹치면서 삶의 의욕도 사라졌다.

정유사인 SK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쩔 수 없단 말만 돌아왔다. 심한 배심감을 느끼며 주유소를 정리하는 쪽으로 심각하게 고민하던 상황에서 알뜰주유소를 알게 됐다.

하지만 선뜻 전환하기는 부담이 됐다. 정유사와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고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는 것이 과연 해답이 될지 확신도 없었다.

그러던 중 자영주유소연합회를 통해 알뜰주유소의 가능성을 봤고 정유사의 반대를 무릎쓰고 전환을 단행했다. 앉아서 죽느니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것이다.

양 사장은 현재 누구보다 열정적인 알뜰주유소 신봉자가 됐다. 전환 후 월 600드럼 수준이던 판매량이 1,500∼1,600드럼으로 과거보다 더 늘었기 때문이다.

싸게 팔다보니 마진율은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파는 물량이 대폭 늘어 이익은 더 남았다. 말그대로 죽다 살아 났으니 알뜰주유소가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알뜰주유소 전환 후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아직 고민거리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정유사와 계약을 해지하는 과정에서 소송에 걸린 것이다.

양 사장은 정유사가 인근주유소와 경쟁을 감안한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을 공급한다는 계약서 내용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지사유가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정유사는 계약기간 만료 이전에 해지한 만큼 문제가 있다며 맞서고 있다.

정유사는 현재 2억여원의 피소를 제기한 상태로 최근 첫 공판이 있었다. 담당 변호사가 이길 수 있다고 말하지만 피소를 당한 입장에서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양 사장은 그래도 “알뜰주유소 덕분에 살 수 있었다”라며 “불과 몇달전만 하더라도 눈 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목포에서 만난 박장기 대성주유소 사장도 비슷한 경우다. 지금은 알뜰주유소 덕분에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힘주어 말하지만 정유사폴(SK)을 달고 주유소를 운영할 당시 심각한 경영난으로 걱정을 안고 살았다.

그도 처음에는 알뜰주유소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정부가 하겠다니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정원철 자영주유소연합회 회장이 나서서 전환하는 것을 보고 힘을 냈다.

전환 후 월 400∼500드럼 수준이던 판매량은 1,000드럼 이상으로 늘었다.

최근 그는 인근 알뜰주유소 사업자들과 물량 공동구매를 통해 가격을 낮추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정유사의 손에서 벗어나 스스로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전자상거래를 통해 구매하면서 스스로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특히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이 서로 가격 정보를 교류할 정도로 돈독해졌다고 했다.

한 주유소가 전자상거래에 싸게 나온 물량을 발견하면 다른 주유소에도 알려줄 정도로 동반자 관계가 된 것이다.

정유사폴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박 사장에 따르면 정유사 영업사원이 와서 “사장님만 싸게 드렸으니 다른데 말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주유소 사업자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정유사는 이런 방식으로 주변을 다 경쟁자로 만들었고 이를 악용해 주유소들 마다 서로 다른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해왔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박 사장은 “정유사 틀에 있을 때보다 신경쓸 건 많아졌지만 주유소를 운영하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고 전했다.

이번 경상도·전라도 지역에서 만난 10여명의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은 과거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고민이었다면 최근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매출이 크게 늘면서 바빠지니 인력을 충원해 부족한 일손을 매꿔야 하느냐 여부가 그것이다. 사실상 행복한 고민인 셈이다. 다들 웃으면서 이런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문제가 달랐지만 해소를 원하는 목소리는 경상도·전라도지역 사업자 모두에게서 터져 나왔다.

전라도지역 사업자는 지난 겨울 한국석유공사로부터 기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다. 온도가 크게 내려 가면서 정량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석유제품은 온도가 추워지면 부피가 수축하고 반대의 경우 팽창한다. 예컨대 같은 20리터를 넣더라도 실제 들어가는 양은 겨울에는 많고 여름에는 적다. 온도를 15도로 유지해 제품을 거래하는 온도보증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상거래로 석유제품을 주문 시 2만리터 단위로만 주문해야 하는 부분이 해결되길 바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사업자는 “지방은 탱크가 작아서 작게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안되니 매번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화물복지카드가 제 역할을 못하는 문제도 거론됐다. 특정 정유사 주유소에서 활용하는 카드가 워낙 공고하다 보니 알뜰주유소는 경쟁에서 밀린다.

이처럼 알뜰주유소들이 처한 영업환경이 서로 다르다 보니 요구사항도 다양했다.

이에 ‘알뜰주유소협회’를 만들어 정부와 사업자를 이어줄 통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4월 말 기준 알뜰주유소는 913개소에 달하고 있으며 전환 신청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1년4개월여가 지난 알뜰주유소 정책은 그동안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일부 알뜰주유소들만 배불린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에 만난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은 전환 이전보다 영업환경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정유사의 틀 안에서 벗어나 스스로 영업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알뜰주유소 정책은 공동구매를 통한 안정적인 석유제품의 공급과 정유사의 수직계열 구조를 탈피한 주유소들을 시장의 신규 경쟁자로 진입시켜 가격경쟁을 촉진해 휘발유 가격을 인하하는데 주요 목적이 있다.

정부의 주요 목적이 달성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는 알뜰주유소로 전환되는 주유소들이 휘발유 가격을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공급가격이 공개되지 않으면 이들 알뜰주유소들이 이전에 비해 오히려 높은 마진을 남길 수 있는 여지도 없진 않다.

물론 정부의 정책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고 한다면 이들 주유소의 가격인하 효과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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