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범 박사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처
우리경제가 속해 있는 동아시아 경제권은 국제석유시장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은 어느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이다. 한국, 일본 및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경제권은 일일 약 1,270만배럴의 석유를 소비해 전세계 석유소비의 17%를 차지하고 있고 일일 세계 석유교역의 22%인 967만배럴을 수입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석유소비 및 교역은 미국 및 유럽에 이어 세계 3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유국에게는 세계 3대 석유시장 중의 하나를 제공하고 있다 하겠다.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지역은 여타 지역에 비해 불리한 가격으로 원유를 도입하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은 아시아 지역에 판매하는 원유의 가격을 여타 지역에 비해 높게 책정하고 있다. 이런 높은 가격 현상을 소위 ‘동아시아 프리미엄(East Asia Premium)’이라 일컬어 지고 있다. 사실 이 현상은 동아시아 지역 원유가격에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같은 세계적 이슈가 되지 못 하고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프리미엄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과 일본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지만 우리나라는 최근까지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지 못 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금년들어 국내 주요 언론에 이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우리 경제도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프리미엄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중동산 원유의 동서 지역간 판매가격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동 지역은 주지하다시피 세계 최대 원유 생산지역으로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원유를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중동 산유국들은 각 지역으로 원유를 판매함에 있어 상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일정 기간 동안 원유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하고 원유를 판매하는 기간계약판매(term contract sales)의 경우 이들 국가들은 가격산정 공식(price formula)을 이용해 원유가격을 책정하고 있는데 이 가격공식에 의해 산출, 적용되는 가격이 각 지역마다 상이하다. 미주지역, 유럽 지역 및 아시아 지역 가격이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아시아 지역 가격이 미주 지역이나 유럽 지역보다 눈에 띌 만큼 낮게 나타나고 있다. 동아시아 프리미엄이란 바로 동아시아 지역 원유 구매자들이 유럽이나 미주 지역 구매자들 보다 웃돈, 즉 프리미엄을 주고 원유를 구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가격차는 1991년부터 지속적으로 존재해 온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례로 사우디의 대표유종인 아랍 라이트(A/L)유 가격을 살펴보자. 사우디가 매월 발표하는 이 가격을 지난 91년부터 2001년까지 평균해 보면, 아시아 지역은 $18.26/bbl, 유럽 지역은 $17.30/bbl 그리고 미국지역은 $17.25/bbl로서, 아시아 지역에 가장 높은 가격으로 판매했다. 이는 동아시아 프리미엄이 미국에 비해 $1.01/bbl, 유럽에 비해 $0.96/bbl 높게 형성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A/L유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랍 미디엄 및 아랍 헤비와 같은 사우디 원유 대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다.

동아시아 프리미엄 문제는 사우디 원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중동 산유국들은 가격 협력관계를 통해 사우디뿐만 아니라 여타 국가들도 지역별로 가격 차이를 두고 판매하고 있다. 일부 산유국들은 이들 3대 지역에 원유를 동시에 판매하고 있지만 지역별 판매가격이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가격이 알려진 경우에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치적 이유 때문에 아시아와 유럽 지역에만 판매하고 있는 이란의 지역별 판매가격은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역시, 유럽과 아시아에 원유를 판매하고 있는 쿠웨이트는 2001년 아시아 지역 기간계약 판매 가격은 연평균 $20.30/bbl이었지만, 유럽지역 판매가격은 $22.32/bbl였다. 즉, 아시아 지역 원유구매자들은 쿠웨이트 원유를 $2.02/bbl, 약 10% 비싼 가격으로 구입했고, 쿠웨이트 원유의 아시아 프리미엄은 약 $2/bbl에 달했다. 이는 바로 중동산 원유의 지역별 판매 가격차이는 사우디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동 산유국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동아시아 프리미엄은 최근 몇 년간 더 커진 경향을 보이고 있다. 90년대 전반, A/L의 동아시아 프리미엄은 $1/bbl이하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94년을 지나면서 $1/bbl로 확대되었다. 특히, 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이에 의한 석유수요 급감과 국제유가 폭락기에는 동아시아 프리미엄은 $2/bbl로 높아졌다. 이 가격차는 2000년 12월에는 최대 $4.5/bbl까지 이른 적도 있다. 이런 추세는 동아시아 프리미엄이 유가 영향력 높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동아시아 프리미엄의 영향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유럽이나 미주 지역에 비해 연간 약 40억달러를 중동 산유국에 추가로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연간 5억내지 7억달러를 동아시아 프리미엄으로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원유구입에 한정된 계산이다. 국제원유가격과 연계되어 있는 LPG, 천연가스 및 여타 석유제품들의 가격을 고려하면 동아시아 프리미엄의 영향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90년대 초반 냉전이 붕괴되고 국제석유시장이 자유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많은 학자들은 국제유가가 동일하게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많은 석유경제학자들은 국제석유시장, 특히 국제원유시장은 하나의 큰 바다와 같다는 비유를 사용하였다. 미국 MIT대학의 모리스 애덜만(Morris Adelmann) 교수같은 석학은 일찍이 1984년에 “세계 대양처럼 세계석유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수조(one, great pool)와 같다”고 말하였다. 이는 큰 바다가 무수히 많은 강들이 흘러들어 이뤄지듯이 세계 석유시장은 많은 산유국들의 석유수출에 의해 이뤄지며 이것은 큰 수조와 같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세계 석유시장이 지역적으로 나눠져 있다는 기존의 시각을 부정하는 것으로써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다. 석유가 세계 경제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채택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석유시장은 공급원을 중심으로 지역적으로 나눠져 있었다. 먼저, 미국시장은 미국 내의 생산으로 충당되고 해외로부터 수입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국제석유수급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유럽시장은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개발해 놓은 중동산 원유와 일부 미국산 원유가 공급됐으며 아시아지역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와 이란, 사우디, 쿠웨이트와 같은 중동산 원유가 주로 공급되었다. 이는 주요 석유 생산지와 소비지가 철저히 지역적으로 연결돼 특정지역 원유가 기존 소비지 이외에는 거의 공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델만과 같은 ‘수조론자’들은 70년대 1차 석유위기를 겪으면서 중동, 중남미, 미국 및 동남아시아와 같은 기존의 석유공급지 이외 북아프리카와 북해에서 대규모 석유가 생산되고 중국이 모택동 사후 경제개혁 자금 마련을 위해 일본 등 아시아에 원유를 수출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소련도 석유수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현상을 목격하고 세계석유시장은 기존의 구조와는 다른 큰 수조와 같다는 주장을 폈다. ‘수조론자’들은 이런 구조 하에서는 원유의 지역간 이동이 전혀 장애를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리적으로 장거리인 경우 적정한 수송비 상의 차이만 보상된다면 석유 교역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즉, 장거리 원유 교역이 활발히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지역간 가격 차이는 수송비 차이를 반영하는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다. 둘째, ‘수조론자’들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지역 간 큰 차이가 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유가는 특정지역의 석유수급 조건보다 전세계적인 석유수급 조건에 의해 움직이며 지역간 유가 변동은 다소 시간상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으나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에 근거해 ‘수조론자’들은 세계경제가 자유화 및 개방이 되면 단일의 국제석유시장이 형성되고 석유가격의 지역적 차별화 현상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동아시아 프리미엄의 가장 큰 원인은 동아시아 경제권의 중동 원유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최대 원유수입국인 일본의 중동 의존도는 86%에 이르고 있고 다음인 한국의 의존도는 약 77% 그리고 최근 원유수입이 급증하고 있는 중국의 원유 중동의존도는 53%에 이르고 있다. 동아시아 3국 전체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72%이다. 이 의존도는 유럽이나 미국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미국의 중동의존도는 25% 유럽의 의존도는 28.8%이다. 또한 유럽과 미국의 수입원은 상당히 다원화돼 있어 미국은 미주 지역에 대해서만 50%의 의존도를 보일 뿐이며 유럽은 특정지역에 대해 28.8% 이상의 의존도를 보이고 있는 지역이 없다. 이런 다원화된 원유 수입은 특정 지역이 가격을 주도적으로 형성하는 것을 막는 효과를 나타나게 해 다양한 원유 공급원들이 상호경쟁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하고 있다.

중동 산유국의 판매정책도 동아시아 프리미엄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다. 중동, 구체적으로는 걸프만 연안국가들은 전체 원유 수출 물량의 69%를 아시아 지역으로 내보내고 있다. 이는 중동 산유국들이 동아시아 프리미엄을 유지함으로써 전체적인 석유 판매수입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는 기간계약 판매에 있어 최종 행선지(final destination) 제약조건을 붙이고 있다. 이는 대서양 연안으로 팔려나간 물량이 가격이 비싼 동아시아 지역으로 전매되는 것을 막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행선지 제약 조건이 없어 제3자 전매가 이뤄질 경우 사우디의 시장 장악 능력은 약화될 것이다.

동아시아 국내 석유시장 구조가 프리미엄의 존재를 도와주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영국의 폴 호스넬(Paul Horsnell)에 따르면, 동아시아 지역 국내석유시장은 제품가격과 석유수입이 통제돼 정유회사들에게 이윤을 보장해 주는 구조를 갖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는 정유회사들이 국제원유가격에 둔감해 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편다. 이는 동아시아 프리미엄이 존재하는 이유의 일부가 동아시아 지역 원유구매자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요인도 거론되고 있다. 사우디가 처한 정치적 조건을 감안하면 사우디는 동아시아 지역에 유리한 가격으로 원유를 판매하려한다는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를 위시한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수출을 경제적 목적뿐만 아니라 안보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즉,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은 중동 산유국의 군사적·정치적 안보를 보장해 주고 있는 미국 및 유럽 국가들에 대해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를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90년 걸프전을 통해 안보상의 심각한 위협과 자위능력의 부족을 경험한 중동 산유국들은 미국의 정치적 안보 제공과 안정적인 석유공급이라는 협력 관계가 형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중동 산유국은 유럽 및 미국에 대해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를 공급하고 있다. 결국, 동아시아 프리미엄은 동아시아의 안정적인 원유공급에 지불하는 ‘공급 안보 프리미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동아시아 경제는 중동국가들의 정치적 안보 보장에 대해 지불하는 비용이 크지 않으므로 중동산 원유 구매를 통해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동국가 안보에 대해 적절한 기여를 하지 않는 이상 동아시아 프리미엄 지불은 당연하다는 결론이다.

해결을 위한 출발점

동아시아 프리미엄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및 중국도 영향을 받고 있다. 중동 의존도를 감안할 때,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중동의존도와 최대의 원유 수입국가인 일본이 동아시아 프리미엄으로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고 중국도 동아시아 프리미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중국은 현재 중도의존도가 53%에 불과해 한국이나 일본보다 사정이 덜 심각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중국의 원유수입이 급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중동 이외 지역이 유효한 공급원이 될 수 없는 조건하에서는 중동에 대한 의존도가 급속히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중국의 중동 의존도가 2010년이면 71%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중국의 중동 의존도 심화는 동아시아의 전반적인 중동 의존은 강화되고 이에 따라 동아시아 프리미엄은 더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행히, 동아시아 프리미엄에 대한 관심이 최근들어 크게 고양되고 있다. 지난 12월31일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중동 산유국들이 동아시아 프리미엄 문제 해소를 위해 OPEC에서 논의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국내 언론에도 이런 내용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중동 산유국들의 동아시아 프리미엄 문제 해결을 위한 자세 표명이다. 우리나라 산업자원부 장관과 관계자들이 지난 1월 13일부터 16일까지 중동 산유국을 방문해 동아시아 프리미엄 문제를 강력히 제기했다. 이에 대해 중동 산유국들로부터 동아시아 프리미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이제까지 중동 산유국들은 동아시아 프리미엄이 동아시아 지역의 원유수급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해 이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금번 중동 순방을 통해 우리나라 대표단이 이들 국가들의 자세를 바꿔 놓음으로서 동아시아 프리미엄 문제 해결을 위한 길을 열어 놓았다고 하겠다.

동아시아 프리미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동아시아 프리미엄은 우리 경제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경제 전체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국가들이 동참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 프리미엄과 관련있는 국내 이해 당사자도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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