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섭 박사 Shell 美 휴스턴 연구소
세계 5위의 원유 정제능력과 세계 6위의 석유 소비국인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기간산업으로써의 안전성에 대한 각 기업과 정부차원에서의 그 역할이 막중하다.

수년에 걸쳐서 세계의 전문가들과 함께 국내 가스 및 석유화학 산업의 기술과 안전대책을 같이 토론하면서 느낀 점은 ‘이제 우리나라도 안전사고 방지 기술 및 안전성 평가 기술이 세계적으로 손꼽을 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구나’하는 뿌듯함이다. 하지만 가끔 발생되는 대형 참사의 사고 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좀 더 성숙한 안전의식과 문화를 가져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정유 및 석유화학 산업은 어떠한 경우던 결국은 압력계통 장치파손으로 기인한 누설에 의해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같은 사고는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의 신뢰도 측면에서도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불과 몇 년전 IMF를 겪었던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무조건적인 안전투자비만 강조할 수도 없는 것도 현실이다. 때문에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위험도와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위험관리 기법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필자는 수 년전부터 국내 기간산업에서 필요한 해외 선진 첨단기술을 소개하면서 보급 현장 실무자들과의 오랜 유대관계를 지속함으로서 미력하나마 한국의 산업발전과 안전관리에 기여할 수 있는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여 왔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사용 적합성 평가기법(Fitness-for-Service : FFS)이 관련법에 의해 도입 활용됨에 따라 이같은 진일보한 기술들이 미래 지향적이고 합리적인 선진관리 기법의 정착에 일조해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본글에서는 미국의 Shell Global Solutions사 연구센터에서 오랜기간 근무하며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인 Shell사의 안전문화와 사고방지를 위한 행동양식을 지켜본 소감과, 관련 국제회의장에서 나타나는 안전도와 경제성에 입각한 국제적인 기술개발 추이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Shell사는 미국 API(미국석유협회)의 회원으로 각종 Code 및 지침서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원유 및 가스 생산과 정유산업의 선두주자로서 선진 기술개발을 위한 대규모의 기술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자체 보유 설비에 대한 안전성 및 위험관리 측면에서는 너무 까다롭다 할 정도의 철저한 안전문화를 바탕에 두고 있다.

적당한 절차나 적당한 계획에 의한 안전관리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전문 컨설팅 회사들도 Shell사의 용역을 받는 경우, 그 수행과정은 너무 힘들고 피곤하다고 할지언정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다른 기업에 대한 용역 수주시 큰 홍보효과를 누리게 된다.

또한 Shell사의 또 하나 특징은 설비 파손에 대하여 철저한 원인규명과 함께 그 대책에 대하여 심도 깊은 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타 경쟁업체와 공유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것은 한국과는 크게 다른 점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문화적인 성향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고에 대한 원인 분석 면에서도 미국인의 경우, 귀납적 사고방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문제를 잘게 분해하여 일직선상의 인과관계로 조직한 다음 일반적 행동원칙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서구인들의 경우 수치는 개연성의 척도가 아닌 절대적인 가치기준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사안에 대하여 정량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절차를 거친 후 평가하고 그 기초 위에 실용주의 측면에서의 경제적 효용성을 따져보게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전체론적, 통합적, 종합적 혹은 체계적 사고를 중시하는 동아시아와 같은 문화에서는 부분이 아니라 통합적이고 전체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결국 이러한 성향은 사고의 원인규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사고 발생후의 대처 방법에서 우선시 되는 것은 원인분석이다. 이를 위해 먼저 사고의 근본원인 분석(Root cause analysis)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근본원인 분석이라는 것은 단순한 사고 원인 분석과는 다르다. 이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같이 모여 일관적인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비록 이 작업이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할지라도 이에 대한 분석은 철저해야만 한다. 만일 도중에 어느 주요 원인 한 가지를 발견하고 거기에만 비난을 퍼붓거나 집중하면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없고 대책은 허책(虛策)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근본원인 분석 절차 중 어느 개인이나 기관의 실수를 발견했더라도 거기서 멈추어선 안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실수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모든 분석은 가설이나 상상력 또는 전문가의 의견에만 근거해서는 안되며, 반드시 사실 (fact)에 기초해야 한다. 사고의 근본 원인을 찾는 작업과 잘못의 원인을 찾는 것은 다르므로, 사고의 근본원인 분석 방법을 철저히 연구하고 실천하면 유사 사고 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정유 및 석유화학공장에서의 안전 및 설비의 건전성 평가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해 오고 있다. 1995년 이후 사용 적합성 평가기법(FFS), 잔류수명평가 오메가 방법(OMEGA), 사고원인 분석(Root Cause Analysis), 사고조사 및 데이터베이스화, 음향방출기법(AE), 응력부식균열(SCC) 평가, 공정안전 관리제도(PSM) 및 API 510, 570, 579 등이 주요하게 사용되어 지고 있으며, 고정장치에 대한 열화기구(API 571)가 곧 출판 될 예정이다. 물론 타 분야에서의 안전관련 절차와 기술개발이 수없이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본 저자가 참여하고 있는 API 및 MPC 측면에서 간략히 나타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석유화학 공업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설비와 압력용기의 다양한 형태의 부식이나 재료의 취약화로 인한 위험을 줄일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과 경비로 어느 부분을 어떻게 검사·보수해야 원하는 안전도와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공장내에 어떤 장치가 가장 위험 가능성이 높은가? 어떻게 최소한의 검사경비로 적절한 검사기법을 유용하게 사용하여 부식부위를 발견할 뿐 아니라 파손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가?

이러한 이상적인 질문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최근 위험도 평가에 의한 진단기법(Risk Based Inspection:RBI)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신기술중의 하나인 RBI 기술을 이용해 ‘언제, 어느 부위에, 무엇을 검사해야 이 장치들의 위험도를 최소화 할 수 있는가?’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기술은 사실 RBI라는 말보다는 RBM(Risk Based Management - 위험도에 의한 경영관리)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Risk Analysis를 이용하여 위험도를 줄이기 위한 경영적 의사결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RBI 기술은 십 수년전 미국 기계학회(ASME)에서 RBI(Risk Based Inspection) 기법을 처음 시도하였으며, 이 개념을 석유화학공업에서 받아들여 현실에 맞게 개선 발전시킴으로써 미국석유협회의 API-RBI 활동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2001년부터 RIMAP(Risk Based Inspection and Maintenance Procedures)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에서도 한국가스안전공사가 Observer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공사가 주관이 되어 국내 산·학·연 공동 협의체를 구성하여 독창적인 ‘한국형 RBI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는 한국가스안전공사에서 RBI의 1차적인 S/W(정량적)가 개발되어 국내 플랜트에 현장적용을 통한 문제점 분석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함께 Shell Global Solutions사의 S-RBI 기술중 핵심기술인 ‘Corrosion Loop’에 대한 국제 공동연구를 본 저자가 소속되어 있는 Shell사와 함께 한국의 한국가스안전공사를 주관기관으로 하여 참여업체는 LG Caltex정유, LG화학, 여천NCC 및 현대엔지니어링의 공동투자비에 의한 JRP(Joint Research Projects)의 형식으로 본 저자와 함께 올해 11월말까지 수행할 예정이다.

이렇듯 한국에서도 공기업과 산업체와의 유기적인 협력관계 및 국제 공동연구를 통한 글로벌 경영의식의 환경조성으로 미루어 참여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바라마지 않는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각 기업들의 안전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공동체의식과 단일목표를 향한 산·학·연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히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멀리 이국 땅에 있는 저자에게는 매우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의 기술 수준은 많이 향상되었는데 우리의 안전도에 대한 의식은 얼마나 바뀌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안전에 대한 의식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사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만 늘었다면 이는 발전에 장애만 될 뿐이다. 이는 우리가 안전에 대한 감지도(感知度)는 높아졌을지 모르나 막상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도 안전에 대한 의식개혁이 있어야 할 때이다. 안전은 어떤 캠페인이나 정부 주도의 규정에서보다 ‘나’에서부터 시작되야 한다.

안전의 요소는 환경적 요소와 나의 적응 자세로 구분되며 이 두 가지 측면을 잘 조화시켜야 효과적인 안전대책이 수립될 수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나의 자발적인 동기(commitment)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상 잘못에 대한 벌칙이 강조될 때 우리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물론 잘못 했을 때에 그에 상응하는 규제 조치는 꼭 필요하다.) 교육에도 하지 말라는 것만 강조되고 어떻게 하라는 방향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으면 우리의 태도는 자연적으로 수동적이 되며, 벌칙에 대한 두려움이나 피해의식으로 무사안일주의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동기 부여를 위해서는 벌칙보다 잘 했을 때의 보상이 더 강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로 실적위주가 아니라 과정을 중요시해야 한다. 대형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보면 ‘무 재해(無 災害) 일수 xxx’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는데, 이는 작업자에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데는 아주 좋은 역할을 하나, 사고가 일어날 뻔했던 일(near miss)이나 조그만 실수는 은근히 감추게 되는 계기를 가져다준다.

사실 대형 사고들의 대부분이 이런 작은 실수에서 유발되는데 이것이 실적에 장애가 될까봐 모르는 척 지나치게 되면 결국 이것들이 하나 둘 모여 대형 사고를 유발하게 된다. 그러므로 작은 실수나 문제들이 있으면 우선 그것을 공개적으로 내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하며 또한 이를 긍정적으로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는 분위기도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로 안전이 우선 순위(priority)가 아니라 가치관(value)이 되어야 한다.

행동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그 결과가 즐겁지 못한 것은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하고 좋은 것들은 다시 되풀이하려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습성이 습관화되어 우리의 가치관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 좋은 예로 자동차 안전띠 착용 습관이다. 불과 수 년 전만 하더라도 안전띠는 잘 매지 않거나 단속을 피하려고 억지로 매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전띠는 차를 타면 반드시 매는 것으로 습관이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제 안전띠는 단속을 회피하는 도구가 아니라 개인 안전의 가치관으로 정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상호 보살핌이다. 이는 서로의 안전의식이나 행동을 서로 점검하며 보완해 주는 것이다. 내가 내 주위의 이웃이나 동료의 안전하지 못한 행위나 방법을 목격했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비난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의 안전을 위해서 고쳐야 될 점들을 지적해 주는 것이며, 이때에 그 당사자가 “지적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시정할 때 서로의 안전의식이 높아진다.

안전은 어느 개인이나 기술력 향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이 안전에 대한 가치와 상호보호 의식이 우리 생활에 정착될 때까지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의식개혁의 의지가 지속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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