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중한 (주)국제PL센터 대표이사
2002년 7월1일 국내에 ‘제조물책임(PL)법’이라는 다소 생소한 민법의 특별법이 시행되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법의 시행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으며 설사 일부 아는 사람들도 정확한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PL법 시행 후 2년이 지난 요즘 세간의 화제가 되는 큰 사건들이 발생함에 따라 업계 뿐만 아니라 많은 소비자들이 PL법의 존재 및 활용법을 알게 되었다.

제품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과거의 경우 교환 및 환불로서 피해구제를 받았던 것과 달리, 소송이나 언론공개를 통한 거액의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나섰으며, 피해사실과 관련 없는 수많은 소비자 또는 네티즌들이 해당 기업의 불매운동이나 사이버 테러를 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의 L전자회사의 압력밥솥폭발사건, 불량만두사건 등은 제품의 결함으로 인해 소비자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이 어떠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던 것이다.

하지만 PL법 시행 초기에는 소비자의 피해에 대한 제조자의 보상이라는 입법취지와는 다르게 실질적인 피해구제의 사례는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와 거의 유사한 구조의 일본PL법이 1995년시행되어 최근까지 9년 동안 지내오면서 국내와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소비자의 피해구제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계속 제기돼 왔다.

이에 시행상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개정움직임이 일어나 세밀한 검토가 진행 중이다. 주요한 개정내용을 보면 소비자의 입증책임 완화, 고의적 제품결함에 대한 강력한 제재(징벌적 배상금), 피해자에 대한 광범위한 구제(집단소송제) 등 PL법을 강화하자는 방향이다.

이에 국내 또한 최근의 PL사례를 통해 국내PL법의 취약한 부분을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PL법에 대한 인식정도가 매우 높아져 있는 많은 소비자들로부터 적극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민단체들 간의 연대를 통한 조직적인 움직임, 강성화 된 소비자의 성향, 제품정보에 대한 입수경로의 전문화 및 다양화 등이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소송제기 또는 과대한 피해보상 요구 등은 PL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 또한 PL법 개정과 동시에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다. 왜냐하면 악의적인 피해보상요구로 인한 기업의 피해는 결국 소비자 자신의 피해로 귀책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PL법이 시행되고 나서 많은 기업들이 제품의 안전성 확보 및 향상을 위해 제품설계단계에서의 검증시스템 강화, 공장설비개선, 고객만족을 위한 서비스 확대 등 투자비용의 증가가 실제로 일어났으며 이것이 제품가격상승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에 덧붙여 고의적인 오사용으로 인한 피해발생을 유도하여 과대한 보상을 요구할 경우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게 된다. 기업에서 지불하는 불필요한 피해보상금과 악의적 클레임에 대한 대응에 따른 손실 등은 결국 제품원가에 반영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품의 매매단계에서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는 ‘신뢰’라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대기업일 경우에는 이 신뢰의 중요성은 더욱 더 증가한다고 할 수 있는다. 그러한 신뢰의 상실 및 불신은 일시적인 매출감소 및 제품결함에 대한 소비자의 피해보상의 차원을 넘어 기업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다. 몇 백원, 몇 천원짜리 제품의 결함으로 인해 기업의 손실이 수 천억원을 육박하는 현상에 대해 제품을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기업의 발전을 위한 기본요건이기 이전에 기업 생존의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제품결함에 대한 은폐 또는 축소로 인해 대기업이 한 건의 PL소송으로 쓰러지는 사례가 PL법을 예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외국의 경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기까지는 매우 힘들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러한 ‘신뢰’를 잃는 것은 단 한 건의 사고로서도 충분하다는 단순한 진리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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