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화 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 간사
핵폐기장 예비신청 마감일인 지난 15일 단 한곳의 지자체도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국은 아직도 핵폐기장 문제로 떠들썩하다. 정부가 약속한 원전센터 건립 일정 중단과 방폐장과 직접관련성이 약한 국가에너지 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 등 정확한 답변을 제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논란이 됐던 고창, 울진, 영광, 강화, 완도, 장흥, 군산 등 사전 주민 유치청원이 있었던 7개 지역과 그 외 삼척, 진도 등도 거론이 됐으나 마감일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젠 군수가 단독 유치 신청을 한 부안만이 남아있다. 그러나 부안의 경우도 현행절차에 따른 주민투표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지금것 이런 지역들은 폭력배 등을 동원한 민-민 갈등, 편향적 주민 시찰 조장과 전화 설문, 현금 보상에 대한 부푼 소문, 특히 일부 군수는 보상 문제를 놓고 정부와 협상까지 벌이는 등 아슬아슬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핵폐기장의 갈등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었다. 안면도-굴업도-부안 등을 거쳐 지난 20여 년간 되풀이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과제이다.

위험을 적정하게 평가하고, 관리해 방사능누출이나 오염을 막을 수 있는 인류의 기술적 대안이 없는 핵폐기장이란 부담스러운 시설이다. 많은 사회 문제들이 그렇듯 핵폐기장 역시 사회적 약자들을 겨냥한다. 미국의 경우 인디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겨냥했고 우리나라 역시 소위 지역 경제 침체로 곤란을 겪는 곳들이 후보지가 된다. 정부는 한시적인 달콤한 유혹으로 온 국민이 함께 책임져야할 문제를 대충 떠넘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부작용의 가장 큰 예가 부안이다. 1년을 넘긴 부안 문제는 작년 군수의 단독 유치 신청으로 인한 핵산업계의 비민주적이고도 폭력적, 일방적 핵폐기장 추진으로 구속자 44명, 불구속 90명에 중상자만도 400여명에 이르는 무고한 주민 피해자가 발생했다. 그 외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독일과 같은 나라의 경우 부지 선정을 5단계로 나누어 단계마다 주민들의 의사를 묻는 과정을 거친다. 핵폐기장을 건설하는 데까지 30여년의 기간을 잡고 있다. 이는 주민들의 참여와 지질 조사 과정에 긴 시간이 투입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고유가 시대에 닥쳐보니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유럽은 이미 예전부터 태양, 바람, 바이오매스 등을 이용한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독일의 경우 2050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율을 50%까지 높인다는 계획을 실현해 가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의 90%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불안정한 에너지원인 핵발전 정책만을 고수하고 있다.

핵에너지는 이미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 여부와 달리 이에 따른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위한 결과가 조속히 도출돼야 한다. 이미 1인당 에너지수요가 우리보다 국민 소득이 높은 일본, 유럽을 추월했고, 정부는 전력 공급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적정한 수요 예측 없이 너무 과도한 전기를 생산해 내고 있다.

해외에서는 사양 산업으로 뒤쳐지고 있는 핵 산업이 이제는 아시아를 겨냥하고 있다. 새로 생길 핵발전소의 1/2이상이 한·중·일 3국에 집중되어 있다. 막대한 외채를 빌어 건설해야 하는 비경제적인 핵발전소는 에너지 산업의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고 끊임없는 핵폐기물을 양산한다. 핵정책 보다는 이러한 비용을 재생가능에너지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시도와 개혁은 이뤄져야 한다. 핵 발전 위주의 전력정책의 변화와 함께 정부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국민은 에너지에 대한 과소비를 줄이는 절약을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한다. 핵에너지가 미래의 에너지로 둔갑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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