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
에너지 체제 전환이라는 큰 주제를 놓고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자리를 같이 했다. 6월 22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노동과 환경의 연대를 통한 에너지 체제 전환’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 수립을 위한 에너지 노동사회 네트워크’ 창립식을 겸하는 자리였다. 전례가 없는 생소한 광경이었다.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은 그 동안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사회 진보와 보편적 공익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은 특정 사안에 대해 서로 입장이 갈리기도 했다. 환경연합이 김포매립지 용도 변경을 반대하자 동아건설 노조가 반발했고, 민주노총이 환경단체를 지지하자 새만금 사업 강행을 주장해 온 농업기반공사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원자력 노동자들은 원자력 안전과 작업장 피폭에 대한 외부의 목소리에 침묵으로 일관해왔고 정부가 1999년부터 전력산업 민영화를 일방적으로 추진할 때 환경단체는 한동안 전력노동자들의 민영화 반대를 수수방관했다.

그런데 정부가 강행한 전력산업 민영화가 결국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연대를 모색하는 계기가 제공했다. 초기에 환경운동은 침묵 내지 묵인했지만 전력노동자들과 노동운동은 전력산업 민영화에 강력히 반발했다.

2002년 2월25일부터 4월3일까지 사상 최초의 발전 파업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전노동자들은 고용과 임금 문제를 넘어 전력산업의 공공성에 새롭게 눈을 떴고 환경단체들은 전력산업 민영화가 새로운 가능성 못지 않게 공급 불안, 요금 인상, 사기업 독점, 환경과 안전 문제 후퇴 등 감추어진 문제점을 인식하게 됐다.

2003년부터 노동단체와 환경단체들이 에너지산업의 공공성을 주제로 정기적인 토론을 하고 배전 분할 민영화의 문제점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9월부터 에너지 공기업 노조 집행부들과 환경운동가들이 모여 본격적으로 ‘에너지 체제 전환’을 위한 전략적이고 중·장기적인 연대 활동이 준비됐다. 에너지 다소비형 사회, 화석연료와 원자력 편중 구조 같은 공통의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 에너지 정책의 우선순위를 수요관리에 두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화석연료와 원자력의 비중을 낮추고 열병합발전과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는 에너지 체제 전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환경운동연합과 발전노조, 가스노조 등이 주축을 이루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 수립을 위한 에너지 노동·사회 네트워크’가 출범하게 됐다. 환경단체와 대척점에 있던 한수원노조와 과기노조원자력연구소지부도 참여한다.

하지만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이 수요관리 방안,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 원전 확대, 가스열병합발전 확대, 재생가능에너지 보급 등 구체적인 에너지 정책에선 입장이 다양하다. 특히 에너지 체제 전환의 시간 일정과 과정에 대해선 참여단체마다 각양각색이다.

거창하게 노동과 환경의 연대를 내걸었지만 에너지 노동·사회 네트워크는 겨우 출발점에서 한걸음 내디뎠을 뿐이다. 그래도 서로 무관심하거나 때론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양 진영이 상대에 대한 인정과 배려를 전제로 신뢰 구축에 나섰다는 점은 그 자체가 큰 진전이다. 이미 산자부가 졸속으로 추진해 온 에너지기본법안 제정에 대한 공동 대응에서 적록 연대의 가능성이 보였다. 공공성을 약화하는 시장 경쟁 요소를 확대하고 산자부 중심의 에너지 정책 구조를 고착화하는 에너지기본법안에 대해 환경단체와 노동단체들이 함께 제동을 건 것이다.

30년, 50년이 지나면 역사는 6월22일 행사를 어떻게 평가할까? 바다에 모래알처럼 숱한 토론회의 하나고 명멸했던 허다한 연대기구가 될 지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 확립의 출발점이자 추진체가 될 지는 함께 자리한 이들의 실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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