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
언론에선 환경단체가 방폐장 자체를 반대하는 것처럼 보도한다. 몸통은 빼고 꼬리만 반복해서 보여주니 일부 시민들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방폐장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환경단체를 본 적이 없다.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하는 것은 원자력발전을 이용한 우리 세대들의 책무이다.

우리나라에도 발전 뿐 아니라 산업, 의료분야에서도 방사성 폐기물이 배출되기 때문에 방폐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은 짧게는 수백년, 길게는 백만년까지 생태계와 격리해야 할 매우 위험한 물질이다. 우리 뿐 아니라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했거나 가동 중인 모든 나라들에선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심지어 독일에선 방사성 폐기물의 위험성과 처분의 어려움 때문에 원전을 점진적으로 폐쇄 중이다. 우리보다 원전을 먼저 가동했던 캐나다, 네덜란드, 벨기에 같은 나라들이 아직까지 방폐장을 짓지 못한 것은 방사성 폐기물 처분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사성폐기물을 관리하는 어느 나라나 안전한 처분을 가장 우선시한다. 지질, 수송, 관리에 있어 엄격한 기준을 수립하고 독립된 기구에서 법에 따라서 투명하게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한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 처분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래서 매우 불안하고 우려된다. 아직 방사성폐기물 관리법도, 독립된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구도 없다.

대신 지난 3월부터 자문기구에 불과한 부지선정위원회 주관으로 전국 8곳에서 간단한 현장조사를 한 후 이를 토대로 곧 사전부지적합성 결과를 발표한다.

그리고 적합지역 중에서 주민 투표를 실시해 찬성률이 가장 높은 지자체에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를 최종 정한다. 심각한 갈등과 마찰을 겪으면서 정해진 최종 후보지를 정밀조사 후에 번복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실상 사전부지적합성조사가 부지조사를 대체하는 셈이다.

지금까지 누가 참여해서 어떤 조사를 하고 어떤 기준에서 평가했는지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 쓰레기 매립장 후보지를 조사해도 이렇게 간단하게 뚝딱뚝딱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안전한 처분은 참여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다. 방사성폐기물 발생과 관리, 처분은 지역 주민의 생존과 미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만큼 방사성폐기물 관리와 처분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의사가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공정하게 주민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주민 투표에 앞서 이미 지역 발전을 내세운 지자체들이 공무원을 내세워 유치 활동을 공공연하게 전개하고 수억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공정한 투표 관리를 해야 할 지자체가 방폐장 유치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은 결국 이번 주민 투표가 심판없는 난장판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더군다나 정부는 입만 열면 사회 통합을 내세우면서 지역 지원을 미끼로 여러 지자체들을 갈등과 분열, 혼란과 고통의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군산, 경주, 포항, 영덕 등 지자체 사이의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지역공동체 내부에서도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언론이 잘라 먹은 환경단체의 주장은 임의적인 부지선정위원회를 내세운 졸속적인 부지조사와 후보지 선정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참여 민주주의를 좀먹는 금권, 관권 주민 투표를 중단하고 공정하게 주민 의견을 수렴하라는 것이다. 대신 안전하고 민주적인 방사성 폐기물 관리와 처분을 위해 공론화를 거쳐 방사성 폐기물 관리법을 제정하고 독립적인 방사성 폐기물 관리위원회를 설치하라는 것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에너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