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성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김민성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투데이에너지] 열에너지는 에너지 이용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탄소중립을 위한 어려운 숙제 중의 하나이다. 히트펌프는 전기화를 통해 탄소중립을 효율적으로 구현해 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기기로서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산업용 히트펌프가 가져야 하는 첫 번째 기능으로서 고온생산 능력이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히트펌프 생산온도는 대부분 최고 70도 정도로서 온수 생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산업공정에서 열을 사용하는 곳은 대부분 100도 이상의 증기로 공급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높은 온도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특히 산업용 증기는 공정에 필요한 수준의 온도로 열에너지를 충분히 제공하고 동시에 폐증기를 원활하게 배출할 수 있도록 적정한 압력으로 공급돼야 한다. 

두 번째 조건으로는 고효율성이다. 생산되는 열에너지와 투입에너지의 비율로 정의되는 성능계수(COP)는 히트펌프에서 효율성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그러나 증기를 생산하는 산업용 히트펌프는 이보다 훨씬 높은 100도 이상의 온도차가 보통이므로 COP는 대부분 3 이하를 가진다. 전열기로 직접 가열할 경우의 COP가 최대 1임을 고려하면 보다 높은 COP를 구현할 수 있는 히트펌프 설계 및 제작 기술은 산업용 히트펌프의 보급에 있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조건으로는 대용량성이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히트펌프는 수 kW부터 수백 kW의 용량이며 이 정도 수준이면 웬만한 가정이나 건물에 충분한 냉난방과 급탕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용 히트펌프는 이보다 훨씬 큰 용량을 요구하게 된다. 산업용 증기 보일러의 용량과 비교하여 사이즈를 추정해보면 증기 보일러의 증기 생산 용량은 시간당 0.5톤에서 20톤가량이고, 이를 kW로 환산하면 1MW에서 50MW의 범위가 된다. 즉 현재 시장에서의 히트펌프 용량의 수십~수백 배 큰 히트펌프가 산업용으로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용량이 커지게 되면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유체기기, 밸브 등 요소기기 제작이 까다로워진다. 그뿐만 아니라 용량이 큰 만큼 대량 생산이 어려워서 플랜트 엔지니어링 프로세스에 준하여 제작되는데 이 경우 고압가스안전관리법에 의거하여 제작시마다 들어가는 모든 용기의 안전승인이 필요조건이 된다. 즉 제작시간과 비용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는 말이다. 더욱이 이렇게 개별 프로젝트로 공급되는 히트펌프로는 가격뿐만 아니라 제품의 신뢰성과 서비스 등 산업현장 수요자의 까다로운 요구를 맞추기 어렵다.

이외에도 산업용 히트펌프에는 극복할 점들이 많이 있다. 고온 냉매토출로 인한 압축기 윤활문제로 무급유 압축기를 사용한다거나 1차로 생성된 저압증기를 재압축하는 기계적 증기재압축기(MVR, mechanical vapor recompressor)를 결합하는 압축방식을 이용해야 한다. 또한 작동유체도 선정이 어려워서 지구온난화 지수가 낮은 냉매를 사용하고, 가연성이 낮으며 고온에서 안정성을 갖는 냉매를 고려해야 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기술적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

앞에서 열거한 조건들은 산업용 히트펌프가 가져야 할 필수적인 능력이자 동시에 현재까지 상용화가 더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 즉 고온생산, 대용량, 수요발굴 등의 복합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해 시장 진입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산업용 히트펌프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지한 정부에서도 국책과제로 지원을 하였고 부분적인 성과는 없지 않았다. 그러나 산발적인 지원으로는 이러한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탄소중립 흐름과 함께 민간에서도 산업용 히트펌프를 사용하려는 적극적인 여론과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제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산업용 히트펌프가 필요한 수요부터 차근차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일단 온도별, 용량별 수요만 잘 발굴된다면 다양한 용량과 동시에 양산을 고려한 규격화된 제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제품의 신뢰성과 가격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술한 대로 산업공정은 요구온도가 다양하고 때로는 매우 높은 온도가 필요할 때도 있다. 비록 히트펌프의 생산온도가 높아질수록 COP가 낮아지는 문제가 존재하지만, 적어도 4~500도의 열수요까지는 히트펌프로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은 증기 보일러에 대응하는 대용량 증기 히트펌프를 시작으로 시장에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시장 진입을 위해 보다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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