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탁 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투데이에너지] 모두가 알고 있듯이 향후 에너지분야의 가장 큰 화두이자 과제는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다. 각 나라의 에너지 여건에 따라 양자가 단기적으로는 상충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두 과제는 서로 보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탄소중립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수요절약은 에너지안보에도 매우 중요하고 분포지역의 편중이 심한 화석연료 사용을 가능한 줄이는 것 역시 에너지안보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중장기적 과정에서 현재 사용 중인 화석연료의 상당량은 무탄소의 전력으로 전환되는 에너지의 전력화도 가속화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증가하는 전력수요의 절약과 무탄소 전력공급의 확대 등 전력산업의 일대 혁신이 국민경제의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현재의 전력산업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급 패러다임 자체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즉 아날로그 기술 하에 탄소배출의 대형설비에 의한 중앙집중형 체제에서 디지털 기술 하에 무탄소 설비의 분산형 수급체제, 즉 ‘디지털화(Digitalization)’, ‘탈탄소화(Decarbonization)’, ‘분산화(Decentralization)’라는 3D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일례로 ‘탈탄소화’의 측면에서 획기적인 수요절약이 필요하고 공급 역시 간헐성 재생에너지의 확대가 필요하다. 이러한 수급 양 측면의 상황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안정적으로 계통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 등의 ‘디지털 혁신기술’은 필수적이다.

여기에 에너지의 전력화로 전력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경우 송전망 증설에 심각한 갈등과 불확실성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가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재생가능에너지로 할 것인가 원전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정쟁을 벌였지만, 오히려 더 중요한 문제는 수요와 공급설비의 ‘분산화’ 문제다.

우리 여건상 재생가능에너지든 원전이든 모두 수도권에서 먼 지역에 집중돼 있어 대규모 송전망 추가건설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송전망 갈등과 불확실성을 미연에 방지하고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서는 수요 및 설비공급의 ‘분산화’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3D’의 패러다임 전환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책변화와 함께 모든 이해관계자 엄청난 혁신 노력이 필요하며, 그 전환의 첫 단추는 바로 전력시장의 개혁이다. 우선,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전력 등 에너지요금에 탄소비용을 반영하는 강건한 ‘탄소신호’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전력요금에 대한 정치 개입이나 물가 통제만 일상화되는 상황 하에서는 획기적인 수요절약이나 탄소저감의 디지털 신기술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둘째, 분산화를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의 양 측면에서 전력요금의 ‘지역신호’를 강화해야 한다.

수도권에 집중되는 테이터센터 등 대규모 신규전력수요를 가능한 지역으로 분산시키고, 수도권 내에 설치가능한 분산형 설비에 경제적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화를 위해서는 신산업과 신기술이 전력시장에 활발히 진입할 수 있도록 시장개방과 함께 기술개발 및 투자에 대한 안정적인 비용회수 및 다양한 세제혜택 등의 ‘유인 신호’를 마련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이후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듯이 새로운 3D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전력시장의 올바른 신호정립이 우선돼야 한다. 중요한 전력시장의 개혁은 소홀히 한 채 소모적인 정쟁만 반복하면 현재의 체제, 즉 환경에 유해한 탄소배출(Dirty), 아날로그 방식에 의한 기술적 애로(Difficult), 불확실한 송전망으로 인한 에너지수급 및 안보상 위험성(Dangerous)이 증가하는 ‘낡은 3D’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전력산업은 ‘새로운 3D’냐 ‘낡은 3D’냐의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리 많지 않다. 오는 새해에는 패러다임 전환의 첫 단추가 잘 채워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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