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용 한국가스학회 회장

[투데이에너지] 최근에 보도되는 난방비 급등 관련 기사는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감정적 주장이 많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접근 없이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왜곡된 기사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난방비 폭발 등 자극적 용어만 나열할 것이 아니라 사실을 냉철히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균형감이 요구된다. 

난방비 급등의 원인은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러·우사태로 인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의 급등이다.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폐쇄로 국제 가스시장의 수급이 요동치면서 국제 LNG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가스요금은 급등을 피할 수 없었다.

둘째 국제 가격 변동분을 제때에 반영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없었다. 이미 2021년도부터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음에도 우리나라는 요금인상을 미루다가 2022년 4월에 와서 요금을 인상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에는 요금을 대폭 인상(2.7원/MJ)한 결과 사용량이 급증하는 12월의 가스사용요금이 급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셋째는 전년도에 비해 3.3℃나 낮았던 12월의 기록적인 한파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나열한 세 가지 사실적 원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가 이하의 저렴한 에너지요금에 익숙한 국민들의 배신감과 저항감이라고 생각한다. 

하절기 한달 가스요금은 짜장면 한 그릇값에 못 미친다. 국제 원료비의 급등, 정당한 투자 등 요금인상 요인이 명백함에도 물가안정과 동결을 가장 큰 미덕으로 여기는 규제로 원가주의가 무너진 지 오래다.

난방비 급등의 사태로 우리가 감내해야 할 교훈은 참으로 많다.

먼저 에너지 가격에 대한 시장 기능의 왜곡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장은 가격 시그널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시장 기능을 무시하고 서민 부담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것에 불과한 포퓰리즘적 요금제도로는 난방비 급등을 막을 수 없다.

민수용에 대한 지속적인 요금 동결로 사용량이 많고 연중 균등한 수요를 가지는 산업용 요금이 가정용 요금보다 비싼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러·우전쟁이 종결되고 국제 천연가스 시장이 안정을 찾아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국내 천연가스 가격은 미수금 상환으로 가격 인하가 어려울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는 어떻게 할 것인가. 빈곤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 

9조원에 달하는 미수금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 현재 요금을 3배 인상해야 미수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보도도 있다.

여기에 요금경감 확대 등으로 손실분이 더 확대되고 있다. 재정 투입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미수금이 자산으로 분류돼 실질적 자본잠식 상태에 있지만 대규모 이익배당을 해야 하는 가스공사의 재무구조는 국민을 당혹케 한다. 

국제 가격변동을 무시한 착시현상의 포퓰리즘이 빚어낸 고통은 국민에게 더 많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고통이 올 수 있음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원가에도 못 미치는 비정상적인 에너지 가격을 즐겼다.

이제는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한다.

러?우사태로 국제 에너지시장이 요동치고 있어도 거리의 상가는 문을 열어 놓고 에어컨을 가동했다. 혹한에도 아파트에서 민소매로 생활한 우리의 생활패턴에 혹독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난방비가 급등했다고 해서 전 국민에게 난방비를 지원하자는 주장은 바람직한 문제해결 방식이 아니다. 집값이 급등했다고 전 국민에게 집값 지원을 해주고, 한우 값이 폭등했다고 전 국민에게 소고기 사 먹을 돈을 지원할 것인가.

국제 에너지시장의 매커니즘을 정확히 읽고 수급과 요금결정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만 에너지 대란을 막을 수 있다. 코로나 시기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같은 지원은 국가 재정만 악화시킨다.

재정은 필요한 계층에 두텁게 지원해야 한다. 유럽 각국은 이미 에너지요금 지원을 축소하거나 폐지해 재정을 안정화시키고 있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너지요금 정책은 원칙과 일관성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돼야 한다. 독립된 에너지 규제기관이 정치의 굴레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결정을 해야만 국민이 덜 피곤할 것이다.

원료비 연동제가 가동되지 않으면 모든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빚으로 돌아간다는 인식도 요구된다. 아울러 에너지절약을 생활화하는 에너지 소비패턴의 혁신이 간절하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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