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탄소중립연구본부장.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탄소중립연구본부장.

[투데이에너지]최근 에너지 요금인상과 관련해 온 나라가 덜썩이고 있다. 이해당사자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에너지 요금인상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속시원히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에너지 공급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적자와 부채를 일정수준의 요금인상으로 해결하기를 바라고 있고 수요자는 요금인상에 따른 물가상승과 실질소득 감소의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담당하는 정부부처와 물가를 책임지는 정부부처간의 의견이 다르고 여당에서는 공기업의 자구책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요금인상에 대한 결정이 늦어질수록 더 많은 비용부담과 공급불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요금조정에 대한 결정을 유보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현재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와 부채수준을 고려하면 안정적 에너지 공급과 경제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왜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을까? 모두가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그 동안 값싼 에너지 요금으로도 에너지 공급에 전혀 지장이 없으니 모두 안일하게 대처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에너지의 약 93%를 해외에서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해외 수급여건의 악화로 인한 에너지가격 폭등의 직격탄을 맞아서 휘청거리고 있다. 

과거와 같이 필요하면 요금조정 유보와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하기도 힘들고 그렇게 하면 더 큰 비용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공기업의 적자와 부채뿐만 아니라 회사채 발행에 따른 막대한 이자부담액의 증가로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랜기간 동안 대규모 설비를 활용해 중앙집중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 왔고 공급지와 수요지가 달라도 전국적으로 낮은 동일한 요금이 적용됐다. 주로 에너지 공기업 중심으로 독점적 에너지공급 시스템을 운영하다 보니 안정적이고 낮은 요금에 익숙해져 있다. 

지금처럼 친환경 에너지의 급격한 증가에 대한 요구가 덜하고 대형설비 구축에 대한 주민수용성이 비교적 수월했던 과거에는 대체로 에너지 공급에 큰 지장이 없었다. 비록 에너지 공기업이 다소 적자를 보더라도 모두가 대체로 만족하는 수준에서 큰 위기가 없었단 얘기이다.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친환경 설비에 대한 요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주민들의 대규모 에너지설비 구축에 대한 반대도 심화돼 기존의 에너지 운영방식을 고수하기는 어려워졌다. 더구나 해외 화석연료 수급에 따른 가격변동성이 훨씬 커진 만큼 국내의 화석연료 조달 및 그 비용의 안정성을 기대하기도 힘들어졌다. 

이 뿐만 아니라 태양광 및 풍력 발전설비와 같은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확대됨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부하를 추종하는 공급중심에서 공급 변동성까지 고려해 수급균형을 달성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무엇보다 확대되는 재생에너지를 수용하기 위해 원자력 및 화석 연료 발전설비의 운영패턴이 과거와는 달리 빈번한 출력저하와 기동‧정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 만큼 에너지 운영시스템에서 수요와 공급 모두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라 빠른 시간내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자원의 요구가 증대되고 있다. 

에너지 운영시스템 또한 실시간의 변동성과 공급부족 시 대체자원의 즉각적인 대응을 시장가치로 보상할 수 있는 체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현재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대응력이 높은 시스템이 운영돼야 한다. 

또 한편으로 에너지 공급부문에서 민간부분의 비중이 증가하고 다양한 사업자의 확대뿐만 아니라 기술과 서비스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모델이 창출되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에너지 여건을 둘러싼 상황이 이런대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기업 중심의 독점적 시장구조 하에서 과거와 동일한 패턴으로 규제 위주의 운영체제를 유지하고 요금조정 과정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닥칠 에너지 공급 및 가격변동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덜 하거나 현재의 에너지 여건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항상 그렇듯이 새로운 기술개발과 이에 상응하는 제도의 변화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므로 기득권의 반발이 심하다. 물론 새로운 기술의 적용과 운영체제 및 제도의 변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고 정착 되기까지 여러가지 도전과 시련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환경은 급속히 변화되고 있는데 에너지 운영시스템과 시장구조의 변화없이 기존의 체제를 고수하면서 대응하는 것은 더 큰 시련에 빠져 도태될 것은 명확해 보인다. 

그럼 어떻게 에너지 운영시스템을 변화하고 발전시켜야 하는가? 현재 에너지 운영시스템과 요금결정 과정에서 나타난 근본적 문제의 인식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 시장의 가격신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력산업의 경우 외형적으로는 도매시장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상 가격규제에 의한 자의적 수익배분 방식에 의존하고 있으며 시장의 수급상황에 따른 가격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독점적 판매사업자인 한전이 도매시장에서 구입한 전력비용 또한 전기요금에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고 있다. 기본적인 전력시장 전체의 운영메커니즘이 가격규제 하에서 도매와 소매시장의 상호 연결성도 상실된 채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작동되고 있다. 이처럼 자의적 가격규제 시장 하에서 공급자와 수요자들의 행동은 시장의 가격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와는 다른 패턴을 보인다. 

적정 공급과 수요와는 다른 수준으로 수급을 결정하기 때문에 비효율과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더 낮은 규제가격으로 인해 수요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공급설비 및 해외 연료도입 증가 등 비용증가의 악순환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또한 가격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개발 및 사업모델의 구축을 지연시키거나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시장의 가격기능을 회복해 적정한 수급균형을 달성하도록 하는 에너지 공급시스템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에너지 가격기능의 정상화는 지역적 수급의 불일치에 따른 송전망의 건설과도 관련돼 있다. 지역적 공급비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동일한 도매 및 소매요금 수준은 지역적 수급불균형의 해소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전력수요를 충청도와 경상도 등 비수도권에 집중된 대규모 발전설비의 전력공급으로 충당해왔던 운영체계도 대규모 송전망 건설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로 지연되고 있다. 결국 일정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그 지역을 중심으로 소비하는 방식으로 운영시스템이 변화될 필요가 있다. 

또한 전력 공급설비의 입지와 전력 수요자의 입지를 가격신호에 의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도매시장가격에서 지역적 송전제약 등이 반영되는 지역적 한계가격의 시행이나 송배전망의 이용료를 차등화해 요금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지역적 공급비용과 이를 반영하는 요금이 지역적 수급균형 달성을 위한 적정한 신호로 작동해야 한다.

다음으로 변동성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전력계통의 불안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최근 제주도의 풍력 및 태양광의 출력제한 문제는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라도의 태양광 출력제한 문제까지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2021년 기준으로 총발전량의 약 4.6%에 불과하지만 지역적 편중으로 인한 공급과잉으로 출력제한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수요가 낮을 때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의 출력제한을 줄이기 위해 석탄 및 LNG 발전설비의 최소출력 운전과 원전의 사전감발 운전 등이 심화돼기동‧정지가 빈번하게 나타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사전적 조치가 없을 경우 대형 발전기의 중단 및 송배전선로의 사고 등으로 인한 주파수와 전압의 급격한 변동으로 정전의 위험이 높아지는 데 따르는 불가피한 조치이다. 반대로 늦은 오후 또는 흐린날 등 태양광의 출력이 급격히 감소될 경우 등 공급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체할 공급자원의 확보가 계통 안정성을 좌우하게 된다. 

무엇보다 현재의 경직적 운영시스템으로선 증가하는 재생에너지 수용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실시간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대응하는 실시간 시장과 보조서비스 시장의 구축을 고려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가치를 반영해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수용과 대체자원의 확보를 유인하는 거래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유연성 자원의 확보는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이 희소가치를 적정한 수준으로 보상할 수 있어야 활성화될 수 있다. 따라서 에너지 시스템의 유연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가격기능에 의한 시장거래의 자율성이 필요하다. 에너지 소매시장의 개방도 신기술의 개발 및 서비스의 제공뿐만 아니라 유연성 자원의 확보측면에서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규모 에너지 설비에 의한 중앙집중적 에너지 공급은 주민수용성 문제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으므로 지역적 친환경 분산에너지의 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송배전망의 부담완화와 건설회피를 위해서라도 에너지의 자가소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태양광 발전설비의 확대를 촉진하기 위해서 설치보조금 외에 잉여전력 처리에 대한 혜택을 제공해 왔지만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를 고려해 잉여전력 처리에 대한 보상혜택을 점차 줄여서 자가소비를 유도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물론 자가소비를 하고도 잉여전력이 발생하면 이웃간의 거래 또는 중개사업자의 거래유인 체계를 구축해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운영시스템과 요금조정에 대한 정책방향은 정부와 공기업 중심의 가격규제 일변도가 아니라 시장의 공정한 경쟁구축과 공정한 경쟁관련 규제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급격한 환경변화로 인해 이제 규제일변도의 정책은 다양한 민간사업자의 확대를 제어하기 어렵고 한계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공급자 및 수요자가 공정한 경쟁을 기반으로 자율적 책임하에 다양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참여자 모두 규제에 따른 혜택은 누리면서 손실과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상황이 심화되고 분쟁조정이 점차 증가할 수 있다. 결국 에너지 시스템의 운영체계는 공정한 시장기반을 조성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지고 요금규제가 필요한 상황 하에서 요금조정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독립적 규제기관에서 다루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에너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