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원 한국가스전문검사기관협회 회장
한상원 한국가스전문검사기관협회 회장

[투데이에너지]최근 들어 평소 알고 지내는 중소기업인들로부터 일 년도 채 안 남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령 시행에 따른 우려와 고민을 많이 듣는다.

산업재해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는 일은 그 어떤 사안보다 중요한 만큼 기업, 특히 최고경영자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각종 재난재해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어 왔고 이에 따라 보다 안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관련 법·제도 분야에서 다양한 개선과 의미 있는 성과가 이뤄져 왔다.

안전 분야는 국가적 차원의 노력뿐만 아니라 민간 분야에서도 많은 보완, 개선이 이뤄져 왔다.

최고경영자들의 관심과 노력은 물론 CSO(최고 안전책임자) 선임과 막대한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화학물질 안전 분야에 있어서는 2012년 구미 불산사고 이후 화관법, 화평법 등이 도입되면서 법·제도 시행에 따른 강화는 물론 화학안전 관련 분야의 조직 신설과 관련 공무원과 종사 민간인 규모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 분야에 정부와 공공분야가 투입한 재원은 엄청난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환경, 노동 분야에서의 안전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막대한 재원 투입에 비해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에너지인 액화석유가스(LPG) 안전 분야에 관한 관심과 지원은 사실상 ‘무관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부족했다.

현재도 LPG충전 및 판매업계와 관련한 안전에 대해서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일부 이뤄지고 있지만 여타 분야 안전보다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 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가스는 도시가스처럼 배관에 의하거나 용기를 통해 공급되고 사용된다. 가스를 담는 용기의 종류는 규격과 용량, 가스의 종류와 특징 그리고 일반 용기, 저장탱크, 특정설비 등 실로 다양하다.

이를 다루고 있는 고압가스 안전에 관한 법령, 액화가스 안전에 관한 법령, 관련 고시 그리고 전문적인 코드 등을 통해 규제되고 있지만 법이 제정된 지 오래돼 현 실정이나 기술 수준에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최근 5년간의 가스사고 통계를 보더라도 LP가스분야 사고율이 46.4%로 21.6%인 도시가스분야에 비해 2배가 넘는다.

이는 우리 재검사기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LPG용기는 소유자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현황에 대한 파악과 관리가 어렵다. 또한 급격한 도시가스 공급과 소형저장탱크로의 전환 등으로 사업으로서 미래도 매우 암담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일각에서 사용연한제 재도입, 검사비 국가·지자체 지원방안 등이 나오고 있고 용기 검사 비용을 둘러싸고 충전·판매사업자와 재검사기관들과의 갈등이 상존하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도 제기했지만 LPG용기분 야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인 검토와 관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데 검사기관들도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가스별 사고 2017년~2021년
가스별 사고 2017년~2021년

가스용기 안전과 관련해 재검사기관은 물론 관련 업계 간의 가장 큰 현안은 검사비용의 문제다.

재검사 업무를 민간, 즉 전문검사기관에 위탁한 뒤 고시를 통해 전문검사기관이 받는 수수료는 검사 기관과 검사신청인이 협의해 정할 수 있다. ‘고압가스시설 등의 검사수수료 및 교육비기준’ 이라고 규정해 검사기관과 검사의뢰인의 협의에 일임하고 있어 이를 둘러싸고 당사자 간의 갈등은 물론 물량을 둘러싼 출혈경쟁으로 부실 검사에 대한 우려가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스용기의 검사과정을 보면 검사장에 입고돼 △잔가스 회수 △밸브 탈착 △외관검사 △이물질 제거 △내압시험 △표면처리를 마친 뒤 다시 △외 관검사 △도장 및 건조 △내부 이물질 제거 △각인 후 밸브 부착 △기밀시험 △용기 내 공기 제거등 여러 과정을 거쳐 출하되는 프로세스인 만큼 적정한 검사가격을 보장하지 않고 과연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급기야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이러한 실정과 문제점 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고 안전을 둘러싼 불협화음과 부조리를 이번 계기로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당시 가스안전공사를 대상으로 질의에 나섰던 국회의원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에서 사용하는 초고순도 가스를 담는 용기가 부실 검사로 인해 만에 하나 사고가 나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이러한 현실에 대한 관심과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실례로 반도체 생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핵심 특수가스인 제논(Xe)의 경우 용기 당 수억원이 넘는데 비해 5년에 한번 받는 재검사비가 신간 소설 한 권 가격과 비슷하다는 것은 검사수수료의 실상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후 산업부와 가스안전공사 주관으로 검사기 관과 관련 업계 간의 간담회가 두 차례 이뤄졌으나 그 후 별다른 진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협회는 회원사들의 협조를 거쳐 재검사 과정에 요구되는 비용에 대한 객관적이고 보다 정확한 현황을 파악해 나갈 계획이다.

얼마 전 한 경제단체가 주관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원로경영인 한 분과 자리를 함께하게 됐다. 그분은 반세기 동안 계측장비 한 길을 걸어오면서 장비 국산화와 시스템 개발을 통해 동 분야의 세계적인 히든 챔피언으로 성장하는 데 한평생을 이바지해 오신 분이었다.

여러 가지 주제로 대화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품질 경쟁력을 기업의 최고의 가치로 삼아 불철주야 연구개발을 통해 드디어 ‘글로벌 스탠다 드’를 갖추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세계적인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가 얘기한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라는 화두를 늘 염두에 두고 표준과 품질경영에 나섰고 ‘리더의 측정법’이란 책까지 저술한 바 있다. 며칠뒤 책을 받아보고 나서 품질이나 측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이처럼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정확하게 측정 되지 않고 당사자 간 합의나 타협으로 이뤄질 수는 없는 것이다.

 

출처 : 한국가스전문검사기관
출처 : 한국가스전문검사기관

가스용기의 구조적 무결성(Structural Integrity)과 관련해 어떠한 문제는 안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서 가스용기의 안전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안전’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수요공급의 시장 논리에 전적으로 맡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기의 안전을 저해하는 결함이나 손상을 사전에 감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재검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검사자와 피검사자가 협의를 통해 검사비를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당사자 간에 이해가 상충하기 때문이다.

검사를 받아야 하는 측은 검사비를 최소화하는게 목표지만 검사하는 측은 연료비, 재료비, 인건 비, 폐기물 위탁처리비, 보험료 등 많은 요소에다 최소한의 이윤을 포함한 비용을 받고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사물량은 제한돼 있는데 비해 검사를 수행하는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사가 철저하게 될 리가 없고 이는 가스용기 안전의 잠재적 위험 요소가 되는 것이다.

반면 정부나 공공부문에서 이처럼 타협할 수 없 는 검사를 위한 객관적이고 표준적인 단가를 제시해 준다면 검사를 둘러싼 양측의 이해에 대한 고려 없이 오로지 법규에서 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검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가스용기에 대한 철저한 검사가 가능하고 이래야 가스 사고를 최소화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안전을 최우선 가치의 하나로 보고 있는 선진국들은 안전과 관련한 분야에 대해서는 대부분 표준 가격을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정부가 건물과 시설안전 검사에 대한 표준가격을 정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연방고용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청(OSHA)이 작업장 안전과 건강관리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은 역내 공통으로 적용하는 안전 표준을 제정해 이를 회원국들이 반드시 지키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 승강기, 크레인 등 많은 안전관련 분야는 정기 검사에 따르는 검사비용을 고시로 정해 실시하고 있다.

특히 건설공사 분야에서는 매년 표준시장 단가를 고시함으로써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주 사소한 불량이라도 자칫 폭발하는 경우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가스용기 분야에도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가스용기 검사에 따르는 수수료를 검사 당사자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은 이해충돌로 인해 결코 합리적일 수가 없다.

따라서 정부나 공공부문에서 표준단가를 제시 함으로써 법정 검사가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할 수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검사기관은 검사비 문제에서 벗어나 검사 품질향상과 기술향상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 나오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처럼 이제 우리는 ‘안전, 타협할 것인가, 원칙을 지킬 것이냐’라는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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