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성 중앙
대학교 에너지
시스템공학부
교수

[투데이에너지] 최근 글로벌 히트펌프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이와 관련된 다양한 보도와 통계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히트펌프의 성장속도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하겠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2021년과 2022년 사이에 전 세계 히트펌프시장은 11%가 성장했는데 이 중 유럽은 40%의 성장률을 보였다. 난방시장의 중요한 지표로서 난방설비 중 히트펌프의 점유율도 급등했다.

유럽 평균 2014년 11% 수준에서 2021년에는 21%를 기록하고 2022년에는 점유율이 무려 29%까지 상승했다. 특히 북유럽 4개국,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에서는 히트펌프의 시장 점유율이 90%를 넘는다.

이때까지 대부분 난방시장이 보일러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히트펌프는 소규모 시장이었음을 고려하면 30%에 육박하는 히트펌프 점유율은 난방시장의 패러다임이 히트펌프를 중심으로 바뀌게 됐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에는 탈탄소 정책 등 유럽 정부의 지속적인 친환경 정책에 있다고 하겠다. 유럽은 다양한 에너지 관련 지원제도와 규제를 통해 탄소중립에서 가장 빠르게 앞서나가고 있다. 특히 난방시장에 히트펌프를 중심으로 한 빠른 변화는 탄소중립 시대의 청사진을 가장 먼저 구체화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최근의 유럽 히트펌프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원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의한 에너지수급 및 가격변화에 기인하는 점이 가장 크다. 우 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가스공급이 차단되자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10배 이상 급등하는 국가가 속출했고 이에 대체 수단으로서 히트펌프가 각광 받게 됐다. 물론 전기요금도 상승했지만 그 수준은 2~3배 가량으로 가스난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게 됐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유사하게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하게 전기와 천연가스를 이용하고 있다. 원래도 외국에 비해 저렴했던 전기요금은 최근의 수 십 % 수준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그 격차를 늘리고 있다. LNG(Liquefied Natural Gas)로 공급되는 우리나라의 천연가스 가격은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이었지만 이제는 유럽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이다. 

현재 한전과 가스공사 등은 천문학적인 적자를 감수하면서 저렴하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올해도 10조원이 넘는 적자가 예상되는 한전의 상황 등을 고려하면 에너지 공기업들이 적자재정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가 머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이 도달하게 되면 에너지 가격은 필연적으로 상승할 수 밖에 없고 부분적으로라도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상승하는 에너지 가격은 국가와 국민경제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어려움이지만 에너지 시장의 관점에서는 긍정적이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효율향상을 비롯한 에너지 기술에 대한 투자가 확대될 것이며 국민들의 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중립에서 히트펌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은 정부에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보급 확대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과 기술을 주도하는 국가는 독일, 일본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높은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이런 나라들은 현실적인 에너지 가격을 기반으로 에너지 산업과 기술이 발전해 왔고, 이의 배경에는 에너지 비용을 감안한 국민들의 에너지 절약의식이 함께 있음에 물론이다. 히트펌프 기술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에너지 기술은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낮은 에너지 가격으로 인해 국내 시장에는 효율 높은 비싼 설비는 외면받고 저렴한 설비가 선호되고 있어 기술 중심의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산적해 왔던 에너지 가격 현실화와 관련해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 같다. 이미 한계상황에 몰린 에너지 공기업 상황을 고려하면 이제 더 미룰 수도 없다. 하지만 이번 기회야 말로 에너지 시장구조를 정상화하고 이로부터 에너지 기술발전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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