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가 당진에 건설 중인 LNG 생산기지./한국가스공사 제공
한국가스공사가 당진에 건설 중인 LNG 생산기지./한국가스공사 제공

[투데이에너지 박찬균 기자] 가스 산업이 블루오션이라며 앞다투어 국내 액화가스(LNG) 공급망 설비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가스에 치중하는 한국 에너지 밸류체인에 경종을 울리는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이 급격한 LNG 과잉 투자로 좌초자산 리스크가 높아졌다는 점이 이번 보고서의 핵심이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29일 최신 보고서 ‘한국의 LNG 과다 확충(South Korea’s LNG overbuild)’을 발간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LNG 수입·저장 인프라에 약 11조 3000억 원(약 87억 달러)을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국제 정세에 따라 수요 예측이 불투명한 LNG에 단기간 과잉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이로써 문제점들이 생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의 저자이자 IEEFA의 한국 에너지금융전문가인 김채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탄소중립 목표에 따른 LNG 터미널 시설 규모와 예상 LNG 수요 간의 불일치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전 세계 에너지 위기로 한국은 ‘에너지 안보’라는 명목으로 현재에도 이용률이 저조한 LNG 터미널을 두고도 추가적으로 LNG 터미널을 증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가교(브릿지)’ 역할을 하는 에너지라는 프레임 안에서 공공과 민간 모두 LNG에 적극적이다. 포스코와 SK 등 에너지 기업부터 한국전력공사의 발전자회사는 물론 심지어 HDC그룹과 한양 등 에너지에 큰 경험이 없었던 건설사까지 LNG 터미널 확충에 뛰어들었다. 공공이 6개, 민간이 5개를 계획해 총 11개 LNG 터미널이 한국에 들어설 예정이다.

문제는 LNG 공급망 사업이 알려진 대로 기회가 아니라 발등 찍는 도끼라는 점이다. 먼저 새롭게 들어설 각 터미널끼리 매우 밀접하게 위치했으며 보고서는 이를 ‘비효율적인 자산 배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터미널 이용률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고서는 꼬집었다. 또한 LNG 가격이 국제 정세에 따라 요동치며 예측 가능성을 잃어버린 것도 LNG 공급망 투자에 좋지 않은 시그널을 준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이 향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추가로 상향함에 따라, 에너지 믹스에서 LNG 발전의 비중이 더욱 축소될 경우 LNG 인수 터미널의 낮은 가동률 문제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정학적 다양한 국제 정세에도 가스를 비롯한 화석연료 가격 변동도 불안 요소다. 김 연구위원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같은 예측할 수 없는 지정학적 위기 및 이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충격이 발생하면 가스 가격은 앞으로 또다시 상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며 “국제 가스 가격 상승은 LNG 터미널의 가동률을 추가 감소시켜 비효율적 자산 운용 및 좌초자산 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IEEFA는 보고서에서 LNG 설비의 좌초자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2가지를 제안한다. 하나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 목표(NDC)에 맞게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효율적으로 LNG 설비를 활용하도록 노력하는 것, 그리고 기후 목표를 달성에 방해되는 CCS와 결합해 LNG를 개질해 만든 수소(블루수소), 수소를 혼소하는 가스발전 등 LNG 사용을 연장하는 기술이나 서비스를 홍보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김 연구위원은 “거듭되는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 재생에너지로의 빠른 전환만이 예상치 못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공급 충격으로 인한 변동성이 큰 화석연료 발전 비용을 줄이고 향후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1986년부터 LNG 수입을 시작한 한국은 일본, 중국과 함께 전 세계 메이저 LNG 수입국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한국에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천연가스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서도 LNG 설비 확충 계획은 강화됐다.

IEEFA는 이 같은 과도한 LNG 터미널 투자를 가져온 세 가지 원인을 각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수급과 안보 강화 필요성, 국내 가스 시장의 경쟁 심화, 블루 수소, 벙커링 서비스, 수소 혼소 발전 등 새로운 LNG 기반 사업의 투자 열기에서 찾고 있다.

국제가스연맹(IGU)의 2022년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재기화 시설 활용률은 33%로 전 세계(41%) 및 아시아(52.4%)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023년 현재, 한국은 연간 총 약 1억5,300만톤(153 MTPA)의 재기화 용량을 갖춘 7개의 LNG 수입 터미널과 약 630만톤(6.3 MT)의 LNG 저장 용량을 보유하고 있다. IEEFA의 예측에 따르면, 미사용 LNG 재기화 용량은 올해 1억 790만톤(107.9 MTPA)에서 2036년 1억5,280만톤(152.8 MTPA)로 증가해 현재 이미 29.5%에 불과한 이용률이 2036년에는 19.8%로 더욱 낮아질 수 있다.

한국가스공사 뿐만 아니라, 민간 LNG 직도입사와 발전공기업들은 더 큰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한국가스공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LNG 터미널 재기화 시설과 저장 탱크 신·증설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자체 터미널을 확보하려는 국내 업계 간 치열한 경쟁으로 인근 지역 간 대규모 LNG 인프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서 향후 터미널의 사용자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충청남도 당진에서는 한국가스공사가 민간발전사 등과 대규모 터미널 신설을 놓고 경쟁하고 있으며, 충청남도 보령에서는 발전공기업과 민간발전사 간의 터미널 신·증설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신규나 기존 LNG 터미널들은 제한된 숫자의 지역 내 터미널 사용자를 놓고 경쟁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공공과 민간 부문이 자산의 효율적 활용에 대한 협력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또한 업계는 기존 LNG 수입 인프라의 용도를 변경하고 재조정함에 따라 향후 천연가스에서 블루수소를 생산하고 탄소포집·활용·저장을 통해 온실가스를 채집하는 방식 등으로 탄소중립 과 에너지 전환에 따른 좌초자산의 위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김 연구위원은 이러한 신기술은 “아직 시기상조이며 탄소중립 기여와 관련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IEEFA는 투입되는 자본에 비해 국가 탄소중립 목표와 탄소배출 감소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LNG 사용 기한을 연장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과도하게 추진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국·공영기업들의 과도한 터미널 투자와 비효율적 자산 배분과 활용은 국민들의 세금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민간 기업들의 과도한 투자는 기업의 부채를 증가시켜 재무 안정성을 크게 악화할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LNG 수입 인프라의 과잉 투자와 무리한 규모 경쟁은 한국 경제를 예측할 수 없고 변동성이 높은 화석연료 기반 경제에 더욱 구속시키고, 국내에서 생산 가능한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늦춰 에너지 자립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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