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가스전 생산플랫폼 전경./한국석유공사 제공
동해가스전 생산플랫폼 전경./한국석유공사 제공

[투데이에너지 최인영 기자] 물 에서 얻을 수 있는 무한한 청정에너지원 수소.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풍부한 자원이자 고갈의 염려 없는 물을 전기분해해 얻을 수 있어 전문가들은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궁극의 에너지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석유 자원과 같이 자연에서 캐내는 ‘백색수소’가 업계의 지각변동을 불러 왔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백색수소의 존재와 경제가치가 알려지면서 이를 탐사하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편집자 주

■우물가에서 최초 발견

1987년 서아프리카 말리 보우라케보우고우 마을 우물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가뭄으로 우물을 만들기 위해 시추공을 불러 108m의 깊이를 팠지만 지하수를 찾는 데 실패했다.

한 인부가 담배를 피우면서 바위틈 바람에 얼굴을 식히려 들이민 순간 폭발이 일어났고 생명에는 지장이 업었지만 큰 화상을 입었다.

구멍 입구에서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고 연기 없는 불꽃만 이어졌다. 간신히 화재를 진압한 뒤 수주에 걸쳐 시추공을 메운 뒤 우물을 폐쇄했다.

미국과학진흥회가 발간하는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는 당시 주민의 말을 인용해 불의 색깔이 낮에는 푸른 탄산수, 밤에는 빛나는 금빛을 띠었다고 밝혔다. 폭발은 일어났지만 인근 마을에는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20년이 지난 2007년 석유회사 페트로마의 회장 알리오우 디알로는 이곳에 뭔가 있다고 생각해 일대 부지를 사들였다.

2012년 디알로는 캐나다 석유 컨설팅 회사 채프먼페트롤리움에 조사를 의뢰해 25년간 봉인된 구멍을 열었고 분석 결과 시추공에서 나오는 기체의 98%가 수소(H₂)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상용화 가능성을 보기 위해 디알로는 수소를 연소하도록 개조한 포드 엔진과 300kW급 발전기를 설치했다. 수소를 태워 나온 전기를 인근 마을에 공급했고 수소 연소 시 엔진 배기구에서 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디알로는 회사 이름까지 ‘하이드로마(Hydroma)’로 바꾸고 수소 사업에 주력했다. 말리를 중심으로 24개의 시추공을 뚫어 탐사를 시작했으며 780㎢ 면적에서 5개의 수소 저장공간을 발견했다.

저장공간의 깊이는 최저 30~135m에서 최대 1,125~1,500m 수준이며 풍화를 받아 떨어져 나온 광물로 구성된 탄산염으로 이뤄져 있다. 축적양은 약 500만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발견 당시 0.4MPa 수준의 압력을 유지한 채 4년간 생산이 이어졌다. 저장공간에 끊임없이 수소가 채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하이드로마는 수소를 상업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말리의 불안정한 사정으로 인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땅 속 ‘재생에너지’

수소가 땅 밑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의 논문으로 수차례 조명된 바 있다. 산업계는 경제성 등을 이유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학계는 1880년대부터 흥미를 갖고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석유회사들이 뚫은 시추공만 수백만 개에 이르는데 이들의 관심이 석유와 메탄같은 탄화수소이다 보니 수소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을 수 있다.

땅 밑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재생에너지원으로 평가받는 이 수소는 자연수소(Natural hydrogen)라고 불리며 그 자체로 이용 가능하다는 뜻을 담아 백색수소(White hydrogen) 또는 금(Gold)을 캐는 것에 비유해 골드수소(Gold hydrogen)라는 이름도 갖는다.

자연수소는 전통적인 유·가스처럼 자연발생돼 지하에 저장돼 있다. 별도의 에너지원이 필요 없고 지속적으로 자연 충전되는 것으로 간주되면서 최근 업계 또한 주목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이 2022년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연수소의 추정 매장량은 수조톤으로 인류가 수천년간 쓸 수 있는 양으로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땅 속에서 계속 만들어지기 때문에 고갈될 염려 없는 재생에너지로 평가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자연수소의 80%는 사문석화(serp entinization)라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지각 밑 맨틀의 철을 함유한 감람석이 고온 고압의 환경에서 물을 만나면 산화반응이 일어나 사문석으로 바뀌면서 부산물로 수소가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300℃와 300기압 조건에서 실험 결과 이 과정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산화·환원반응을 거쳐 나오는 수소는 작고 가벼워 암석의 틈을 통해 올라가다가 투과성이 낮은 염(salt)형태의 암석층 아래 붙잡혀 고이게 된다.

 

■수소분야 ‘골드러시’

현재 말리를 비롯해 미국, 동유럽, 러시아, 호주, 오만, 프랑스 등에서 자연수소가 발견되고 있다.

자연수소 시추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이 걸리는 불확실한 사업이지만 그 존재와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서부 개척 시대 ‘골드러시’에 비유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 지질화학자인 제프리 엘리스는 자연수소는 대부분 양이 적거나 먼바다 혹은 아주 깊은 곳에 매장돼 있어 경제적 활용은 어렵지만 단 1%만 생산해도 200년간 5억톤을 생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호주 스타트업 골드 하이드로젠(Gold Hydrogen)은 지난해 10월 호주 남부 효크반도에서 채굴작업을 시작했다. 2024년 말에는 실제 채굴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콜로마(koloma)는 빌 게이츠가 설립한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 등으로부터 9,100만달러(한화 약 1,200억원)를 투자받아 수소 채굴에 나서고 있다.

미국 내추럴하이드로젠에너지(Natural Hydrogen Energy)는 2019년 네브래스카에서 수소 시추를 완료하고 첫 번째 상용화 시점에 근접해 있다고 밝혔다.

자연수소 생산 비용은 1kg당 1달러 수준으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원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얻는 그린수소(6달러/kg) 대비 저렴하다. 하지만 시추 장소와 기간에 따라 가격변동성을 지니고 있다.

■매장 가능성 확대

수소는 원자 가운데 가장 가볍기 때문에 공기 중으로 쉽게 날아간다. 이에 오랜 기간 수소가 기체 상태로 땅 속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1987년 말리의 사고로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된다. 하이드로마가 7년여 기간에 걸쳐 인근 마을에 전력을 공급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2018년 국제수소에너지 학술지에 게재됐다.

2023년에는 프랑스 동부 로렌 지방에서 프랑스 연구자들에 의해 대규모로 매장된 수소가 발견됐다. 지하에 매장된 메탄가스를 측정하기 위해 시작한 연구과정에서 나왔으며 더 깊이 내려갈수록 순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깊이 1,200m 지점에서 순도 20%의 수소가 나왔고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지하 3,000m 지점에 순도 90% 이상의 수소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로렌 지역에만 최대 4,600만톤의 수소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현재 천연가스를 이용해 생산되는 글로벌 수소량의 절반 수준에 해당한다.

프랑스의 발견은 지질구조가 유사한 미국, 호주, 스페인, 독일, 코소보, 핀란드, 스웨덴, 폴란드,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의 매장 가능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토양에 약1m의 측정공을 굴착 후 수소 검지기를 활용해 지표조사를 수행하고 있다./한국석유공사 제공
토양에 약1m의 측정공을 굴착 후 수소 검지기를 활용해 지표조사를 수행하고 있다./한국석유공사 제공

■한국, 5개 지점 발견

한국석유공사는 지하에 부존된 수소 탐사를 목표로 2022년부터 연구 과제를 개시해 국내에서 토양가스를 측정하고 관련 기술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공사는 전국 5개 지점에서 자연수소 측정장치를 통해 수소 발생을 확인해 정밀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수소가스의 측정과 장기간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자연수소 탐침장치’를 개발해 지난해 3월 특허를 출원했다. 이 기술은 토양에 장치를 삽입해 지하에서 발생하는 수소 기체를 측정하는 것으로 별도 필터와 배수시스템을 이용해 토양 수소 측정에 가장 큰 제약 요인인 물에 의한 영향을 최소화했다.

공사는 지표조사작업을 전략적으로 확대하고 지질, 지구물리, 시추 등 보유 기술과 자체 개발을 통해 특허 출원한 수소 탐사·모니터링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사가 주도해 기초 연구를 추진하고 보유한 유·가스 탐사 개발 기술력을 토대로 유망 지역 발굴과 중장기 분석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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