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울 원전 1,2호기 전경
신한울 원전 1,2호기 전경

[투데이에너지 이성철 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원전 생태계 복원이라는 국가 에너지 정책 기조에 변화가 생기면서 원전 산업계는 기대감이 크다. 그러나 원전의 부활 만큼이나 지속적인 원전 발전의 가장 주요한 요건이 바로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처리 문제다. 원전 발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오염 폐기물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미 수십년전부터 계속돼 왔다. 방사성 폐기물 문제는 지난 1978년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된 이후 지금까지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9차례 걸쳐 부지를 선정하기 위한 과정을 가졌지만 그때마다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은 극에 달했고 아직도 소통과 합의를 통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나 폐기출 처리장, 즉 방폐장을 건설하기 위한 제도적 근거가 될 법안은 국회 입법 과정에서 발이 묶여 지지부진하다. 특히 정치권과 산업계는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후핵연료)의 영구 처분 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에 대한 논의를 벌이고 있지만 찬반으로 엇갈린 의견에 좀처럼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다. 이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의 주요 내용 및 쟁점을 짚어보는 한편 해외 주요 원전국들의 처리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 제정 지지부진

당초 특별법은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먼저 발의했고 이어 국민의힘 이인선·김영식 의원이 법안을 추가로 발의하면서 3가지안을 병합에 논의가 이뤄져왔다. 그러나 여당은 폐기물처리장 부지 내 저장시설의 저장 용량을 ‘원자로 운영 허가 기간의 발생 예측량’으로 제한하며 향후 원전 수명이 연장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야당은 ‘설계 수명 기간의 발생 예측량’으로 제한했다. 원전의 최초 운영 허가 때 심사했던 설계 수명이 종료되면 저장시설 용량도 늘릴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지난해 11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 기업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지도부에 협상을 일임키로 했다. 12월 정기국회 기간에도 처리되지 못한 상황에서 21대 국회는 4개월도 채 남지 않아 사실상 자동 폐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산업 생태계 강화를 내건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특별법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국내 임시 저장시설이 10년 내 수용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방사성 폐기물을 영구 처분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실제로 현행법으로는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를 원전 외부에 저장하거나 영구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 에 폐기물 발생량 전체를 원전 부지 내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발생한 사용후 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 자는데 여야 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21대 국회에서 최종 의결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 엇갈린 여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후핵연료)’은 원자로의 연료로 사용되고 나온 핵연료로 원자력안전법 상 ‘폐기 결정된 사용후핵연료’는 고열과 강한 방 사능 때문에 특별히 지정된 장소에서 특별 관리가 이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오랫동안 고열과 방사능을 배출하기 때 문에 바로 처분하지 않고 원전 안에 임시 보관하며 열과 방사능을 낮춰준 후에 영구 격리 처분한다. 그러나 방폐장 건설 지역 선정에서부터 처분 방식 등을 규정하는 실질 법안이 없다보니 방폐물 처리 포화시점이 도래하면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학회, 한국방 사성폐기물학회 등 원자력 분야 국내 산·학·연 505개 기업 및 단체들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 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이 법은 원전을 가동하면 나오는 고준위 방폐물을 저장할 시설 건설과 이와 관련한 주민 지원 방안 등을 담고 있다. 앞으로 원전을 계속 가동키로 한다면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 건설이 전제되야 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자 원자력 업계 산·학·연이 조속한 법 제정을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탄소 중립의 효과적인 달성과 에너지 안보, 원전의 해외수출을 위해 특별법 제정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며 “특별법 제정이 무산되면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5~7년 후 국내 원전을 멈춰 세워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전 전문가들은 해당 법안이 올해 제정된다해도 원전 부지 내에 짓는 사용후 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 건설에는 지자체 인허가와 설계, 건축 기간 등을 포함해 최소 7년에서 10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 전 21대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무 산될 경우 다시 입안부터 발의, 심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폐기물 처리 포화시점으로 예상되는 2030년에는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원전 가동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에너지정의행동을 비롯해 탈핵을 주장하고 있는 시민환경단체들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특별법에 대해 ‘부지 내 저장’을 통한 임시저장 시설을 명문화해 핵발전소 지역을 사실상 영구 핵폐기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법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폐기물의 최종 저장 계획이 제대로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고준위폐 기물을 떠안기는 형국”이라며 “원전 설계 수명을 넘어 수명 추가 연장까지 발생한 폐기물 보관을 전제하며 제한없이 폐기물을 늘리는 내용을 포함 하고 있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폐기물 처리 및 관리에 대한 최소한의 자세는 폐기물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계속 늘어나는 폐기물을 제한하지 않고 처리시설만 늘리는 것은 결국 국민에게 위험과 불안을 강요하는 일이다”며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원전 진흥 정책이 아니라 탈핵을 위한 로드맵이어야 하고 고준위 폐기물에 대한 사 회적 책임을 위한 공론화 작업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성원전 맥스터
월성원전 맥스터

■사용후 핵연료 2030년부터 포화 전망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기반으로 사용후 핵연료 발생량 및 포화 전망을 재산정한 결과 포화 시점이 1~2년 가량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의 재산정 결과를 공개했다. 앞서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이하 방폐학회)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전제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지난 2021년 12월에 수립해 발생량 및 저장시설 포화 전망을 추산한 바 있다. 송기찬 방폐학회 기술정책연구소장은 “현 정부 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하면 원전 추가 건설이 확정됐고 2036년까지 운영 허가가 만료되는 원전도 계속운전 계획이 수립됐다”며 “원전 이용률에 변화가 감지됨에 따라 주요한 변수가 됐고 이에 따른 발생량 및 포화전망 재산정이 필요했다”고 재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계획에 따르면 2030년에는 원전 발전량이 전체 발전량의 32.8%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포화시점은 발생한 사용후핵연료 등 저장필요 량이 원전 본부별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의 저장 가능 용량을 넘어 더 이상 사용후핵연료의 저장이 불가능해지는 시점으로 판단했다. 포화시점은 한빛원전 저장시설 포화 기점인 2030년을 시작으로 한울원전 2031년, 새울원전 2066년, 월성(경) 2042년, 월성(중) 2037년으로 예상됐다. 이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기준으로 추산된 포화시점인 한빛 2031년, 한울 2032년, 새울 2066 년, 월성(경) 2044년, 월성(중) 미발생보다 1~2년 단축된 것이다. 이중 고리원전의 경우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 획에서 영구정지가 가정돼 조밀저장대 설치가 검토되지 않았으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계속운전이 반영됨에 따라 조밀저장대를 설치하는 것으로 가정하면 2032년이 포화시점으로 전망됐다. 송 소장은 “사용후핵연료 발생량 및 포화시점 전망 결과를 고려할 때 조밀저장대 설치와 건식저 장시설의 확충이 불가피한데 이는 단기적 대응 수 단”이라며 “원전 내 저장시설 포화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을 빠르게 확 보해야 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원전 보유국 처리 실태

해외 주요 원전 보유국들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 물 처분장 마련의 시급성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해 당 부지 선정과 처리 방식을 위한 관련 법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우선 핀란드는 오랜 기간의 준비 끝에 온칼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2025년에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스웨덴도 부지 선정 및 건설계획 승인 절차가 완료된 상태이고 스위스와 중국은 부지 선정을 마 쳤다. 영국과 캐나다도 각각 후보지를 압축해 적합 부지를 선정하기 위한 연구용역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정치권과 주 정부와의 갈등으로 처 리장 설립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지만 이미 우리보다 40년이나 앞선 지난 1982년에 방사성폐 기물 정책법을 채택해 방폐장 후보지 선정을 위한 규정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캐나다와 프랑스 역시 1990년부터 2000년 사이 에 국가 차원의 원자력 안전위원회 설립을 통해 폐기물 관리를 위한 규정을 만들었고 실질적인 폐 기물 처리장 관련 운영 및 관리 기준, 소요 비용, 환경영향 평가 등에 대한 세부 사항을 법으로 명문화해놓고 있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 물 처리 관련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는 2023년 8월 기준 운전중인 원전 설비용량 기준으로 세계 5위(25기) 수준이지만 상위 10개 원전 운영국 중 유일하게 처리장 부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치 논리를 떠나 국가 에너지 정책 차원에서 시급한 사안인 만큼 조속한 법 제정과 관리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에너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