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중인 피라와잉기/기후솔루션 제공
발언 중인 피라와잉기/기후솔루션 제공

[투데이에너지 박찬균 기자] 국내 에너지 운용사가 추진 중인 호주 바로사 가스전 사업 인근의 티위섬 원주민 3명이 한국을 방문해 지난달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녹색정의당 장혜영 의원, 기후솔루션, 청년기후긴급행동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바로사 가스전으로 훼손되는 해역의 문화적, 정신적 가치를 강조하며 사업에 관계된 공적금융기관, 정부, 국회, 기업을 대상으로 다시 한번 재고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번 티위섬 원주민들의 방한은 일본 방문 이후 이뤄졌다. 일본 방문에선 일본 정부와 바로사 가스전과 연관된 공적 금융기관과 면담했지만 우리 정부와 공적금융기관인 수출입은행 등은 면담을 거절했다.

티위섬 원주민 대표로 온 무느피 부족의 장로인 피라와잉기(Pirrawayingi)는 기자회견에서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다와의 정신적 연결을 유지하고 유지해 왔다”라며 “우리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국민, 환경을 존중하기 위해 한국에 왔으며 한국 정부가 우리의 전통적 지식과 관계를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바로사 가스 프로젝트에 투자하지 않도록 티위족을 지지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말라우 부족 지도자인 테레즈 부크(Therese Bourke)는 “한국 수출입은행에 서한을 보냈지만 수출입은행 사내 고충처리 메커니즘을 통해 인권 문제를 제기한 후에도 연락이 닿지 않아 여기까지 와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삶의 터전과 삶의 방식은 정신적, 정서적, 사회적 안녕에 영향을 미치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라며 “오늘 한국 정부와 국회가 에너지 수입원을 결정할 때 우리를 고려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덧붙였다.

부크는 무엇보다 자연에 서린 민족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존중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만약 티위족이 한국에 와서 신성한 백두대간에서 가스를 얻기 위해 시추를 시작하고 경복궁을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을 깔았다고 상상해 보라”라며 “바로사 가스 프로젝트는 우리 땅에 말뚝을 박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사 가스 프로젝트는 우리 조국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인들에게 우리 선조들이 일구고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유대해온 땅에 쇠말뚝을 박아넣는 것과 같다는 취지로 이와 같이 말했다. 그는 앞으로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11개 정부 승인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고향과 바다를 지킬 수 있도록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지지발언에서 바로사 가스전이 티위섬 원주민의 자치권을 위협하고 있는 동시에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에너지 전환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백해무익하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한국의 중장기적인 가스 수요도 낮아지고 호주의 세이프가드 메커니즘 등 여러 기후 규제로 사업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의정활동 동안 계속해서 수출입은행을 대상으로 여신 지원 의향을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라며 “그럼에도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이 모든 문제점을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은 채 약 4,000억 원 규모의 여신지원계획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장 의원은 원주민들의 문제 제기로 가스전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서 나온 일부 언론 보도에 관해서도 의견을 전했다. 장 의원은 “국내 일부 언론사들은 티위 원주민들을 ‘악어인간’ 신화를 믿고 가스전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매도하며 당사자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유감스럽게도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이분들의 정중한 면담 요청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라며 “대한민국의 공적금융기관으로서 자신의 투자행위로 인해 피해 보는 당사자들과의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또 “수은과 무보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조속히 면담에 임할 것을 촉구한다”라며 “원주민들의 인권, 기후생태환경과 기후위기,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고려해 바로사 가스전 여신 지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이제라도 철회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청년기후긴급행동 강은빈 대표는 연대발언에서 전 지구적인 생태보존을 중시하고, 개발과 성장에만 갇히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끝을 모르는 개발과 성장 중독은 지구 생태계의 공멸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라며 “티위섬 주민들과 지구 생태계를 곤경에 처하도록 몰아세우고는 정작 한국에서는 수출경제를 활성화하고 에너지 안보를 실현했다고 기뻐하는 모습은 두고두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웃 나라에 위험과 죽음을 수출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지구 생태계의 편에 서는 법,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이들의 편에 서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공적 금융기관 한국수출입은행과 바로사 가스전에 금융지원을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바로사 가스전은 원주민들의 보금자리인 티위섬 인근으로 파이프라인이 지난다. 바로사 가스전 사업의 시추 인허가는 지난 2022년 9월 호주 인허가 절차에 따라 원주민과의 협의가 부족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이에 따라 1년 넘도록 사업이 지연됐다. 사업 지연으로 사업비는 약 3억 달러(약 4,000억 원)가량 오른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가스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바로사 가스전의 파이프라인 사업이 원주민들의 문화유산으로써 정신적, 역사적인 상징성이 있는 해역에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에 2023년 가처분 신청이 제기됐지만 지난 1월 호주 법원이 원주민들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공사가 재개됐다.

작년 초 단 1회를 조건으로 연장됐던 무역보험공사의 금융지원 승인이 올해 초 만료됐다. 무역보험공사가 제공하기로 했던 금융 공백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사 가스전 개발 사업자들은 2025년 가스전 시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사업에 다시금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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