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 에너지업계는 그 역사상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에너지산업 구조개편의 와중에 있다. 에너지산업 가운데 구조개편이 진행중인 분야는 전력산업과 가스산업이다. 정부는 100년 역사를 지닌 전력산업과 20여 년 남짓 이제 막 성장기에 접어든 가스산업을 동일한 기준의 잣대로 평가해서 동반 구조개편을 강행하고 있다. 이에 가스업계는 국내 에너지 업계가 처한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거센 반발을 보이고 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어 보인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은 논외로 하더라도 가스산업분야의 구조개편은 사실상 천연가스산업에 대한 구조개편으로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전력산업과 가스산업은 네트워크산업의 특성상 하나의 패키지로 형성되어 있어 구조개편에 있어서도 상호 보완이나 밀접한 관련성을 고려하여 함께 논의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전력산업과 가스산업은 역사나 규모로 보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동등한 조건내의 일사불란한 구조개편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전력산업과 가스산업이 처한 특성과 현실을 고려한 합리적인 방향의 구조개편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재의 에너지산업 구조개편작업은 전력산업과 가스산업간의 구조적, 산업적 특성과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어 관련업계에서는 가스산업구조개편이후의 어려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2000년 새해를 맞이하여 바람직한 가스산업구조개편의 방향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과정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점검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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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가스산업구조개편 계획

지난 99년11월12일 정부는 가스산업구조개편 계획을 발표하였다. 정부 계획의 각 부문별 경쟁도입 방안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정부는 도입도매부문에 대한 우선적 구조개편으로 2001년 중 가스공사를 3개 자회사로 분리하며 2개 사는 2002년 민간에 매각하고 1개 사는 가스공사의 자회사로 존치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소매부문의 구조개편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2002년경에는 신규설비투자경쟁이 허용될 것으로 전망되며 2003년 소매시장의 단계별 경쟁도입이 예정된 상태이다. 현행 지역별 독점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도시가스사업의 경쟁도입은, 물론 도매부문의 경쟁도입 추이를 지켜봐 가며 단계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여지나 정책의 특수성때문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가스산업구조개편의 목적은 가스산업에 경쟁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고 국민생활의 편익을 극대화한다는데 있다. 이런 입장에 대해 관련업계도 공감의 뜻을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그림은 일면 타당성이 확보되어 있는지 몰라도 시기나 방법 등 추진과정상에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도 있어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일반적인 입장이다.


도입도매부문 경쟁도입의 문제

도입도매부문 경쟁도입의 특성은 3개 분할회사 중 가스공사가 참여한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는 국제적 신뢰도를 고려, Default 예방차원에서 불량한 계약분을 가스공사에 배정한다고는 하지만 입증에 곤란한 면이 없지 않다. 모든 주자가 동일선상에서 출발할 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해지는 진리가 무시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난 10월19일 공청회에서 기획예산처는 도입도매부문의 유효경쟁 확보를 위해서는 가스공사의 참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바 있다. 가스공사가 참여할 경우 도매부문의 유효경쟁은 물론 소매부문의 실질경쟁도 저해된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제기한 것이다. 즉, 도입도매부문부터 주배관망, 대량수요처까지 일관된 수직계열화가 이뤄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스공사는 현재보다 확대된 기능으로 국내 가스시장을 지배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밝힌바 있는 민영화의 기본취지는 물론 경쟁도입의 청사진이 퇴색하는 결과를 초래할게 될 것이 예상되고 있다.

공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독점력을 더욱 고착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현재의 구조개편방향은 개편작업이 더 진행되기 전에 재검토될 필요성이 높다. 정부가 앞장서서 공기업의 독점력 극대화에 기여하는 방향의 구조개편은 어떤 논리와 명분으로도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제시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은 가스공사가 도입도매부문의 참여와 소매부문의 대량수요처 직공급건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민간에 양보하는 것이다. 도입도매부문에 경쟁체제를 도입한다고 하면서 가스공사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경쟁에 참여하는 다른 기업들은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한마디로 불공정한 게임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경쟁참여업체의 손실보상은 결국 소비자로부터 충당된다는 점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경쟁체제 도입이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손실에 대한 보상이 소비자에게 연결되고 일정기간 아니면 계속적으로 소비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경우 소비자의 생활편익 증대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 가스산업의 발전과 국가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시선을 돌려봐도 상황은 우려된다. 소매부문 직공급시에도 같은 상황이 우려되는데 중소기업들이 피땀 흘려 개발한 우수수요군을 우월적 지위를 이용, 일시에 잠식한다면 거대자본을 앞세운 거대기업으로의 종속화가 발생할 것이고 이에 따른 역기능도 적지 않게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소매부문 경쟁도입의 문제


도매부문의 실질적인 경쟁은 소매시장의 자연스러운 경쟁을 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때 도매부문의 경쟁추이를 관망한 후 소매부문의 경쟁도입시기를 결정하겠다는 정부의 단계적 구조개편 계획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의견이 높다. 앞 뒤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해왔던 관례에 미뤄 진일보한 접근방식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지역배관망 미설치지역에 대한 공급경쟁 도입은 지역배관미설치지역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해서 야기될 혼란이 우려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기본적인 인프라 구축이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조기 경쟁도입은 소비자의 희생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업체간의 중복투자 문제, 경제성 논리를 앞세운 신규사업자의 선별공급, 부실시공의 우려나 안전관리문제 등 경제성과 관련해서 다양한 형태의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부실시공의 경우 아현동 사고와 대구지하철 사고와 같은 대형사고의 위험을 담보하고 있어 더욱 우려되는 부분이다.

구조개편의 당위성에 관련업체 모두 공감하고는 있지만 업계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조속한 도입으로 야기될 문제에 대하여 우려하는 바가 높은 관계로 경쟁도입시기에 대한 조정논의가 활발히 진행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자율경쟁도 중요하지만 가스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되고 경쟁으로 나타날 부작용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는 시점까지는 공급확대나 시설투자 확대가 필요하다는 업계의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량수요처 직공급과 관련해서 아직까지 정부의 구체적인 방안이 발표되지 않고 있다. 다만 현행법상 대량수요처는 월 10만㎥로 규정함에 따라 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도시가스사의 대부분 산업용 및 업무용은 도매사업자에게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도시가스사는 그 동안 확보해온 경영기반 자체의 붕괴가 우려되고 연쇄도산 등의 상황이 발생하게 돼 도시가스사 존립근거마저 의심받게 될지도 모른다. 관련업계에서는 도매부문이 직공급 할 수 있는 대량수요처의 규모로 연간 500만㎥정도를 생각하고 있으며 용도도 산업용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매부문, 자율경쟁체제 도입 필요

20여 년간 지역독점체제로 지속적인 성장기로에 있던 도시가스사의 경쟁도입은 소비자 이익증대와 자율경쟁을 통한 시장기능의 활성화 등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지만 존재자체를 위협하는 급격한 경쟁도입은 재고할 필요가 충분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업계요구대로 소매부문 경쟁도입시기를 마냥 늦출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도시가스업계는 경쟁도입시기를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기본적 인프라 구축이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자구책 강구에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쟁도입으로 어차피 실행할 부분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노력을 지금부터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가스산업구조개편작업에 대한 재고찰 필요

현재 진행중인 가스산업구조개편은 더 늦기 전에 재고 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도입도매부문의 실질적인 경쟁 촉진이 구조개편의 향배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도매부문의 경쟁도입부터 단계적인 절차에 따라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행돼야 뒤이을 소매부문의 경쟁도입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전력산업구조개편과 함께 가스산업구조개편은 국가기간 에너지 산업의 구조개편이라는 점에서 설득력과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당위성만을 내세우며 현실을 무시한 채 진행돼서는 안된다. 따라서 시기나 개편의 강도면에 있어서 산업간의 차이를 고려한 합리적인 방향으로 구조개편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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