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도시가스협회는 11일 리베라호텔에서 '가스산업 선진화 방안에 대한 문제점과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가스산업 선진화 방안과 관련해 가스 도·소매 동시 경쟁 도입방안은 가정용 소비자요금 급등, 특정 대기업에 대한 특혜 지원, 소외지역 등 미공급지역에 대한 가스공급 확대의 어려움 등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가스산업 선진화 방안은 공공부문에 대한 선진화이지, 도입도매부문은 그대로 둔 채 오히려 민간(소매)부문에 대한 경쟁 도입은 선진화의 근본취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먼저 도입도매 부문에 경쟁을 도입해 경쟁의 실익이 확인된 후 순차적으로 소매부문의 경쟁도입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 같은 목소리는 한국도시가스협회(회장 이만득)가 11일 리베라호텔에서 개최한 ‘가스산업 선진화 방안에 대한 문제점과 바람직한 정책방향’ 세미나에서 나온 것이다.

이날 세미나에는 정부(지식경제부, 기획재정부), 소비자단체, 학계회, 언론사, 연구기관, 도시가스회사 및 Shell, BP, 포스코 등 국내외 메이저 등 200여명이 참석해 가스산업 선진화 방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날 세미나는 김기호 도시가스협회 부회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정희용 도시가스협회 팀장이 ‘정부의 가스산업 선진화 방안에 관한 제언’, 김영산 한양대학교 금융경제학부 교수가 ‘가스산업에서 독점적 도매사업자의 소매업 진출에 관한 문제점”이란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이어서 박희천 인하대 교수를 좌장으로 하고 손양훈 인천대 교수, 황선옥 소비자시민모임 이사, 임원혁 KDI 박사가 패널토론을 벌였다.

▲과연 누구를 위한 선진화인가?

정희용 한국도시가스협회 팀장의 주제발표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2015년 신규 발전용 및 산업용 수요처 대상으로 자가소비용 직도입을 확대하는 한편 현재 도시가스회사가 공급하고 있는 대량수요처(대용량 산업체 등)를 대상으로 가스공사(도매사업자), 자가소비용 직도입자(도입도매사업자), 도시가스회사(소매사업자)간 경쟁을 도입하고 소매 사업자간 판매경쟁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희용 팀장은 이같은 방안은 여러 문제점을 야기한다고 조목조목 설명해나갔다. 먼저 도시가스회사는 가스공사로부터 20년간 물량을 공급받도록 장기계약이 체결돼 있어 도입도매부문의 사업참여는 물론, 가스공사 이외의 공급자를 선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대량수요처를 개방할 경우 도입도매부문의 소매부문 진출이 급속도로 진행돼 도입도매사업자는 초과이익 발생이 가능한 우량 수요자만 선별해 공급함으로써 소매사업자의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소비자가격중 도·소매 비중은 약 90:10으로 경쟁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부문은 도입도매부문인데 몸통부문(도입도매)의 실질적 경쟁없이 깃털(소매)만 경쟁시킬 경우 유효경쟁이 불가능해지고 경쟁의 실익도 없다고 강조했다.

도입도매사업자의 소매부문 진출은 공정위가 제시하는 ‘수직적 결합의 경쟁제한성에 대한 심사기준’에 저촉돼 불공정거래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경쟁촉진을 위해서는 용도별(산업용, 가정용 등) 원가가 반영된 요금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한데 도소매경쟁체제에 필요한 원가구조로 개편될 경우 동절기에 수요가 집중되는 가정용은 요금이 급등, 소비자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도입도매사업자는 장래의 시장지배를 목적으로 기존 소매사업자보다 현격히 낮은 가격으로 기존사업자를 압박해 소매사업자는 수익악화로 소외지역 등 미공급지역에 대한 가스공급 중단 및 안전관리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대량수요처에 경쟁체제가 도입될 경우 지방 중소 도시가스사의 연쇄 도산 및 소매도시가스사에 대한 인수합병 확산으로 국내 가스산업 유통체계에 일대 혼란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정희용 팀장은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형식적, 가시적 개혁성과를 위해 가스산업 선진화를 추진한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선진화인가"라고 반문하며 "공공부문의 개혁 없이 정치적 영향력이 없는 민간부문만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가스산업의 경쟁도입 목적은 경쟁을 통한 국내 가스산업의 효율성 제고와 서비스 질 개선을 통한 소비자 후생 극대화에 있다”라며 “경쟁체제에 필요한 교차보조의 해소, 소비자요금 인상, 소외지역에 대한 공급중단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점에 관한 충분한 검토와 도입도매부문의 실질적 경쟁여건 조성 후에 소매시장에 대한 순차적 경쟁체제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마무리했다.

▲도매사업자의 소매업 진출의 문제점

김영산 한양대 교수는 한국자원경제학회를 통해 수행한 연구용역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도입도매부문 소매 진출안은 △도입도매부문의 도입도매 독점 유지 △대량소비자에 대한 소매시장에 도입도매부문 진출 △도시가스회사들과 소매 경쟁이 있다.

이러한 방안의 문제점으로는 원가비중이 높은 도입도매단계의 경쟁을 미루고 비중이 10% 미만인 소매단계의 경쟁을 도입함으로써 낮은 경쟁효과를 유발하고 도입도매부문의 시장지배력이 소매시장으로 전이됨으로써 이윤압착 및 시장봉쇄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도입도매부문이 소매단계의 고정비용을 도매단계로 전가할 경우 보편적 서비스의 의무를 지닌 소매업자들은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고 도매-소매 사이에 범위의 경제가 있을 경우에도 그 효과를 모두 소매단계에 배정하면 유사한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도매 참여가 제한된 소매업자들은 범위의 경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다른 산업의 사례에서 보듯이 독점적 부문과 경쟁적 부문의 수직적 통합이 갖는 경쟁제한적 효과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통합을 제한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통신산업 등 망산업에서 필수설비 등을 보유한 사업체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다.

미국의 통신산업의 경우 지난 96년 미국통신법 개정 이전에는 독점적 지역전화사업자들이 장거리전화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불허했다. 이는 지역전화사업자들이 장거리전화 시장에 진출할 경우 자신이 통제하고 있는 가입자선로라는 필수설비를 이용해 자신의 지역에서 장거리 전화시장을 봉쇄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96년 개정 통신법에서는 지역전화사업자들의 장거리전화 시장 진입을 허용했지만 그 전제조건으로 자신의 지역전화시장을 경쟁으로 전환해야한다는 규정이 추가됐다.

국내의 경쟁제한 판결사례 중 포스코와 포스코아의 합병사례를 보면 지난 2007년 포스코는 자신이 생산하는 전기강판을 이용해 코아를 생산하는 기업인 한국코아를 인수해 포스코아로 개명했다. 공정위는 포스코가 전기강판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코아시장을 봉쇄할 수 있다고 보고 이 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김영산 교수는 “가스산업에서 도입도매부문 경쟁 없이 소매부문만 경쟁을 도입할 경우 시장에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라며 “도입도매부문에 대한 선(先) 경쟁 도입후 경쟁의 효과가 확인되면 소매부문 경쟁체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도소매 동시 경쟁 ‘시기상조’

이날 세미나의 패널토론과 질의응답 시간에서 나온 목소리는 한마디로 도입도매부문에 대한 경쟁 도입 후 경쟁의 효과를 확인한 후 순차적인 소매부문 경쟁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공정경쟁과 유효경쟁이 성립될 수 없다는 얘기다.

임원혁 KDI 박사는 “경쟁 도입이라는 명분 하에 요금규제를 철폐하고 시장의 자유화가 이뤄진다면 과점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이 많다”라며 “먼저 자가소비용 직도입을 확대해 여기서 경쟁의 실익이 있는 지 살펴보고 순차적으로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박사는 또 “직도입사업자가 상황이 맞지 않아 계획대로 직도입을 하지 못하고 가스공사에 물량을 요청하는 경우 직도입사업자에게 패널티를 요구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선옥 소비자시민모임 이사는 “공공부문 선진화의 목적이 시장효율화와 소비자 후생 극대화인데 가스산업 선진화 방안이 실현될 경우 소비자가격의 인상 등의 문제점을 감안해 좀 더 많은 연구와 단계적인 경쟁 도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이사는 “소비자에게 있어 정말 좋은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등 소비자 후생 극대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 검토 후 경쟁 도입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의 선진화 방안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바라지만 도시가스회사도 준비가 안 돼 있는 등 도소매 동시 경쟁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선진화 방안이 공공부문 개혁으로 시작됐는데 도매부문은 손도 대지 않고 경쟁의 실익이 없는 소매부문만 경쟁시킨다면 소매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라며 "가스공사가 일정 물량을 독점하고 있어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고 세계 LNG시장이 판매자 중심으로 전환돼 해외에서 물량확보가 힘든 상황이어서 도입도매분야는 도저히 경쟁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소매시장이 경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편적 서비스 제공이 중요하게 검토돼야 하는 데 도소매 동시 경쟁 도입은 민생과 직결된 소매도시가스사를 흔들면서 주택용 요금 급상승, 가스공급 중단 발생 등 소비자에 대한 보편적 서비스 제공을 침해할 수 있다"라며 "비중이 90%인 도입도매부문에서의 경쟁이 우선시돼야 하고 이 부문에서의 경쟁의 효과가 확인되면 소매부문 경쟁 도입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스공사는 가스산업 선진화 방안이 마치 가스공사와 소매도시가스사간 갈등으로 비쳐질 것을 염려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국가스공사의 한 관계자는 “가스산업 선진화 방안이 왜곡돼 알려지고 있다”라며 “대량 수요처부터 가정용까지 소비자의 공급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도매사업자가 소매사업에 진출해 경쟁하겠다는 개념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스공사와 도시가스사간에 20년 장기계약을 묶여 있어 공급자 선택이 불가하다고 하는데 계약서상에 정부 정책에 변화가 있으면 계약 해지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라며 “영국의 브리티시가스의 가스산업구조개편(先 민영화, 10년 후 소매시장 개방)이 모범사례라고 발표됐는데 브리티시가스는 先 가스산업구조개편 후 민영화로 전환해 실패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희용 도시가스협회 팀장은 “가스공사와의 20년 장기계약에서 정부정책 변화에 따라 해지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계약을 해지하면 도시가스사는 어디서 물량을 공급받을 수 있겠냐”라고 반문하며 “계약해지 조항이 의미는 있지만 비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정 팀장은 또 “10% 미만인 소매시장에서 거대한 가스공사가 경쟁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결국 가스공사가 대량 산업체에 접근하지 않을 수 있겠냐”라며 “좁은 나라에서 경쟁할 게 아니라 넓은 해외시장에서 해외 메이저기업들과 경쟁해 좋은 가격에 LNG를 도입하면 가격인하 효과 등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원혁 KDI 박사도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스공사가 말하는 것처럼 소비자의 공급자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결국 도소매 동시 경쟁 도입을 의미한다”라며 “오히려 규제할 것은 규제하고 해외사업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택수 경남에너지 부사장은 “모든 도시가스사가 무조건 경쟁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도매부문에서 경쟁을 하고 싶어도 해외시장에 물량이 없어 확보할 게 없는 상황인데 과연 공정경쟁과 유효경쟁이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

이 부사장은 “현실적으로 도소매 동시 경쟁 도입은 정부가 불공정 거래를 유도하는 꼴이며 소비자 선택권 보장이라는 명분 하에 특정 대기업의 과점체제를 유발함으로써 지방 중소 도시가스사의 몰락과 소비자가격 상승 등의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라며 “좀 더 많은 연구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도매부문은 독점을 유지하면서 소매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시장설계를 잘못하는 것”이라고 先 도입도매 경쟁도입을 재차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제시된 의견들이 가스산업 선진화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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