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과학자의 경고

茶 한잔 마시며한 기 전 논설위원

지방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돌보고 계시면서 축복의 기도와 함께 부활절 같이 특별한 때면 격려의 엽서를 잊지 않으시는 수녀님이 계시다.

금년 부활절에도 잊지않고 보내주신 그분의 편지내용중 무심코 그냥 지나칠 수 만은 없는 우리 조상님네들의 깊고 따뜻했던 심성을 떠올리게 해 주는 대목이 있어 옮겨 본다.



<…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느낍니다.

괜스레 선한 사람들의 건강이 염려됩니다.

우리 할머니들 처럼…

뜨거운 물을 버릴 때에도 땅속에 있는 미물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랬다. 정말로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뜨거운 물을 버릴 때에도 개미나 지렁이 같은 것들은 물론 이름없는 미생물까지도 염려하는 마음이 있어 물을 공중 높이 흩뿌려 식어가면서 떨어지도록 한다던지 아니면 더운 김이 한 숨 가시도록 잠시 기다렸다가 버릴 정도였다.

이렇게 작은 자연계의 생명체까지도 세심하게 살펴 생각해주던 따뜻하고 알뜰한 마음씨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이웃과의 관계로 까지 번져 내가 아닌 남을 배려하는 미덕으로 연결되곤 했다.

한가지 예로, 한여름 밤 참외나 수박 서리를 하다 들킨 서리꾼들을 좇을 때에도 각박하고 살벌하기 보다는 오히려 푸근한 인정과 여유가 있었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 논두렁 밭두렁을 허겁지겁 도망치다 자칫 넘어져 어디 콧등이나 뼈라도 다칠까 안쓰러워 죽기기를 쓰고 따라가 잡아 족치려 하기 보다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가는 시늉만으로 목청만 크게 돋구며 으름장을 놓거나 호통을 쳐 다시는 그런짓 못하도록 겁이나 잔뜩 주기가 항다반사였다.

그런줄도 모르고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나던 녀석이 다급한 나머지 나무위로 기어올라 몸을 숨기려 하거나 징검다리 조차 없는 개울에 앞길이 막혀 갈팡질팡 할 지경이면 무슨 구실을 찾아서던지 쫓던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를 맴 돌며 몽둥이를 찾는 척 공연한 헛구실을 만들기 일수였다.

행여 나무위에서 떨어지거나 뛰어내리다 다치지 않도록 침착성을 유도하고 폭 넓은 개울을 실족없이 잘 건너갈 짬을 주기위한 깊은 속셈이다.

불과 얼마전 까지만해도 이렇게 내가 아닌 남을 배려하는 심성, 이웃사랑의 마음이 사람마다 흥건하고 그득했다.

잡아서 호된 벌을 주기보다는 예방에 더 중점을 두었다고나 할까… 예방도 달아나는 놈의 안전까지 십분고려하는 여유마저 엿보이는 그런 예방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인심세태는 어떤가, 그게 설사 이웃간이라 할지라도 파출소로 끌고가 고소, 고발에 이르기가 심중 팔구이며 사이가 틀어져 견원지간이 되지 않으면 천만다행일 것이다.

환경오염에 대한 수녀님의 걱정과 미물까지도 살펴 생각할 줄 알았던 우리 조상님들의 마음 씀씀이에 대한 얘기가 이웃과 남을 먼져 아껴주던 얘기로 까지 번져 길어졌지만 환경문제나 안전문제와 결부시켜보더라도 요즘 사람들의 나만아는 버릇, 이기심과 방심, 오만의 정도가 너무 지나친듯 싶다.

인간은 지구의 영원한 주인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세입자일 뿐이라는 어느 과학평론가의 말이 절실하게 들리는 것도 그런 탓이다.

과학의 오·남용과 환경파괴등으로 인류생존에 대한 위협이 커지고 있는 요즘,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그는 경고하고 있다.

서울 공기중 벤젠농도가 울산지역의 평균 1.5배나 된다는 어느 환경연구소의 최근 발표는 이 경고를 더욱 절실하게 한다.

더구나 석유화학공단지역인 울산보다 서울이 발암물질인 벤젠등 유기화합물의 오염도가 더욱 심한 이유가 자동차 연료의 불완전 연소 때문이라니… 네탓 내탓, 누구 나무랄 일만은 아닌듯 싶다.

저작권자 © 투데이에너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