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운명의 덫

눈이 마주치자 침통하게 고개를 떨구는 이경아를 보면서 오승구는 그녀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오늘따라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그녀앞에서 아내의 전화까지 받았으니, 그는 죄책감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오승구는 이경아가 왜 기분이 나쁜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설사 그녀가 말하려고 해도 말하지 못하게 했으리라.

오승구는 이경아의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매일 같이 걸려오는 그놈의 ‘망할 놈의 전화’때문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놈은 스위스 시계처럼 정확하게 때가 되면 하루에 세 번씩 어김없이 전화로 그녀를 괴롭혀 오고 있었다. 그는 마음속에서 죄책감의 그림자가 더욱 길어지는 것을 느꼈다.

건전지가 다 된 장난감처럼 우두커니 앉은 상태에서 두 사람의 사이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이경아였다. 덩달아 우울해 하고 있는 오승구를 바라보며 그녀가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던 것이다.

“이제 괜찮아졌어?”

이경아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다소 안심이 된 오승구는 그녀에게 들키지 않도록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게 한숨을 내뿜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예…. 미안해요.”싫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하는 일체의 나쁜 감정을 오승구에게 표현하지 않고 만난지 일년만에 처음으로 내색한 감정이라 그런지 이경아는 그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미안하긴, 내가 미안하지.”도리어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이경아를 보면서 오승구는 안쓰러움을 느꼈다. 이런 그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그

를 힘겹게 하고 있었다. 자신도 그런데 그녀는 오죽하겠는가.

“이제부터 우리 뭘할까?”

“우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고, 그 다음엔 노래방 가요.”

“노래방?”

“예.”

“그럼, 그럴까?”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연인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자꾸만 힐끗거리는 것이 신경이 쓰였지만 오늘은 진실로 이경아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리라고 생각하면서 오승구는 식어버린 커피를 냉수 마시듯 단숨에 들이켰다.

커피숍에서 나온 두사람이 간 곳은 강남 영동고등학교 건너편 골목 모퉁이에 위치한 하얀색 건물 ‘라에스끼나’라는 스페인 전통 레스토랑이었다.

오승구는 우리 해물돌솥밥과 비슷한 ‘빠에야’라는 음식을 주문했다. 스페인에서 직접 들여온 냄비에 쌀과 콩, 홍합, 새우, 야채를 얹고 뜸을 오래 들여 지은 밥이었다.

그리고 식사후 두사람은 스페인의 대표적 와인 ‘이라체’를 마셨다.

와인 ‘이라체’를 마시면서 이경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언제까지 오승구의 정부로 살 수 있을까…. 그의 은혜를 입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함께 살 수 없다면 불행일 수밖에 없으며, 또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그녀는 항상 그와의 관계가 들통이 날까봐 불안해하고 있었다. 더더구나 ‘외로운 남자’라는 미친 남자의 전화를 받고 나서부

터는 불안이 더 가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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