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박동위 기자]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이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 1위 자리에 올랐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비(非)산유국에서 거둔 성과다. 석유제품이 ‘수출효자’ 품목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정유사들은 고유가의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공공의 적’ 취급을 받고 있다.

이는 국내 석유시장에서 몇 년간 이어온 정유4사들의 독과점 구조 때문에 유통구조가 왜곡되고 국내 가격을 통제하며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기름값 잡기에 본격 나서기 시작했으며 알뜰주유소 등 다양한 정책을 제시했다.

새로운 방식의 공급자와 판매자가 시장에서 가격인하를 선도해 경쟁을 유발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취지에서다.

이에 수년간 꿈적하지 않던 정유사들간 점유율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정부는 석유시장 유통구조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 올해에도 정책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로 했다.

 


▲급변하는 석유시장

국내 석유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지난 5년간 0.5% 내외로 움직이던 정유4사의 시장점유율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그 중심에는 정부의 유류값 인하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기름값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며 알뜰주유소, 석유전자상거래, 석유혼합판매 등 다양한 정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정부가 기름값 인하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정유4사뿐만 아니라 주유소까지 흔들며 국내 석유시장이 재편되고 있는 양상이다.

기름값 인하대책의 첨병은 역시 알뜰주유소다.

전국의 알뜰주유소는 11월말 기준 809개로 전체 주유소의 6%를 초과하고 경유 수입물량이 10%에 이르면서 정유사간 가격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실제로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정유4사의 시장점유율도 2011년 평균 97.7%에서 2012년 10월 기준 93.9%로 3.8%p 떨어졌다.

알뜰주유소는 주변 주유소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뜰주유소의 휘발유 판매가는 전국 평균보다 리터당 25~40원이 싸고 알뜰주유소 주변 반경 3km 이내 평균 휘발유 가격도 전국 평균보다 6.86원이 낮게 나타났다.

시민들도 알뜰주유소가 주변주유소의 가격을 낮추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1월 소비자시민모임에서 발표한 ‘2012년 휘발유 소비자 이용행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의 60.74%가 ‘알뜰주유소가 주변의 가격을 낮춘다’고 응답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알뜰주유소에만 특혜를 주고 있다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뜰주유소는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양상이다. 정유사들 역시 자사폴 브랜드를 달고 있는 주유소를 뺏기지 않기 위해 정유사 직원들이 주유소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기름을 사 달라, 가격도 알뜰주유소와 동일하게 맞춰주겠다”라며 알뜰주유소 시행 이전과는 다른 영업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제5정유사인 삼성토탈을 알뜰주유소 공급사로 참여시켰다. 삼성토탈의 알뜰주유소 휘발유 공급비중도 20%에서 30%로 늘렸으며 알뜰주유소의 확대에 따라 공급비중은 더 늘어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이와 함께 가격결정 구조도 정유사가 일방적으로 설정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전자상거래의 거래 가격이 기준 가격으로 작동하면서 주유소의 대(對)정유사 협상력 제고에도 기여하고 있다.

개장 초 거래가 저조했던 석유전자상거래도 인센티브(할당관세, 수입부과금, 바이오디젤 혼합의무 면제 등) 시행 이후 월평균 거래량이 35배 증가하는 등 활성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석유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 주유소들은 보다 저렴한 가격의 석유제품을 살 수 있어 장기적으로 정유사와 공급계약을 체결할 필요가 없어진다. 반대로 정유사 입장에서는 확실한 공급처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석유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혼합판매 제도도 마련했다. 혼합판매란 특정 정유사의 간판(폴)을 단 주유소라도 다른 정유사의 휘발유를 섞어 팔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정유사간 경쟁이 치열해져 공급가격 인하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정유사·주유소업계 현황

언젠가부터 정유사들은 해외수출기업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대한석유협회에서는 ‘석유제품 수출 1위’를 강조하며 분기마다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정유사 매출의 비중이 해외시장에 높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취지에서다.

정유업계는 정부가 기름값 급등을 정유사들의 독과점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는 것에 대해서 크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정부가 정유사에 대해 기름값 상승의 주범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석유제품이 대표적인 수출산업으로 성장했지만 정부는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보다는 ‘기름값 잡기’에만 급급하고 있다”라며 “국내 정유사들이 품질 경쟁력을 바탕으로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까지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는 도리어 일본 정유사를 키워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수입경유에 인센티브(할당관세, 수입부과금, 바이오디젤 혼합의무 면제 등) 혜택을 준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올초 1%에도 못 미치던 일본산 경유의 시장점유율은 10%대로 증가했다.

기존 주유소업계 역시 정부의 알뜰주유소 확산 정책이 무분별하게 이뤄져 문 닫는 주유소가 늘어나는 등 주유소업계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포화 상태인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새로 주유소를 설치하는 것은 업계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전시행정이라는 것이다.

특히 알뜰주유소만을 대상으로 국민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특혜이자 기존 사업자와의 형평성이 상실됐다는 주장이다.

 


▲정부, 올해도 흔들림없이 지속 추진

정부는 알뜰주유소 등 기름값 인하 대책이 실효성은 없고 시장 질서만 교란하고 있다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결국 정부의 실패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비난도 적지 않다.

실제로 내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예산안 예비보고서에 따르면 알뜰주유소 관련 예산이 기획재정부 심사단계에서 전액 또는 대폭 삭감됐다.

지경위는 알뜰주유소의 가격인하 효과가 사실상 없고 알뜰주유소 정책을 재검토할 수 있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예산 삭감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예비보고서일 뿐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반응도 있지만 알뜰주유소 정책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간의 운영과정에서 확인된 문제점을 보완, 관련 대책을 흔들림없이 지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휘발유 및 경유에 대한 2차 수입입찰을 추진하되 해외 정유사, 트레이딩사와 장기 수입계약을 검토하기로 했다. 알뜰주유소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기존 정유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또한 석유공사와 수입사 공동으로 알뜰주유소 전용 물류체계를 구축하고 대리점이 복수의 주유소를 통합해 알뜰주유소 전환 신청을 할 경우 공동브랜드화를 부여하고 인센티브도 제공하기로 했다.

전자상거래에 대해서도 기존 인센티브(할당관세, 수입부과금, 바이오디젤 혼합의무 면제 등) 혜택을 당분간 유지하고 구입자금 대출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같이 정부는 기름값을 잡기 위해 석유시장 개선 노력을 올해에도 지속적으로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이에 따른 석유시장의 혼란은 당분간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알뜰주유소 등을 통해 복잡한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유가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 정유사들이 도입하는 원유의 원가를 조사해 폭리를 취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고 국제유가의 등락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는 장기적인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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