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인섭 AIG 손해보험 이사
작년 7월1일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된 이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많은 변화를 만나게 된다.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게 되면 입구의 자동문에 “손조심” 이라는 스티커를 접하게 되고 음식의 포장을 요구하면 포장지 한켠에 “음식이 상할 수 있으니 빨리 먹으라”는 경고문을 접하게 된다. 또 하나 햄버거를 먹은지 20분만에 식중독이 발생하여 병원에 가서 치료받은 사람이 패스트푸드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300만원 이라는 거액을 보상받은 사례는 제조물책임법 시행으로 인해 소비자의 법률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조물책임법을 시행한지 아직 1년이 채 안된 시점에서 그에 따른 변화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웃나라의 사례 등을 통해 그 예상되는 효과를 소비자의 행동변화와 기업의 행동변화라는 측면에서 살펴 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와 유사한 법 체계와 사회적 제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은 1995년 7월 1일부터 제조물책임법을 시행하였으며 첫해에 전년 대비 사고 접수 건수가 2배 이상 증가하여 이후 년간 1,000여건 이상의 PL 사고가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으며 법 시행 6년차인 2000년에는 사고 접수건수가 법 시행 이전의 3배에 이르고 있다. 불과 1년 만에 사고 건수가 2배 이상으로 증가하였다는 사실은 PL의 직접적인 발생 원인이 제품의 결함이라기 보다는 고양된 소비자 의식에 기인한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와 일본의 소송 발생건수를 비교해 보면, 일본은 국민 241명당 1명이 민사 또는 행정 소송을 제기한 데 비해, 한국은 국민 52명당 1명이 소송을 제기하여 일본의 5배에 이르는 높은 소송 제기율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향후 PL 소송 또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PL의 중요한 문제로는 지금까지 PL과 그다지 관련이 없었던 부품 및 원재료 제조자와 판매업자에 대해서도 배상책임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향후에 있어서는 PL사고 발생시 상대적으로 대기업에 속하는 완성품 제조자에 대해 배상요구가 집중될 것이며 완성품 제조자는 피해자에 대한 우선적 배상 이후 우회적으로 부품 및 원재료 제조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완성품 제조자는 부품 및 원재료 제조자에게 보험가입등을 통한 배상능력을 검증받고자 할 것이다. 아울러 제조업자 뿐만 아니라 수입업자를 비롯하여 PB(Private Brand)를 판매하는 대형 판매업자들은 제조물책임법에서 “제조업자”로 규정되어 있으며 일반 제품 판매시에도 사고 발생시 제조자를 입증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해당 제품의 유통에 관여한 판매자 등에게도 배상책임을 부과하고 있어 그 여파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PL의 사각지대로 여겨졌던 유통업도 자구책의 일환으로서 제조업과 동일한 입장에서 제품안전을 관리해야 할 것이다.

2002년 7월1일부터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됨으로써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 중 한가지 주목할 부분은 산재보험으로 처리해야 될 부분 중 일부분은 PL소송으로 전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산재사고를 당한 근로자의 연령이 낮을수록 평균임금이 낮아 산재보상액이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발생하여 장해의 정도에 따라 사용자의 책임은 크게 발생하게 된다. 현재는 이 경우 “사용자배상책임보험”을 가입하여 이러한 산재보험에서 보상이 부족한 경우 그 초과부분에 대해 민영보험으로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산재보상으로 처리하는 것을 꺼리는 데다가 PL보험으로 보상을 받게 되면 자신의 사업장에 대한 손해율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경제활동의 두 주체인 소비자와 기업의 두 측면에서 제조물책임법 시행으로 인한 예상되는 변화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제조물책임법이 제조자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는 비용증가로 인식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품질경쟁력과 소비자만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을 고려해 철저하게 대비한다면 지속적인 발전의 밑거름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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