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경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이후경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투데이에너지] 인공지능(AI)은 현재 국가 및 산업 정책과 기업 전략의 중심에 서 있다. 이러한 방향성 아래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AI가 적용될 환경을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고, 그로 인해 사용자는 어떤 이익과 혜택을 얻느냐다.

대형 에너지 산업 현장에서 측정되는 데이터에는 체계적인 오차가 섞여 있고, 공정은 계절과 원자재, 물류 상황, 작업 방식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흔들린다.

이런 환경에서 데이터만으로 학습된 모델은 조건이 조금만 바뀌어도 성능이 저하되고, 그 비용은 기업과 같은 사용자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평가 지표가 왜곡되면 한두 숫자만 개선하고도 성과처럼 보이는 맹점이 생긴다. 총비용, 품질 편차, 피크 전력, 정지 위험을 함께 보정하지 않으면 전사 관점에서는 오히려 손해가 될수 있다. 결국 신뢰할 수 있는 AI는 물리 법칙이 세운 뼈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데이터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AI 모델은 먼저 현상을 지배하는 물리 구조를 담아야 한다. 열수지, 경계조건, 성능 저하 인자 같은 1차 원리를 골격으로 삼고, 그 골격이 설명하지 못하는 빈틈을 학습된 데이터로 보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데이터가 적어도 흔들리지 않고, 새로운 조건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다음 으로 디지털 트윈을 통해 실제 설비 및 공정과 모델을 동기화해 다양한 운전 조건을 가상으로 시험해야 한다. 위험 한계를 넘지 않으면서 비용·품질·환경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고, “어떤 설정이 왜 통하는지”를 사전에 검증할 수 있다.

평가는 내부의 예측 정확도에만 머물지 말고 에너지 원단위, 품질 편차, 환경오염물질 저감처럼 실물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정책과 예산, 현장의 판단이 같은 방향을 본다. 또한 이러한 성과는 결국 산업의 경제적 이익으로 귀결되 어야 한다. AI 적용을 통해 인건비와 투자비 절감, 설계 시간 단축 등으로 환산될 때 비로소 AI를 사용하는 목적이 달성된다.

트렌드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연구 과제에 AI라는 표지를 붙이는 행태는 이제 멈춰야 한다.

10여 년 전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유행하던 시기에는 연구 과제 제목에 ‘스마트’, ‘지능 형’이라는 수식어가 넘쳐났고, 미세먼지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는 관련 연구 과제들이 쏟아졌다. 최근 탄소배출 이슈가 부각되면서는 탄소배출 저감, 수소와 같은 단어들이 연구 과제의 대표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관련 학술대회 발표 제목들을 보면 이런 흐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연구자들도 환경 변화에 맞춘 연구 주제를 제안해야 연구비를 수주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태를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때때로 학문과 산업이 유행어에 끌려다니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AI는 또 하나의 구호나 장식품이 되어서는 안된다. AI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에너지 산업 현장의 복잡하고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도구다. 그리고 모든 도구가 그렇듯, 도구의 본질을 이해하고 올바른 사용법을 익혀야만 가치를 발휘한다. 에너지 산업에서 AI의 올바른 사용법이란, 데이터를 물리 법칙의 틀 안에서 해석하고 실제 공정 환경의 제약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AI를 도입했다”는 구호 보다는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우리의 AI는 현상을 지배하는 물리 법칙을 이해하고 있는가?”, “그 결과가 실제 현장의 원가 절감과 품질 향상이라는 경제적 결과로 도출 되고 있는가?” 진정한 AI 혁신은 알고리즘과 현장 엔지니어의 도메인 지식이 긴밀하게 결합될때 비로소 완성된다. AI라는 포장지가 아니라 물리적 타당성이라는 ‘내실’과 경제적 성과라는 ‘결실’에 집중할 때, AI는 에너지 산업의 지속가 능한 미래를 여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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