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안후중 기자] 미국 켄터키 주가 전기차(EV)와 배터리 산업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며 한국 기업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과거 링컨 대통령, 버번 위스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으로 상징되던 이 지역은 이제 SK온과 포드의 초대형 합작 프로젝트를 필두로 첨단 제조업의 중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켄터키주정부 경제개발청 한국대표처 이훈주 대표를 만나 켄터키가 한국 기업에게 어떤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는지 직접 들어봤다. /편집자 주

SK온-포드 합작 ‘블루오벌SK’, 켄터키 변화의 기폭제
‘비용과 물류’ 두 마리 토끼 잡은 최적의 입지 ‘
무료 원스톱 컨설팅’…주정부가 가장 든든한 파트너
INFAC에서 신성ST까지…켄터키에 부는 ‘K-배터리’ 바람
대한민국과 비슷한 크기인 켄터키주는 미국 남동부 중앙에 위치하며, 오하 이오, 인디애나, 테네시 등 주요 산업 주를 포함한 7개 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 주도는 프랭크퍼트이며, 루이빌과 렉싱턴이 가장 큰 경제 및 문화 중심지 다. 켄터키주의 지리적 위치는 미국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하루 운전 거리 내에 있어 물류 공급망 관리에 있어 최고의 이점을 제공한다.
이 대표는 “켄터키는 전통적으로 인구 대비 제조업 종사자 비율이 매우 높은, 그야말로 ‘제조업의 주(State of Manufacturing)’”라며 “연구소나 소매 기업보다는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는 플랜트, 즉 공장 유치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기술력과 생산 능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과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있다”고 서두를 열었다.

켄터키의 극적인 변화는 SK온과 포드 자동차가 합작한 ‘블루오벌SK(BlueOval SK)’의 탄생에서 시작됐다. 이 대표는 “몇 년 전 SK on과 포드의 약 58억 달러 규모 합작 공장 투자가 확정되었으나, 여러 요인으로 잠시 주춤했다가 올해부터 다시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다”고 현황을 전했다. 블루오벌SK는 켄터키주 글렌데일 지역에 거대한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이는 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 유치 사례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켄터키 주정부의 정책 방향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 다. 켄터키주는 일본과 독일에만 해외 사무소를 운영했지만, 민주당 소속인 앤디 버시어(Andy Beshear) 주지사가 직접 경제개발부 장관 등 사절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해 기업들을 만나는 등 적극 적인 유치 의지를 보인 것이 주효했다.
이 대표는 “하나의 거대한 앵커 기업이 들어오면서, 배터리 전해질, 알루미늄 박막, 리사이클링 업체 등 관련 생태 계가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오는 ‘낙수효 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켄터키에는 도요타, 포드, GM 등 글로벌 3대 자동차 제조사의 대규모 공장이 가동 중이어서 기존 자동차 부품 산업과 새로운 전기차 배터리 산업이 시너지를 내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기업에 있어 입지 선정의 핵심은 비용과 물류다. 이 대표는 켄터키가 이 두 가지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 력을 갖췄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켄 터키는 미국 중동부의 심장부에 위치해, 잘 갖춰진 고속도로망을 통해 하루 안에 미국 전역의 3분의 2에 차량으로 도달할 수 있다”며 “DHL, 아마존, UPS와 같은 글로벌 물류 기업들의 항공 허브가 켄터키에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지리적 이점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비용 경쟁력은 더욱 매력적인 요소다. 동부나 서부 해안 지역은 물론, 최근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조지아주와 비교해도 물가와 인건비가 저렴하다. 이대표는 “공장 운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기, 용수 등 유틸리티 비용이 저렴한 것은 켄터키의 확실한 강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팬데믹 이후 급등한 건설 비용에 대한 기업들의 고충을 언급하며 “한국과 동일한 규모의 공장을 짓는다고 가정할 때, 지금 미국에서는 코로나 이전 대비 3배 이상의 비용이 들지만, 켄터키는 다른 주에 비해 상대적 부담이 덜하다” 고 분석했다. 이미 과밀 상태인 조지아나 텍사스의 대안을 찾는 기업들에게 켄터키와 인근 테네시 주 등이 새로운 선택지로 부상하는 이유다.

켄터키 주정부의 지원은 단순히 세금 감면과 같은 금전적 인센티브에 그치지 않는다. 이 대표는 “투자액과 고용 인원에 비례한 인센티브는 기본이지만, 그것이 기업 유치의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 다”라며, “오히려 기업들이 가장 큰 도움을 받는 부분은 주정부 경제개발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전문 컨설팅 서비스”라고 밝혔다.
기업이 공장을 지을 때, 새로운 부지를 매입하는 ‘그린필드’ 방식과 기존 공장을 리모델링하는 ‘브라운필드’ 방식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이 대표는 “주 정부 부동산팀이 직접 나서서 지역 내모든 매물 정보를 제공하고, 기업의 조건에 맞는 최적의 부지를 함께 찾아준 다”고 말했다. 이는 정보가 부족한 해외 기업에게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서비스다.
특히 기업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환경 관련 인허가(Permit) 문제에서 주정부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는 “공기, 토양, 폐기물 처리 등 복잡한 환경 규제는 기업에 큰 장벽이 될 수 있다”며 “주정부 내환경 전문가가 직접 기업과 소통하며 규제 당국과의 가교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크게 줄이고 인허가 기간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고 설명했다.
인력 수급 문제 또한 주정부가 적극적 으로 나선다. 지역 내 전문 HR 기업은 물론, 커뮤니티 칼리지나 대학과 기업을 직접 연결해 맞춤형 인력을 공급한다.
이 대표는 “인더스트리얼 파크 인근의 전문대학과 협력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교육비의 일부를 주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는 단기적인 인력 채용을 넘어, 기업과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켄터키에 진출한 1호 한국 기업은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인 인팩(INFAC)이 다. 약 10년 전 켄터키에 자리 잡은 인팩은 안정적인 경영과 지역사회와의 깊은 유대를 통해 현지에서 ‘성공적인 외투기 업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SK온의 진출과 함께 배터리 관련 기업들의 켄터키행이 줄을 잇고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생산하는 신성ST, 롯데알미늄, ANP나노소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블루오벌 SK가 위치한 글렌데일이나 엘리자베스 타운, 캠벨스빌 등에 밀집해 산업 클러 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기업인 D사 등도 켄터키를 차기 투자처로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이 대표는 향후 가장 유망한 분야로 전기차 부품과 배터리 리사이클링을 꼽았다. 그는 “모든 자동차 메이커가 전기 차로 전환하면서 폐배터리 재활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며 “폐배터리를 분쇄해 니켈, 코발트 등 유가금속을 추출해 ‘블랙 매스’로 만드는 리사이클링 업체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훈주 대표는 마지막으로 “켄터키는 아직 SMR(소형모듈원전)과 같은 미래 에너지 분야에서는 걸음마 단계지만, 주정부 역시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관련 기업 육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전통 제조업의 강점과 첨단 산업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켄터키는 무한한 잠재 력을 가진 기회의 땅이다. 더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이곳에서 성공 신화를 쓰길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