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이정헌 기자]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15년간의 전력설비와 전원구성을 설계하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을 발표했다. 이번 전기본에는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주요 정책 과제였던 ‘탈원전’과 달리 원자력 발전이 확대됐으며 중점 육성사업이었던 신재생에너지 비중의 증가는 미미했다. 전기본은 전력수급의 안정화는 꾀하는 것은 물론 발전설비 확충과도 직결되는 중장기 청사진이기에 에너지 업계와 환경단체 등 주요 관계자들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또 정권이 이동하며 찾아온 변화로 원전의 위험성을 부각한 입장과 실현 가능성을 고려했다는 정부 측 해명도 대립하고 있다. /편집자 주

■文정부, 9차 전기본에 탈원전·신재생 육성 강조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20년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오는 2034년까지의 전망과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 온실가스 감축 수정 로드맵,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등 8차 계획 이후의 정책환경 변화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안전하고 깨끗한 전원믹스로의 에너지 전환 정책추진, 온실가스 추가감축을 위한 전환부문 이행방안 마련, 저탄소 경제·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가속화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발전설비계획은 원전 및 석탄발전을 감축해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원전은 노후 11기에 대해 수명연장을 금지하고 2020년 당시 23.3GW 규모였던 용량을 순차적으로 축소해 2034년 19.4GW까지 줄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15년간 총 3.9GW를 줄이는 것으로 당시 문 정부의 정책 방향이었던 ‘탈원전’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와 반대로 신재생과 LNG발전은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신재생에너지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과 그린뉴딜 계획 달성을 목표로 당시 20.1GW에서 2034년 77.8GW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었다. 이는 15년간 총 57.7GW를 확대하는 것으로 자연스레 신재생발전의 호황이 점쳐졌다. 

신월성 1호기.
신월성 1호기.

■尹정부, 원전 다시 늘리고 신재생 확대 폭 ‘미미’ 
윤석열 정부는 10차 전기본을 발표하며 수요 변화에 맞춰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해 ‘실현 가능하고 균형 잡힌 전원믹스’를 표방했다고 밝혔다. 이전 계획과 비교했을 때 원전 비율 확대, 신재생에너지 비중 축소가 핵심이다.

탈원전을 제창했던 지난 정부와 달리 ‘친원전’정책을 펼친 것이다. 윤 정부는 2030년 발전량 비중에서 원전을 32.8%까지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원별 설비 비중에서도 원전과 LNG, 신재생을 확대하는 목표를 설정했다.

발전설비도 원전을 2036년까지 12기(10.5GW)의 계속운전과 준공 예정된 원전 6기(8.4GW)를 반영했다. 에너지 안보와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문 정부에서 육성을 추진했던 신재생에너지 비율의 변화는 다소 미온적이었다. 

앞서 실무안에서는 2030년 발전량 비중 전망치를 원전 32.8%, 신재생 21.5%, 석탄 21.2% 등으로 설정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인 지난해 10월 나온 NDC상향안에서 원전 23.9%, 신재생 30.2%, 석탄 21.8%로 설정한 것과 차이가 크다. 

새 정부안도 실무안의 지향성이 그대로 유지됐다. 다만 전력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그 수치는 원전 32.4%, 신재생 21.6%, 석탄 19.7%로 조정됐다. NDC 목표치와 비교하면 원전 비율은 8.5%포인트 올라간 반면 신재생 비율은 8.6%포인트 내려갔다.

정부는 신재생의 ‘합리적 조정’을 강조했다. 태양광 설비 등을 빠르게 늘리기 어려운 데다 발전 비용이 많이 들고 주민 거부감 등이 크다는 이유다. 이호현 산업부 전력혁신정책관은 “2030년 신재생 비중은 매우 도전적인 목표이며, 정부 정책이 후퇴한 건 아니다. 2036년까지 신재생 목표를 달성하면 RE100 이행에도 큰 차질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원전업계 ‘반색’·환경단체 ‘반발’…원전 확대 집중하는 정부 
윤석열 정부는 집권한지 약 2개월 만인 지난해 7월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확대하고 재생에너지 보급 목를 재조정하는 내용이 담긴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직전 정부인 문재인 정부는 2050년까지 점진적 탈원전을 통해 에너지전환을 목표로 했으나 이를 전면 수정한 결과다. 

주무 부처인 산업부는 대국민공청회와 에너지위원회 등 20여차례의 간담회와 토론회를 통해 산업계·학계·시민단체 등 각계 의견을 수렴했다고 강조했으나 일각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는 글로벌 흐름과는 반대 방향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신에너지정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2030년까지 원전 발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담겼다. 원전 확대 주장이 나올 때마다 학계에서 우려했던 고준위방폐물 처분에 관해서는 특별법을 마련하고 컨트롤타워로 국무총리 산하 전담조직을 신설하는 등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원전생태계를 복원해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과 약 4000억원을 투입해 독자 SMR(소형모듈원전) 노형 개발을 추진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SMR은 빨라도 2035년 이후가 돼야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보급 목표를 합리적으로 재정립하고 태양광·풍력 등 원별 적정 비중을 도출할 계획”이라고만 명시했다. 이후 정부가 밝힌 2030년 신재생 발전 비중은 21.5%로 직전 정부 발표 대비 8.7%포인트 줄었다. 이에 환경단체들을 중심으로 원전 확대를 지양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원전 폐기물 처리 방안도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적극 비판했단 여당 의원들 조차 자신의 지역구에 ‘폐기물 저장시설’을 유치하는 방안 논의에는 관대하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신한울 1호기 상업운전을 시작하고 원전 수출도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국회 차원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방안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는 현재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에 보관되고 있으나 이는 한시적 관리로 지속가능한 방안은 아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 경수로 원전본부별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시설 포화도는 고리원전 85.9%, 한울원전 82.5%, 한빛원전 75.7%, 신월성 원전 40%, 새울원전 31.8%다. 2021년 12월 발표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고리·한빛원전은 2031년 저장시설 저장용량이 가득 차게 된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줄인 에너지정책의 후폭풍은 RE100에 가입한 국내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RE100에 가입한 국내 기업은 SK·삼성전자 등을 포함해 26개사다. 이들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내 재생에너지 전력 인프라 확충과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친환경 경제활동 기준인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서도원자력에너지와 달리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는 공을 들이지 않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향후 RE100 가입 기업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재생에너지 수요도 그만큼 증가할 수밖에 없다. 산업부는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우려할 만큼 적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와 전문가들은 국내기업의 원활한 RE100 달성을 돕기 위해서는 태양광·해상풍력을 집중 육성해 재생에너지 생산량을 늘려야 최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는 등 앞으로는 탈탄소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국내기업들의 해외 수출길이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산업부는 재생에너지 정책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하향 조정·태양광과 풍력의 발전량 비율 조정 등을 통해 원자력발전과의 조화를 이룬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RE100에 가입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RE100 기업 얼라이언스’를 구성해 민간주도의 재생에너지 공급기반을 강화하고 RE100 가입기업의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효율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해 민간의 RE100 이행을 지원키로 했다. 

한편 산업부는 국회 상임위원회 보고 과정을 거쳐 전력정책심의회를 통해 10차 전기본을 최종 확정·공고할 예정이다. 이번 10차 계획의 적용 기간은 올해부터 오는 2036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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