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윤서연 기자]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발 빠르게 수소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수소사업발전을 위해 일정기간 동안 일정지역 내에서 기존의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해주는 제도인 ‘규제 샌드박스’와 신사업에 대한 포지티브 규제에 기업들의 애로사항이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소 산업 활성화에 힘쓰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수소경제 현주소는 어디일까. 수소 분야 규제 샌드박스와 이에 따른 포지티브 규제에 대한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대한상공회의소 규제특례시설은 신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기간 동안 일정지역 내에서 기존의 규제를 면제해주거나 유예하는 제도다. 수소분야의 경우 지난 2019년 5월 강릉테크노파크 수소탱크 사고 이후 수소 시설에 대한 안전성 강화 필요성에 따라 합리적인 안전관리 방안을 통한 수소 안전 확보를 위해 마련됐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마련된 제도이지만 기업들은 과한 규제와 샌드박스가 가진 불확실성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현재 샌드박스 절차는 크게 △임시허가 △실증 특례로 구성돼 있다. 임시허가의 경우 제품 및 서비스의 시장출시를 위해 임시 2년(1회 연장)으로 최대 4년간 허가를 부여하는 제도다. 단 연장된 임시허가의 유효기간 내에 법령정비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법령정비가 될 때까지 유효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신청기준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허가 기준, 규격, 요건이 법령에 없는 경우 또는 이미 존재하는 기준, 요건 적용 이 곤란한 경우다. 실증특례의 경우 제품 및 서비스의 안전성 등을 시험·검증하기 위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제도다. 임시허가와 마찬가지로 신제품, 서비스에 대한 허가 기준이 법령에 없거나 기존 법령에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신청 대상이며 다른 법령에 의해 허가 등을 신청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해당된다.

결국 임시허가와 실증특례 모두 최종적으로 법령 개정이 목적이다. 업계는 법령 개정까지 걸리는 시간과 법령 개정이 될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규제 샌드박스에서 현재 수행 중인 35건의 사업 중 법령 개정까지 넘어간 건수는 ‘국회 수소충전소’ 1건이었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임에도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관련 규제가 부재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액화수소 사업이다. 현재 액화수소산업 규제자유 특구로 선정된 강원도에서는 액화수소 관련 제품 에 대한 실증 사업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현재 액화수소 저장용기의 핵심부품인 ‘안전밸브(psv)’의 안전성 검사를 하지 못해 액화수소 제품에 대한 실증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액화수소, 안전밸브 검사 난항

 

현재 액화수소 안전밸브를 제조하는 경우 고압 가스 안전관리법에 따른 상세기준 외에 KGS에서 제정한 ‘액화수소안전밸브 제조의 시설·기술·검사 추가안전기준’을 따라야 한다. KGS 추가안전기준에 따라 액화수소 또는 액화헬륨, 액화네온을 시험 유체로 해 안전밸브 작동성능시험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내·외 액화수소, 액화헬륨 및 액화네온으로 안전밸브 시험이 가능한 검사시설이 없어 KGS의 승인을 받은 액화수소용 안전밸브 제품 확보가 불가능하다. 해외에서 실증을 한다고 해도 시설이 제한적이고 비용도 많이 들어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액화수소 안전밸브는 액화수소를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 들어간다. 따라서 안전밸브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액화수소 산업이 멈추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엄격한 기준에 안전밸브 업계는 KGS에 미국, 유럽의 사례를 들어 액화질소를 활용해 작동성능시험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KGS 관계자는 “안전밸브는 실제 사용환경인 액화수소(-253℃) 또는 액화수소보다 온도가 낮은 액화헬륨(-269℃)으로 작동 확인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액화질소는 온도가 -196℃로 액화수소의 온도 차이가 커 배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사업을 진행하는 업계의 입장은 달랐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KGS 추가안전기준 상 긴급차단밸브(esv)는 액화질소로 검사가 가능하지만 안전밸브(psv)는 액화헬륨으로 검사해야한다”며 “일단 국내에서 액화헬륨으로 검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액화헬륨의 단가가 높아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비용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우선 해외에서 액화헬륨으로 안전밸브 품질검사를 진행해 성공한 사례가 있는지 알려주길 바란다”며 액화헬륨으로 검사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각종 실험 결과 액화질소로 검사한다고 해도 온도 수축량은 얼마 차이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의 추가안전기준안이 해외 인증기준보다 까다로워 제품 개발하는 것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KGS 측은 안전밸브 액화헬륨 시험설비를 2024년 말까지 완성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2023년도에 외국 제품이 국내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보여 국산화 개발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도 크다.

■수소선박, 통합 기준 마련 필요

 

수소 선박의 경우 수소법과 선박안전법이 충돌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법령으로는 배에 탑재된 연료전지 시스템에 대해 해수부와 가스안전공사의 검사를 모두 받아야 한다. 선박 업계는 검사비 이중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액화수소 선박의 경우에는 더 심각하다. 현재 액화수소 생산 및 공급이 불가한 상황이다 보니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액화수소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0년 수소법이 마련되면서 해수부의 수소 선박 잠정 기준이 없어 임시적으로 연료전지 지게차, 드론 등 모빌리티 검사 기준에 따라 선박용 연료 전지 검사 규정을 만들었다. 지난 4월 해수부에서 수소선박 잠정 기준을 마련함에 따라 주관도 해수부로 바뀌어야 하지만 아직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고 있지 않고 있다.

이에 선박 기업 측은 국무조정 실에 해수부와 산업부 간의 검사 절차 조정을 요청한 상태다. 양 부처 간 기준이 상충하고 있는 상황에 통합 기준 마련과 관리 부처를 한 곳에 일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박 업계 관계자는 “법이 쉽게 바뀔 수는 없겠 지만 이미 규제샌드박스 진입 때부터 1년이란 시간을 소요했고 각종 검사 기준 부재로 실증 기간이 오래 걸렸다”며 “수소 선박 건조 시 드는 비용만 4~50억 정도인데 이에 대한 투자도 미미하고 거기에 검사비용까지 이중으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했다. 이어 “정부에서 신사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산업체 현장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주길 바라며 산업부와 해수부 간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이어 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규제 샌드박스 관계자는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 실증까지 진행되는 부분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물론 규제가 부재한 부분에 대해 속도감 있게 진행돼야 한다는 부분은 인지하고 있으며 신기술·신사업 분야가 하루 빨리 출시될 수 있도록 샌드박스에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수소업계가 걱정하는 것은 하나다. 수소분야에 있어 글로벌 경쟁력을 빠르게 선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우려다.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명목 하에 과도한 규제로 신사업이 성장할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전을 확보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 안전성 을 검증할 수 있게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8월 포지티브 규제에서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업 주체인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고 평가한다. 어느 국가보다 수소 분야에 있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국내 수소 경제의 현주소는 어디인지 점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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