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 단장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 단장

탄소중립은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면적으로 시급하게 이뤄야 할 과제이다. 산업화 이후 에너지 공급에서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오던 탄소경제는 재생에너지와 수소에게 자리 를 내어주고 있다.

수소가 가진 장점들을 열거해보면 많은 장점들을 찾을 수 있다. 수소는 거의 무한 하다고 말해도 될 만큼 풍부하게 존재한다.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된 전기를 저장해뒀다가 다시 전기로 바꿔서 쓸 수도 있는 수단이다. 고압 전력망을 구축하는데 치러야 할 사회적 갈등이나 비용 을 감소시켜줄 주요한 분산 전원으로서의 가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수소경제는 수소 활용기술 개발에 집중된데 따르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발전용 연료전지는 터빈 발전과 영역이 중복되는데 반해 효율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 왔고 몇 년 동안은 신규 프로젝트가 없는 상황이다. 가정·건물용 연료전지는 가스요금 급등으로 인해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고전하는 중이다. 한국 수소경제 시대의 포문을 열었던 수소연료전지차는 전기차와 내연기관 이후 승용차 주역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다양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잠시 마중물 역할을 담당한 부생수소의 역할을 대체할 기술은 아직 없다.

합성연료 제조 활용 전과정
합성연료 제조 활용 전과정

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하고 있는 전력생산 부문은 탄소중립 달성에 미치는 파급력을 감안하고 수소산업 생태계의 신속한 구축을 위해 암모니아 혼소 또는 수소 혼소로 전이하고 있다. 발전소에서 쓰이게 될 암모니아와 수소의 양이 워낙 많아 국내에서는 조달할 방법이 마땅치 않고 부득이하게 호주나 중동 등의 국가에서 사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전환은 경제안보 및 에너지안보와 궤를 같이 해야 한다.

1991년 12월26일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이후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평화로운 글로벌화는 다시 신냉전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한국이 쥐었던 꽃놀이 패도 이제는 없어졌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외부로부터의 공급이 차단되는 상황에도 국내 경제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해 세계의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고 그 로 인해 유발된 전반적 경제침체가 그 필요성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여건들은 e-Fuel이라는 새로운 신데렐라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그린수소와 탄소 자원으로 제조한 합성연료인 e-Fuel은 일산화탄소와 수소를 일정한 압력에 반응시켜 탄화수소 혼합물을 제조하는 공정을 거치거나 메탄올에서 합성 가솔린을 제조하는 공정을 통해 생산할 수 있다.

e-Fuel 전주기 도식도
e-Fuel 전주기 도식도

e-Fuel의 가치는 청정수소 대량생산이 아직 멀리 있는 우리에게 희망의 샘이 될 수 있다. 전기차로의 전환에 따라 2035년 이후 내연기관 신차의 판매를 금지하겠다던 EU집행위원회는 e-Fuel을 이용하는 내연기관 차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글로벌 자동차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내연기관 차의 종말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전기차 또는 수소차로 전환을 서두르던 우리에게 기존 자동차의 생태계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친환경성을 보장할 수단이 생겼으니 말이다.

더구나 수소 저장 및 운송 등에 관련된 기술이 아직 성숙단계에 이르지 못한 채로 치열한 탄소중립 기술 경쟁에 내몰릴 기업들에게 EU가 먼저 내연기관의 활동기간을 연장해준다니 말마따나 천우신조라 하겠다.

울산 태성환경연구소가 포집된 CO₂를 활용해 메탄올을 생산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울산 태성환경연구소가 포집된 CO₂를 활용해 메탄올을 생산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울산테크노파크 수소연료전지 실증화센터에는 정말로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온다. 주한 EU국들에서 한국 수소산업의 대표적 현장을 보러오고 영국과 덴마크 및 스웨덴의 지방정부와 펀드가 자국의 기술을 사업화할 만한 기업을 찾는다거나 자국의 자본을 투자할 만한 기술을 찾으려고 온다. 동남아 국가는 선진사례를 보겠다며 온다. 중국과 미국에서도 동향을 살피러 온다. 격변하는 에너지전환의 현장을 체험하고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 조선사, 석유화학제품 제조사가 대대적으로 집결하고 원자력까지도 있으니 반드시 봐야 할 곳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한국의 연료전지 기술 수준 이 높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그들이 연료전지 기술 동향은 묻되 그 분야에서 협력하자고 제안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자기들이 가진 그린수소 제조·저장 및 이송 기술에 대해 협력하자고 한다. 우리의 니즈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호주에서는 비록 취재기자단 일원의 말이기는 했으나 자국의 해군함정으로 호주-한국간 수소 암모니아 수송선을 호위하는 방안은 어떠냐고 물을 정도로 대한(對韓) 수소 판매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수소경제는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그러나 국내 산업의 고도화와 성숙에 기여할 방안도 반드시 준비돼야 할 일이다. 국내산업에 대한 고려 없이 마치 글로벌 NGO나 된 듯이 탄소중립의 필요성과 당위성만 외치고 있어서는 안 된다.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새로운 글로벌 에너지 및 비즈니스 환경에 맞추려면 우리 기업들은 많은 금전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서 버린 국제정치적 상황에서 탄소중립에 관한 어젠다를 가장 앞서서 이끌고 있는 EU가 e-Fuel 활용으로 가는 길을 열어 울고 싶은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줬으니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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