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헌 아주
대학교 국제
대학원 교수

[투데이에너지] 올여름은 유난히 덥고 비도 많이 오고 있다. 엘리뇨 현상으로, 기상이변으로 세계 많은 나라가 홍수와 폭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극한 상황에서 우리를 보호해줄 에너지의 사용이 오히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에너지 시장에 그동안 잠재하고 있던 에너지 수급의 근본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에너지 시스템이 기존의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기 시작함으로써 변동성은 확연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공급의 변동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22년의 에너지 가격폭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마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모든 문제의 배경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러시아의 침공 훨씬 이전부터 에너지 가격은 비등하고 있었으며 침공이 기름을 붇는 역할을 한 정도였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전세계의 에너지 가격 폭등의 시발점이 된 유럽발 에너지 위기는 기상이변이 주 원인이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탈탄소화 정책, 코로나19로부터의 회복에 따른 수요증가가 부수적으로 에너지 수급안보를 약화시킨 결과이다. 

날씨 관련해 2021년 여름과 겨울에 걸쳐 유럽은 바람 가뭄과 이상 한파의 기상이변을 겪었다. 유럽의 지난 10년간의 에너지 소비 추세는 온난화의 영향으로 평균적으로 난방수요는 떨어지고 냉방수요는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2021년 초에서 2022년 초까지 북부 유럽은 풍속의 현저한 감소로 ‘바람 가뭄’을 경험했다. 결과적으로 대규모로 건설한 풍력발전설비가 제대로 전력을 생산하지 못했으며 설상가상으로 동년 겨울에는 한파가 찾아와 난방연료 수요가 급증을 했다.

에너지 가격이 폭발적 상승에 손을 쓸 겨를 조차 없었다. 유럽은 이미 탈화석연료 정책으로 상당수의 석탄발전과 원자력 발전을 조기 폐쇄해 마땅한 대안이 없던 상황이라 에너지 가격의 급등을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에너지 가격에 속수 무책으로 힘든 나날을 지내던 세계 에너지 시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날씨의 도움으로 단기적이긴 하지만 문제 해결의 국면을 맞게 됐다. 2022년-2023년 겨울은 오히려 지난 평균기온을 상회해 전력 수요가 급감했고 또한 바람도 많이 불어 전력공급에 여유가 생기다 보니 우크라이나 사태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가격이 안정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유럽의 에너지 사정은 날씨에 울고 날씨에 웃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구조적으로 유럽의 에너지 공급시스템은 하나도 개선된 것이 없다. 앞으로도 유럽은 이상 기후의 여하에 따라 에너지 가격이 요동치는 사태를 막을 대안이 전혀 없다. 현재의 취약한 유럽의 에너지 시스템은 이상기후에 대한 안일한 혹은 과소평가, 에너지 전환에 대한 조급함, 재생에너지에 대한 이해 부족, 및 에너지 안보 및 위기관리 소홀의 결과로 보인다.

유럽의 에너지 파동의 경우와 같이 우리나라의 소위 ‘에너지 가격 폭탄’은 대부분 우리 통제권 밖에 있는 외생변수에 의해 야기됐을 뿐 우리의 내부적 문제가 주 원인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에너지 문제에 대응을 잘 해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유럽과 같이 우리도 에너지 안보 시스템을 크게 약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화석에너지 자원이 거의 전무해 거의 모든 화석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재생에너지를 하기에는 비좁은 국토와 부족한 일조량, 풍량이 풍부한 입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라에서 탈원전 정책을 시행한 것은 에너지 안보 체제를 크게 약화시킨 것이다.

그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에너지 정책의 이행은 1973년의 제1차 석유위기, 1980년의 제2차 석유 위기, 및 2009년-2010년의 고유가 위기에서 원자력발전소의 건설, 에너지 절약 기술의 개발 보급, 에너지 공급선의 다변화등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업화 과정에서 원활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가격정책으로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산업화가 완성 단계에 다달은 현재도 정부는 산업화 시대의 에너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해 에너지 가격의 안정화(낮은 가격유지)에 주력하고 있다. 그 결과 에너지 소비는 꾸준히 늘고, 에너지 다소비 산업을 주력 산업으로 하는 경제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에너지 부문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날씨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에 정부가 대처할 능력도 필요도 없어 보인다.

지난 봄 지속적으로 신문지상에 보도된 ‘난방비 폭탄’도 일정부분 지난 정책에 책임이 있다. 물론 난방비 폭탄의 직접적이고 가장 중요한 원인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은 여러 요인에 있으며 이러한 요인들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기상이변, 러시아의 침공 등의 변수들을 누가 미리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만약 우리의 에너지 공급구조가 에너지 안보측면에서 좀더 내실 있고 견고했더라면 하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탈원전보다는 원전의 확대를 추진 했어야 했고, 에너지 가격을 시장에 맡겨서 소비자가 합리적인 결정을 하게 했으면 전체적인 에너지 소비도 줄고 지금보다는 훨씬 충격이 약했을 것이다. 정부가 만약 많은 의사결정을 민간에 맡겼더라면 좀 더 나은 대응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상기후는 변수가 아닌 상수이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향후 수십년 이상 지속될 것이다. 지금까지 보다는 앞으로의 에너지 위기가 더 심각할 수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미래지향적인 정부의 역할을 포함한 에너지 산업의 발전적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포석의 논의가 더욱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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