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 김태환 연구위원

▲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 김태환 연구위원

 [투데이에너지] 석유는 우리 경제에 매우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석유소비량은 하루 285.5백만배럴로 이는 세계 7위 규모이고, 국내 석유제품의 수출금액은 한화로 약 80조원에 이르며 단일품목으로는 반도체(164조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필요한 원유를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석유의 가격은 국내 실물경제뿐 아니라 금융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경제는 국제 석유시장의 시황과 석유가격 변동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단체 하마스는 현지 시간 오전 6시30분경 이스라엘 남부를 향해 수천 발 이상의 로켓을 발사하는 등 육해공을 통해 이스라엘 영토를 침투했다.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은 2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고 미 정부는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틀 만에 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논평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하마스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즉각 전쟁 준비 태세를 선포하며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했고 ‘하마스 없는 새로운 안보체제 구축’을 위해 가자지구로의 지상군 투입 뜻을 밝혔다.

2015년 이후 국제 유가는 5년 넘는 기간 동안 안정적인 밴드 안에서 움직여 왔다($60-75/b). 그러나 최근 3년간의 국제 석유시장에는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다. 2020년 현대인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에 의한 유가 대폭락($14/b), 2021년 ‘글로벌 공급망 대란’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상승 랠리($86/b), 2022년 ‘러-우 전쟁’으로 인한 화석에너지 시장 급변 사태($128/b)까지 러-우 사태에 의한 유가의 공포 프리미엄이 올해 소멸되는가 싶었더니 금번 ‘이-팔 전쟁’은 세계 석유시장을 판도를 다시금 뒤흔들고 있다.

이번 이-팔 전쟁이 국제 석유시장에 끼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사태의 직접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세계 시장에 원유를 수출하는 산유국(단체)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스라엘이 동지중해에 가스전을 개발했고 올해 2월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자국산 콘덴세이트(초경질원유)를 수출한 바 있으나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양은 극히 미미하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필요한 원유를 아랍(중동)산유국이 아닌 셰브런, 엑손모빌 등 미국기업이 합작·투자해 원유를 생산하는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 등으로부터 수입한다. 10월 초 이-팔 사태 직후 국제 유가가 급등한 것은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에 따른 수급 차질 우려에 관한 시장 반응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이번 사태가 악화돼 중동전쟁 등으로 확산될 경우 글로벌 원유공급 차질과 국내 원유도입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미국·유럽 등 서방국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고 이란·사우디 등 아랍 국가는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했다. 

1973년 4차 중동전쟁 당시 아랍 산유국들은 ‘석유 무기화’ 정책을 펼쳤고 OPEC의 감산 규모는 약 25% 수준으로 기록돼 있다(1차 오일쇼크, 유가 약 4배 증가). 또한 1978년 ‘이란 혁명’은 세계 공급량의 약 10%를 감소시켰다(2차 오일쇼크, 유가 약 3배 증가). 

이번 이-팔 사태가 과거 1·2차 오일쇼크처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산유국의 ‘수출 제한 조치’ 등으로 이어진다면 현재 국내 원유도입 물량의 72%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아가 하마스를 직접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경우,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 인도 등으로의 원유 수송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로서 상기 ‘중동전쟁 확전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이유는 우선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의 원유 수출 물량은 거의 대부분 중국으로 향하고 있어 이란이 수출 제한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행정부와 이란 간의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시국에 이란으로써는 미국을 다시 자극함으로써 얻는 실익이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UAE-이스라엘의 관계는 ‘아브라함 협정’ 체결 이후 양국에 대사관을 설치할 정도로 개선됐으며 사우디 역시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추진하던 상황에서 이스라엘에 대해 과거 급진적인 입장으로 다시금 회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우디는 이슬람의 성지로 불리우는 메카와 메디나를 품고 있기에 표면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게 이해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왕정 체제를 유지하는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에게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하마스는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이외에도 시리아는 아직까지도 내전을 겪고 있으며 이집트는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부채위기에 빠져있고 레바논은 정치·경제적 불안정 등으로 IMF 구제금융을 요청한 상황이며 요르단은 중동전쟁 이후 전통적인 친미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유가 변동성에 큰 영향을 받는 만큼 안심은 금물이다. 어찌 됐던 이-팔 사태가 국제 석유시장의 단기 변동성을 확대시킨 점에는 이견이 없다. 더욱이 경기 둔화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작금의 상황이 반가울 리도 없다. 

정부는 올해 편성된 예산의 2/3을 이미 상반기에 집행했고 내년도 예산 증가폭은 역대 최저인 2.8%로 편성한 상황이다. 또한 한미 기준금리의 차이가 역사상 최대치(2%)를 기록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먼저 완화적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번 동절기 실효적인 경기 부양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만약 국제 유가가 또다시 가파르게 올라간다면 국민경제가 체감하는 충격은 예상보다 더 클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이-팔 사태의 전개 과정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국내 에너지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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