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시추 현장/한국석유공사 제공
석유 시추 현장/한국석유공사 제공

 

[투데이에너지 신영균 기자] 국제유가를 전망하는 일은 어렵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국제유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새해 국제유가를 전망하는 것 역시 어려우나 2024년에는 공급과잉에 따라 국제유가가 배럴당 83달러로 2023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편집자 주

■글로벌 경제 펀더멘털이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국제유가에 더 큰 영향

다양한 변수가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국제유가는 90달러 수준까지 상승했다. 당시 중동 정세가 불안정한 형국이라 국제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2개월 후 WTI(서부 텍사스산 중질유) 가격은 배럴당 68.61달러로 급락하며 최저치를 기록했다. 세계 최대 원유 소비국인 중국의 경기 부진과 미국의 소비 둔화로 원유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관측이 중동 리스크를 누르고 유가를 끌어내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의 펀더멘털이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국제유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또한 미국의 원유 생산량 증산 등 에너지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 역시 국제유가의 변동성을 완화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23년 석유수출국기구인 OPEC과 주요 산유국 모임인 OPEC+가 2024년 1분기까지 하루 220만배럴 규모의 자발적 감산에 합의했다.

사우디가 100만배럴, 러시아는 30만배럴에서 50만배럴로 감산 규모를 확대했다. 2023년 9월 초만 해도 산유국들의 감산 조치는 시장에 공급 우려를 불러왔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까지 발발했으나 국제유가는 하락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11월30일 기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2024년 1월 인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2.4% 하락한 배럴당 75.96달러였다. 런던 ICE 선물 거래소에서도 2024년 1월 인도 브렌트유 선물이 전날 대비 2.4% 내린 80.86달러로 거래됐다.

 

원유 수송선/투데이에너지
원유 수송선/투데이에너지

 

■석유시장 심리 여전히 부정적

국제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선 원인은 산유국들의 입장 차이가 컸기 때문이었다. 나이지리아와 앙골라 등 아프리카 산유국들은 생산 할당량 축소에 반발했고 아랍에미리트(UAE)는 추가 감산에 소극적이었다. 아랍에미리트는 감산 목표인 일일 307만배럴을 초과한 325만배럴을 생산했고 이라크와 쿠웨이트도 목표량을 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OPEC+에 신규 가입한 브라질은 오히려 증산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미국이 석유 생산량을 늘린 것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2023년 9월 미국의 하루 석유 생산량은 전월 대비 22만4,000배럴 증가한 1,324만배럴이었다. 당시 미국은 전월 역대 석유 생산량 최고치를 기록했었다. 미국은 이 기록을 한 달 만에 또 경신해버렸다.

한편 OPEC+ 내에서 생산 할당량을 둘러싼 회원국 간의 이견은 예상보다 큰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석유 시장의 심리는 여전히 부정적이며 2024년 1분기에도 공급 초과가 예상되고 국제유가는 추가적인 하락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올해 미국 대선, 국제 유가에 영향

2023년처럼 OPEC+의 추가 감산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거나 이란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경우 2024년 원유 공급과잉 현상은 더욱 확대될 수가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두바이유 기준으로 2024년 유가는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한 평균 84.8 달러, 하반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7.4% 하락한 81.2달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연평균으로는 83.0달러로 2023년과 유사할 것이라는 전망치도 나왔다.

2024년 상반기 유가가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은 전쟁 확산 등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가 유가 변동의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새해 국제유가를 전망하면서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미국 대선이다. 미국 대선에서는 유가가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여론을 의식하고 유가를 낮추기 위해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에너지 기업들의 투자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인터넷 미디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남부 퍼미안 셰일 분지에 대한 투자를 늘려 2024년 미국의 하루 평균 산유량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의 산유량이 늘어나면 사우디는 가격통제력뿐 아니라 시장점유율까지 상실할 수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사우디가 2024년 상반기에 감산을 중단하고 2014년과 2020년처럼 공급 확대를 통해 점유율 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국제유가는 하방 압력을 받아 하락할 수밖에 없다. 반면 중동지역의 여러 위험 요소들로 인해 2024년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단 전망도 나왔다. 2023년 말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2024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70~100달러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육상 석유 비축시설/한국석유공사 제공
육상 석유 비축시설/한국석유공사 제공

 

■OPEC 원유 공급 비중 55%에서 35% 수준으로 줄어

중동 정세가 국제 유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과거에 비해 중동의 석유 공급 비중이 줄었다는 것이 반론의 근거다. 미국의 스태크플레이션 위기를 촉발한 1970~1980년대 OPEC의 전세계 원유 공급 비중은 55%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35% 정도 수준이다. 전반적으로 2024년 국제유가는 공급과잉과 수요 우려 속에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새로운 정유소 가동도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인도, 멕시코, 중동, 나이지리아에서 하루 100만배럴 이상의 새로운 정유 용량이 가동되며 정유 제품 공급 부족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럴 경우 석유제품 가격의 V자 반등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제유가는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2024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세계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2023년과 유사한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2023년은 고금리, 고물가에 따른 각국의 가파른 긴축적 통화정책에도 2% 후반대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2024년 올해도 지난해와 유사한 수준의 경기둔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하반기부터 완연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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