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로잔연방공대와 일본 교토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두 가지 단순 화합물을 혼합해, 상온에서 안정적인 수소 고함량 액체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EPFL 제공
스위스 로잔연방공대와 일본 교토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두 가지 단순 화합물을 혼합해, 상온에서 안정적인 수소 고함량 액체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EPFL 제공

[투데이에너지 이상석 기자] 수소의 저장과 운송을 획기적으로 단순화할 수 있는 새로운 액상 수소 매개체가 개발됐다. 스위스 로잔연방공대(EPFL)와 일본 교토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두 가지 단순 화합물을 혼합해, 상온에서 안정적인 수소 고함량 액체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를 통해 발표했다.

수소는 미래 청정에너지의 핵심 연료로 주목받지만,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한 저장과 운송 방식은 여전히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다. 대부분의 수소 고함량 물질은 상온에서는 고체 상태에 머물거나, 극한의 고압·저온 조건에서만 액화가 가능해 저장과 취급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특히 대표적인 고체 수소저장재인 암모니아 보레인은 높은 수소 저장 밀도를 갖고 있지만, 수소를 방출하려면 고온 가열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불순물이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중 주목받는 분야가 바로 심층 공융 용매(Deep Eutectic Solvents, DES) 기술이다. DES는 개별 성분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녹는 혼합물로, 고체 수소저장재를 상온에서 액화시켜 취급과 활용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수소함량이 높은 ‘수소화물(hydride)’ 성분을 기반으로 한 DES는 개발되지 못했다.

이에 EPFL의 안드레아스 취텔 교수와 교토대 호리케 사토시 교수 공동 연구팀은 최초로 수소화물을 활용한 DES 개발에 성공했다. 이 액체는 투명하고 안정적인 성질을 가지며, 상온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며 질량 대비 6.9%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어, 미국 에너지부(DOE)가 제시한 2025년 수소 저장 목표 비율를 상회하는 성능을 기록했다.

연구팀은 암모니아 보레인(AB)과 테트라뷰틸암모늄 보로하이드라이드(TBABH)를 다양한 비율로 혼합해, 상온에서도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조합을 탐색했다. 그 결과, AB를 50~80% 비율로 섞었을 때 결정화되지 않고 비정질 상태를 유지하는 안정적인 액체가 형성되는 것을 확인했다.

분광 분석 결과, 두 분자 간 강한 수소 결합이 형성되며 기존 고체 구조가 깨져 액화돼 이 상태는 영하 50℃에서도 유지됐고, 가열 시 60℃에서 순수 수소를 방출해 기존 고체 저장재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수소 추출이 가능해졌다.

특히 이 액체는 적절한 상태로 보관할 경우 수 주간 안정성을 유지하며, 유사한 용매 대비 낮은 밀도 특성도 갖췄다. 수소 방출 과정에서 주로 암모니아 보레인 성분이 분해되고, 나머지 성분은 재사용 가능해 실용성과 경제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연구진은 이 새로운 DES가 고압 저장탱크나 극저온 액체에 의존하던 기존 수소 저장·운송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온에서도 안정적이며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수소 액체 운반체로서 산업적 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다.

또한 이번 기술은 수소 저장을 넘어, 화학 공정, 친환경 에너지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맞춤형 액체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수소 연구와 실용적 에너지 기술 모두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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