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바야흐로 인공지능(AI)의 시대다. 오랜 기간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던 AI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로 큰 충격을 준 지 불과 9년 만에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AI 기술의 발전은 엄청난 전력 소비를 동반한다. 그와 동시에 AI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AI가 전력 사용을 크게 늘리면서도 동시에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균형 잡힌 관점으로 AI의 전력 수요를 충족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대규모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컴퓨팅은 상당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초거대 AI 서비스인 챗GPT는 단일 질의에 기존 검색의 10배에 가까운 약 2.9Wh의 전력을 소모하며, AI 모델을 한 번 훈련할 때 100가구의 연간 전력 사용량 이상이 소요된다는 추산도 있다. AI 열풍으로 글로벌 데이터센터들의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연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이미 400TWh를 넘어 프랑스 전체 전력 소비량에 필적한다.
한편 AI 기술은 에너지 절약과 탄소 감축의 도구로서도 큰 잠재력을 지닌다. AI 기반 스마트 그리드로 전력 공급과 수요를 실시간으로 최적화하고, 재생에너지 출력 변동에도 예측 기법으로 대응할 수 있다. 구글은 자사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에 딥마인드의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도입해 에너지 사용량을 40%까지 감축하기도 했다. 나아가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AI 기반 효율화로 203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5~10%를 감축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이렇듯 AI 기술은 전기 먹는 하마이면서 동시에 에너지 절약의 해결사라는 모순적인 면모를 지닌다. 한쪽에서는 AI 서비스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증설과 전력 수요 폭증이 전력망 부담 및 탄소 배출 증가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AI 확대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데이터센터 관련 탄소 배출이 최근 몇 년 사이 각각 30%, 5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AI로 산업과 일상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 전력 소비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즉, AI는 에너지 부문의 양날의 검으로, 전력 소비 증가라는 부작용을 다시 AI로 상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AI 혁신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국가 경제와 미래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AI가 가져올 생산성 향상과 신산업 창출 편익은 막대할 것이며, 에너지 공급 문제로 제때 혁신하지 못한다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미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AI 분야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으며, 제조·금융·의료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AI는 필수 기술로 부상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AI가 창출하는 가치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그에 따른 에너지 부하를 감당할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고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전력 공급을 확보하는 일이다.
현재 한국에서 AI 산업을 뒷받침할 지속 가능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경쟁국들에 비해 발전 환경이 좋지 않아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며, 인구와 데이터센터 등 전력 소비가 큰 시설들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송전망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력 공급이 여유 있는 지역으로 데이터센터를 분산시키기 위한 유인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AI 산업의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송전망을 포함한 인프라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또한 가스발전을 무조건 배제하기 말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대안으로 검토해야 하며, 조화로운 전력 공급 시스템 내에서 에너지 효율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AI 시대의 딜레마를 오히려 혁신과 성장의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