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박명종 기자]  한국과 미국이 지난 10월 29일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무역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하며 자동차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자동차 산업계는 일본·EU와 동등한 경쟁 여건을 확보했다며 환영했지만, 그 이면에는 국민건강과 직결된 중대한 과제가 숨어 있다.

미국산 에너지 1000억 달러, 환경 딜레마 시작되나

이번 협상에서 한국은 향후 4년간 미국산 에너지를 1000억 달러 규모로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연간 250억 달러로, 지난해 미국산 에너지 수입액 232억 달러 대비 18억 달러가 증가한 수준이다. 

정부는 "통상적 수입 규모이며 중동산 일부를 미국산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환경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환철 교수는 "미국산 LNG와 원유 수입 증가는 화석연료 의존도를 높이고,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대기오염 물질이 국민 건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미세먼지는 호흡기를 통해 체내에 들어와 심혈관질환, 호흡기질환, 폐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며, PM2.5 농도가 10㎍/㎥ 증가할 때마다 입원율이 3.1%, 사망률은 2.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동차와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1차 오염물질과 대기 중 반응으로 생성된 2차 오염물질이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이다. 국내 미세먼지 농도는 WHO 권고기준 10㎍/㎥의 2배 이상으로,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에너지 안보와 국민건강, 균형 잡힌 접근 필요

정부는 이번 협상으로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중동·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을 전략적 공급처로 확보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미국은 고품질 경질유와 셰일가스 기반 LPG·LNG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그러나 에너지 안보와 국민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는 보다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이종훈 박사는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동시에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고 대기오염 저감 기술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래차 전환, 대기환경 개선의 돌파구 될까

이번 무역협상과 함께 자동차 업계는 미래차 전환을 통한 산업 혁신을 약속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전동화, 자율주행, 커넥티비티 등에 대한 국내 투자를 확대해 미래차 산업 혁신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 차량의 확대는 내연기관 차량이 배출하는 대기오염 물질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수도권 자동차 배출 미세먼지가 전체의 약 30%를 차지하는 만큼, 전기차 보급 확대는 대기 질 개선에 직접적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기차 생산과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 전력 생산의 에너지원 구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카이스트 환경공학과 박준홍 교수는 "전기차 전환만으로는 부족하며,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생산 확대가 동반되어야 진정한 친환경 전환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통합적 정책 설계 시급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에 따른 대기환경 영향 평가를 실시하고,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임산부, 영유아, 어린이, 노인, 호흡기·심혈관 질환자 등 미세먼지 취약계층에 대한 건강 보호 대책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이들 민감군은 미세먼지 노출 시 건강 영향을 받기 쉬우며, 특히 임산부가 흡입한 미세먼지는 태아의 성장·발달과 조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민환경연구소 백명수 소장은 "무역협상의 경제적 성과 못지않게 국민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라며 "에너지 안보와 국민 건강을 동시에 지키는 통합적 정책 설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자동차 업계는 정부의 전동화 전환 지원, 내수 활성화 및 부품생태계 기반 강화를 위한 지속적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이번 무역협상 타결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더불어 국민 건강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정부의 후속 조치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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