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박명종 기자]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급진적인 친환경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에티오피아가 세계 최초로 내연기관 자동차 수입을 전면 금지하며 전기차 전환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환경 정책을 넘어 경제적 생존전략이자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적 선택으로 분석된다.

경제적 압박이 낳은 파격적 결단
에티오피아의 전기차 전환 정책은 경제적 위기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초 국제 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에너지 수입국인 에티오피아는 심각한 외환 위기에 직면했다. 정부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가솔린차와 디젤차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극단적 조치를 택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도 시도하지 않았던 파격적 정책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점진적 전환을 추진하는 가운데, 에티오피아는 '올 오어 낫싱'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현재 에티오피아에는 매월 10만 대 이상의 전기차가 수입되고 있으며, 정부는 10년 내 전기차 보유량을 50만 대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의 기회...아프리카 전기차 시장 선점
에티오피아의 급진적 정책 전환은 중국 전기차 업계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BYD를 필두로 한 중국 업체들이 아프리카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에티오피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광저우자동차그룹(GAC)의 에티오피아 진출 발표는 이러한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젤레케 테메스겐 에티오피아 투자위원회 커미셔너가 중국 기업들에게 현지 공장 설립을 직접 요청한 것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에티오피아에는 이미 중국과의 합작으로 전기 미니버스, 버스, 스쿠터 등을 생산하는 시설들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무게 15kg의 전기 스쿠터는 1회 충전으로 30km 주행이 가능해 교통체증이 심한 아디스아바바의 대안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인프라의 벽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야심찬 계획에는 현실적 한계가 명확히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전력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이다. 인구 500만 명이 넘는 수도 아디스아바바조차 전력 공급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전국적 전기차 보급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전기차 수리점이 전국에 두세 곳에 불과하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로 인해 수리비용이 과도하게 책정되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현지 취재에서도 아디스아바바 도로에서 전기차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은 정책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전력 정책의 딜레마: 르네상스댐의 역설
에티오피아 정부는 최근 완공한 르네상스댐(GERD)을 전기차 정책의 뒷받침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전력 생산량 자체보다는 송배전 인프라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도시 지역을 제외한 지방의 60% 이상이 여전히 전기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은 요원해 보인다.
이는 에티오피아가 직면한 근본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전기차 전환을 통해 외화를 절약하려 하지만, 그를 위해서는 막대한 인프라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에티오피아의 전기차 전환 정책, 전셰계 주목
에티오피아의 전기차 전환 정책은 개발도상국의 급진적 친환경 정책 실험으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성공할 경우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성급한 정책 전환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위험도 크다.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도시 지역의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고, 정비 시설을 늘려 소비자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 또한 대중교통 수단의 전기차 전환을 통해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 능력 구축이 관건이다. 현대차와의 협력 무산 사례에서 보듯, 단순한 수입 의존에서 벗어나 자체 생산 역량을 갖춰야 지속가능한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실험은 아직 초기 단계다. 하지만 이미 글로벌 전기차 업계에 새로운 시장을 제공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대륙의 친환경 전환에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향후 2-3년이 이 정책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