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도시가스 산업은 ‘도시가스사업법’에 따라 권역별 독점 공급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도시가스 산업은 ‘도시가스사업법’에 따라 권역별 독점 공급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도시가스 공급망은 전통적으로 지역 독점 구조를 기반으로 운영돼 왔다. 그러나 에너지 시장 개방과 분산형 에너지 확대 흐름 속에서, 배관망 중립(Neutrality)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TPA(Third Party Access, 제3자 배관망 이용)와 ODS(Open Distribution System, 개방형 배관망 운영체계)가 주목받고 있다.

TPA는 배관망 소유자와 관계없이 제3자가 합리적·비차별적으로 배관망에 접근해 가스를 수송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전력산업의 송전망 개방과 유사한 개념으로, 도입시 공급사업자 간 경쟁 촉진, 도매·소매 시장 다변화, 가격 경쟁력 확보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ODS는 더 나아가 배관망 운영 자체를 중립적·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개방형 배관망 운영체계를 의미한다. 단순히 접근을 허용하는 수준을 넘어, 배관망 운영권과 공급권을 분리해 독립된 운영자가 모든 사업자에게 동등한 조건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 해외 사례: TPA·ODS의 상용화

유럽연합(EU)의 독일, 네덜란드, 영국은 TPA와 ODS를 병행해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가스 시장 자유화를 위해 2000년대 초부터 TPA를 법제화했고, 독일·네덜란드·영국 등은 배관망 운영과 소매공급을 완전히 분리했다. 배관망 운영과 소매공급을 완전히 분리하고, 독립 규제기관이 요금과 접속 조건을 심사한다. 그 결과 소매가스 가격이 평균 5~15% 인하됐고, 바이오가스와 수소 혼입 비율이 확대됐다.

독일의 경우 연방네트워크청(BNetzA)이 배관망 접속 조건과 수수료를 규제하며, 시장진입 장벽을 최소화했다. 독일은 가스 시장 자유화 과정에서 연방네트워크청(BNetzA ·Bundesnetzagentur)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이 기관은 배관망 운영자가 제3자에게 가스를 수송할 때 적용되는 접속 조건과 수수료를 직접 규제해 왔으며, 이를 통해 불합리한 차별이나 과도한 비용 부과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BNetzA는 모든 사업자가 동일한 조건으로 배관망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접속 절차의 투명성 확보 △이용 가능 용량 공개 △표준 계약서 도입 △요금 산정 방식의 명문화 등을 의무화했다. 예를 들어, 가스 수송 수수료는 거리·용량·압력 등 객관적 요소에 따라 계산되며, 운영자가 임의로 책정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 구조 덕분에 독일의 가스 시장은 신규 사업자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 중소 에너지 기업이나 재생가스 생산업체도 대형 배관망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장 경쟁이 촉진되고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독일의 사례가 “배관망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독립 규제기관이 공정한 요금·접속 조건을 관리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영국의 ‘내셔널 그리드 가스(National Grid Gas)’는 전형적인 ODS(개방형 배관망 운영체계) 모델을 구현한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국가 차원에서 배관망 운영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며, 특정 공급사나 연료원에 종속되지 않는 완전 중립적 운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네트워크가 단순히 천연가스 수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소와 바이오메탄 같은 재생가스도 기존 천연가스와 동일한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송할 수 있도록 설계·운영되고 있다. 이를 위해 내셔널 그리드 가스는 연료 혼입 비율을 관리하고, 배관 재질·압력·성분 변화에 따른 안전성과 효율성을 검증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개방형 운영 덕분에 영국의 재생가스 시장 점유율은 이미 10%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는 단순한 통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재생가스가 국가 배관망을 통해 안정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구조를 확보했다는 것은, 향후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재생가스 공급 확대와 수소경제 진입을 가속화할 수 있는 핵심 기반이 마련됐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영국 모델이 “가스 인프라를 단일 연료망에서 다에너지 플랫폼으로 진화시키는 최적의 예”라고 평가한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일부 주(州)에서 TPA 중심의 제도를 적극 운영하고 있다. 발전사나 대규모 산업체가 기존 도시가스 배관망에 직접 접속해 필요한 가스를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천연가스 거래량을 크게 늘리고 공급자 구성을 다변화했다. 특히 발전 부문에서는 대형 전력회사가 LNG 직도입 계약을 체결한 뒤, 주(州) 내 배관망을 통해 직접 연료를 공급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기존 지역 독점 구조에서 벗어나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장기적으로는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반면 일본은 2017년 도시가스 소매 자유화를 시행하면서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TPA를 허용했지만, 아직은 제도 도입 초기 단계다. 도쿄, 오사카 등 대규모 수요지에서는 일부 산업체와 신규 사업자가 배관망에 접근해 직도입을 시도하고 있으나, 기존 사업자의 인프라 의존도가 여전히 높아 가격 경쟁력 개선 효과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우 배관망 운영권과 소매 공급권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점, 그리고 규제기관의 요금·접속 조건 관리가 충분히 정착되지 않은 점이 시장 활성화를 더디게 하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 국내 적용 가능성과 과제

한국의 도시가스 산업은 ‘도시가스사업법’에 따라 권역별 독점 공급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TPA 도입 시, 산업단지·발전사·대규모 수요자가 직접 배관망을 통해 천연가스 또는 대체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되며, 이는 공급비용 절감과 시장 효율성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

ODS 체계까지 확장하면, 장기적으로 수소 혼입·바이오가스 통합망 운영이 가능해져 탄소중립 인프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배관망 소유·운영권 분리 △요금체계 및 접속 규칙 표준화 △안전관리 규정 강화 △공급안정성 확보 방안 마련 등이 필수 과제로 꼽힌다. 즉,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을 통해 배관망 소유와 운영권 분리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TPA와 ODS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요금과 접속 규칙의 표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유럽연합(EU)이 시행 중인 공정 접근 규칙(NEC·Network Entry Code)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NEC는 모든 사업자가 동일한 조건과 절차로 배관망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접속 절차, 수수료 부과 기준, 서비스 품질 요건 등을 명문화한 규범으로, 제도의 투명성과 시장 신뢰도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향후 수소, 바이오가스, 합성메탄 등 다양한 연료가 도시가스 배관망을 통해 혼입·수송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다연료 혼입에 대비한 안전성 검사와 모니터링 기술 강화도 필수 과제로 꼽힌다. 배관 재질·압력·온도 변화에 따른 내구성 평가, 실시간 가스 성분 분석, 누출 감지 시스템 고도화 등 기술적 준비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 개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존 도시가스 사업자의 자산 가치 하락 문제에 대한 보전책 마련도 시급하다. 배관망 개방으로 인해 기존 사업자의 독점적 수익 구조가 변하면, 투자 회수 기간이 단축되거나 재무 안정성이 악화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감가상각 조기 인정, 투자 보조금, 전환 지원기금 조성 등 다양한 재정·제도적 지원책을 검토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표준화된 접속 규칙, 강화된 안전관리 체계, 기존 사업자 보호 장치라는 세 가지 축이 균형을 이뤄야만, 배관망 개방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TPA와 ODS는 단번에 시행하기보다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시장 안정성과 투자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초기에는 대규모 수요자 중심의 TPA 시범 운영으로 제도와 기술 기반을 다지고, 이후 부분 ODS를 거쳐 전면 ODS로 전환하는 ‘3단계 로드맵’이 현실적인 해법이다. 이 로드맵이 차질 없이 실행된다면, 한국의 도시가스 배관망은 2040년 전후로 수소·바이오가스·합성메탄까지 아우르는 탄소중립 국가 인프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TPA와 ODS는 단순한 제도 변화가 아니라, 도시가스 네트워크의 기능과 역할을 ‘가스 배송망’에서 ‘다(多)에너지 통합망’으로 진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해외 사례에서 확인되듯, 초기 도입 시에는 시장 혼란과 이해관계 충돌이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 효율성·에너지 전환·신규 사업 기회 창출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 될 것이다.

■ 용어 설명 : 

· 도시가스사업법 = 도시가스사업을 합리적으로 조정·육성하여 사용자 이익을 보호하고, 도시가스사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가스공급시설과 가스사용시설의 설치 및 유지, 안전관리를 규정하여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둔다. 주요 내용으로는 도시가스의 정의, 가스도매사업자와 일반도시가스사업자 등 사업자의 역할과 의무, 사업 허가 신청 및 변경 허가 절차, 그리고 가스공급시설의 기술적 안전 기준 등이 포함된다.

한국의 도시가스 산업은 이 법에 따라 권역별 독점 공급 구조를 유지하며, 사업자는 법에 규정된 안전기준과 관리 의무를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또한, 사업자는 정기적인 가스시설 점검과 안전 유지보수를 수행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책임이 있다. 이용자는 안전한 가스 사용을 위해 각종 안전 수칙을 준수하고 이상 발생시 즉시 신고해야 한다.

도시가스사업법과 그 시행규칙은 도시가스 공급의 안전과 효율성을 높이고, 공공의 신뢰를 확보하는 법적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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